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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처벌 남발 대신 아동 여성 인권보장에 앞장서야

인권사회단체, ‘사형’ 재개, ‘전자발찌’ 소급적용 반대 입장 밝혀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이후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보호감호소’의 부활, ‘사형’ 재개, ‘전자발찌’ 소급적용 등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피해자를 위하는 길일까? 또한 아동 및 여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납치 및 성폭력을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인가. 이와 관련해 3월 22일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보호감호소’, ‘사형’, ‘전자발찌’가 피해자를 위하는 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현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형식으로 사후적 처벌을 강화해 경찰권한을 높여줄 뿐 범죄의 예방적 대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2008년 혜진, 예슬 사건을 통해 아동 성폭력이나 납치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었지만 정부는 정치적 수사로만 대응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번 사건 역시 6.2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의 포퓰리즘적 대책이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민혜정 활동가는 “한 사회가 지금까지 높여온 인권수준을 ‘전자발찌’, ‘사형’, ‘보호감호소’ 등으로 한 순간에 무력화시키는 정부의 언급들에 피해자들도 편치 않다.”고 주장했다. 김민혜정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동안 인권의 범위를 확대해달라고 싸웠던 것이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인권 수준을 후퇴시켜 달라고 이야기해왔던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러나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피해자들에 대한 애꿎은 문제제기로 또다시 인권 후퇴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김민혜정 활동가는 “이 조치들 역시 아주 극소수의 가해자들에게만 적용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의 고소율이 7%밖에 되지 않는다.”며 “성폭력 사건은 아직 친고죄로 되어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강간피해를 입을 때 얼마나 저항했는지 의심한 판례가 다수이고 청소년의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법 역시도 제기되고는 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고 제기했다. 이어 “성폭력은 세상의 다른 모든 인권 수준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사회 전체 인권 내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강조했다.

사형집행과 범죄 억제 효과는 별개의 문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등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마음 아파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사형폐지 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인기영합주의적인 국회의원 및 정부관료들에 의해서 사건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마치 범죄자가 강력하게 처벌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형집행이 매년 이뤄졌던 97년도까지 10년간 살인범죄 증가율은 30%였지만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던 98년부터 2007년까지 증가율은 16%였다.”며 “16%가 작다는 것이 아니라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율이 높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형집행 여부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덕진 활동가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정부가 보장하지 못하는 민생치안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도 보름이 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이는 정부의 치안대책에 대한 불안감이었던 것이지 사형을 시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또 김길태 사건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치안이 문제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빈집이 생기면 즉각 철거하라는 것이다. 고민이나 성찰 없이, 초동수사 문제점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3월 2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 강당에서 열린 '사후 처벌 대신 아동여성 인권보장체계 마련하라' 기자회견의 모습<br />

▲ 3월 2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 강당에서 열린 '사후 처벌 대신 아동여성 인권보장체계 마련하라' 기자회견의 모습



김덕진 활동가는 끝으로 “이번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사형도 집행했는데 이주노동자를 연행하는데 그물총이나 마취총을 쏘지 못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며 노동자들의 옥쇄투쟁에 특공대를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용산참사 또한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김적진 활동가는 “사형집행은 절대 반대”라고 강조했다.

언론도 책임 있는 '사형집행 요구'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사형집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는 극단적 범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 치안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확산시켜 이를 통해 국가권한을 강화하는 정당성으로 삼고 있다."며 "그런 국가 정책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는 “아동 성폭력의 경우 아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70%이상이지만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강호순, 김길태, 조두순 사건 등)은 그런 현실과는 다른 극단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낯선 성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범죄가 사회문화 차원에서의 문제라는 것을 희석시키고 단순히 개인의 도덕 문제로 환원시키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언론도 책임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호중 교수는 “정부가 국민 개개인들로 하여금 ‘위험에 니 스스로 알아서 보호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치안 등에 대한 책임을 국가로부터 떠맡은 국민들은 개인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지게 되고 국가에게 범죄자들에 대한 격리 요구를 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감시’체계 구축 등 국가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호중 교수는 기자들을 향해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의 효과 여부도 중요하지만 위험 통제라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교묘하게 이용하는지도 비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범죄문제에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으면 이렇게 골머리를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근원적인 문제해결은 올바른 인권교육과 사회복지 복원을 통해 경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2~3의 김길태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형제 반대'는 피해자 인권 외면한 것?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여는 여성 및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얼굴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같은 기자회견이 또 다른 오해를 살 수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민혜정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 같은 정책들에 대해서 ‘문제가 많다’고 선뜻 말하길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에 대해 (불만의) 전화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는 현 상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사회를 본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역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인권단체들이 피해자 인권을 위해 뭐하냐’는 비판도 많이 제기된다.”며 "‘보호감호소’, ‘사형’, ‘전자발찌’ 확대에 대해 반대한다고 이야기하면 국민들에게는 가해자 인권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들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간명하고 분명했다. ‘보호감호소’ 부활, ‘사형’ 재개, ‘전자발찌’ 확대로 사회 전반적인 인권수준이 후퇴되는 것이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를 주장하는 국회의원 및 정부관료들은 대중적 영합주의에 편승해 국가권한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라고. 때문에 ‘사형집행’을 주장하기 이전에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기사는 미디어스(www.mediau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임

권순택 님은 <미디어스>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