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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류한승의 인권이야기] 정치의 계절에 다른 정치를 생각한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앞으로 5년간 누가 우리를 지배할 것인가? 이 아무개인가, 정 아무개인가? 사실은 삼성인가? 언론은 경마식 보도에 열을 올리고, 아예 작심하고 특정 후보 띄우기에 나선 언론사도 보인다. 포말정당의 거품이 부풀고 터질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뜨고 지며 분주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예년과 다를 바 없이 드라마틱하게 진행되는 대선을, 비정규노동자의 시선으로 보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저 화려한 말의 성찬은 선거 후에 무엇을 남기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지난 대통령 선거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공약집

▲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공약집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균등대우 및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계법을 개선해서 제도화하겠다. 비정규직 사용 범위를 제한하고 …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

이것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비정규노동 공약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지켜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 10월26일 통계청은 비정규노동자 규모가 570만3천명이라고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정부 기준으로도 100만명의 비정규직이 늘어난 셈이다. 이 결과가 당혹스러운 정부는 자발적 선택이 늘어났다며 변명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정부의 기준은 실제 비정규노동자들의 규모를 상당히 축소 왜곡하는 것이다. 비정규노동센터의 통계 분석으로 2002년의 비정규직 규모는 770만8천명, 2007년의 규모는 857만6천명이다. 2002년 당시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이 96만원으로 정규직의 52.9% 수준이었는데 2007년에는 119만원으로 정규직의 49.8%. 임금격차는 나날이 커지는 추세다. 특히 기간제법 시행 이후 간접고용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통계 조사에서 허울 좋은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욱 열악하다.

파견법 개악은 더 심각하다. 고용주의 중간착취를 허용하면서 사용자의 노동법상 책임은 면제해주는 이 법은 가장 어려운 노동자들이 노조조차 만들 수 없게 만든다. 참여정부는 이 법의 적용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기간제한과 직접 고용의무는 형해화하고 불법파견은 더 쉽도록 법을 고쳤다.

기간제와 간접고용은 법을 만들어서 말썽이지만 특수고용은 법조차 없어서 문제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2000년 김대중 정권 때부터 7년째 논의되어 온 것이다. 그 7년은 특수고용을 쓰는 사업주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수십·수백명의 구속과 해고, 수백억의 손배가압류를 감수하는 처절한 투쟁을 의미했다.

마침내 올해 4월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정부도 특수고용법안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노동법 적용은 배제한 채 노동2권만 부여하고 단체행동권은 불법화하며 해당 업종은 철저히 제한하려는 것이다. 결국 공약에는 온갖 좋은 말로 치장했지만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자본의 이익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과 아무 것도 다를 바가 없었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가 달성한 가장 큰 업적은 따로 있다. 감옥에 갇힌 노동자 수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참여정부 5년간 구속노동자 수는 1000명을 넘겼다. 김영삼 정부의 632명이나 김대중 정부의 892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구속된 노동자 271명 가운데 74%인 200명이 비정규직이었고, 올해 들어 7월까지 구속된 61명중 3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투쟁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투쟁에 나서면 해고와 감옥이 기다린다.

이 모든 정책이 낳은 결과는 죽음의 행진이었다. 2003년에 두산중공업 배달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이용석, 세원테크 이해남 조합원이 분신했다.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2005년 화물연대 김동윤, 2006년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의 이주노동자들, 택시노동자 전응재, 건설일용노동자 정해진…. 이 이름들을 되뇌는 것만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죽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500일이 넘는 장기투쟁, 고공농성에 무기한 단식으로 지칠대로 지친 노동자들에게 희망 대신 투표용지 한 장이 선물로 주어진다. 객관식이다.

2006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 2006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저 용지 위에 기표란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해서 노동운동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문제는 여전히 노동자정당이 조직되지 않은, 그러니까 더 가난하고 힘없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의 지지를 효과적으로 모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대기업과 보수 기득권층의 독점적 대표성은 강화되고 있고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게임을 정당화해주는 장치가 되어버렸다. 정치에서나 삶에서나….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한국통신 계약직과 하이닉스 사내하청과 케이티엑스(KTX)승무지부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어낸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무너져간 순간 우리의 정치도 함께 무너져가고 있음을 더 뼈저리게 회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잊은 것도 배운 것도 없는 통치 엘리트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대선에서의 몇십만 표만큼이나 이랜드 파업투쟁의 승리가 귀중한 계기가 될 것임을 고민해보자. 그것이 ‘정치’란 말에 값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덧붙임

◎ 이류한승 님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