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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류한승의 인권이야기] 이상수와 국민사기극

비정규‘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이랜드 점거농성이 시작되면서 정부가 상당한 부담을 느낀 모양이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사측과 거의 다르지 않은 중재안으로 노조에 교섭을 종용하며 “곧 노조가 농성을 풀 것”이라고 바람잡이에 나섰다가 망신을 자초했다. 그 와중에 “이랜드 노사가 한 달간 평화교섭을 합의”했다는 오보가 나왔다가 삭제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서둘러 사태를 봉합하려는 노력에 비해 정부가 가지고 있는 비정규법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천박하다는 데 있다.

이상수 노동부장관<br />
<출처; www.labortoday.co.kr>

▲ 이상수 노동부장관
<출처; www.labortoday.co.kr>


이상수 장관은 7월 10일 KBS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첫째,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2년 기간이 너무 짧다. 최초 정부안대로 3년으로 연장해야 한다. 둘째,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해서 파견 범위를 확대해서 도급을 파견으로 대체하겠다. 셋째, 외주용역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차별을 해소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장관의 말을 받아서 발빠르게 비정규법 ‘보완’을 들고 나왔다.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노동부 첫 법안은 기간제 근로의 계약기간을 3년으로 할 것, 파견근로 대상을 전면 확대하는 네거티브 시스템 등을 지향했으나 결국 포퓰리즘으로 빗나가 기간제 근로를 2년으로, 파견근로 대상도 일부 업종으로 국한시켜 오류를 더 키웠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취재일기를 통해서 노동계 조급증이 제 발등을 찍었다고 비꼬았고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의 숨통을 죄는 입법이 정치논리에 휘둘려 제정되었다며 설레발을 치고 나섰다.

이 보도들을 접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떠돌았다. 노동부가 노동자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한없이 둔감하면서 기업의 요구에는 지나치게 귀가 얇았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보니 노동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수준도 바닥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랜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때는 적어도 사태의 원인과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순서가 아닐까. 기간을 조정하고 파견을 확대하는 것이 도대체 이랜드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먼저 기간제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는 주장을 살펴보자.

비정규노동이 한국사회 빈곤과 차별의 가장 첨예한 상징이라면 이랜드는 비정규직 남용과 권리박탈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기업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2000년도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걸고 가열차게 싸웠던 곳이 바로 이랜드노조다. 천막농성과 단식, 삭발투쟁과 점거까지, 10명이 구속되고 수천만원의 벌금을 물며 265일의 끈질긴 파업을 이어간 끝에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비정규직에 대한 2년 기간제한은 이미 6년 전에 이랜드노조가 단협으로 도입했던 것이고 사측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된 조항이기도 하다. 이른바 ‘3·6·9계약’이라고 불리는 3개월짜리 단기계약을 통해 비정규직을 주기적으로 해고함으로써 정규직화 의무를 회피하는 수법 역시 당시 이랜드 자본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며 그 연장선상에 최근의 대량해고와 외주용역화가 놓여있다.

이상수 장관이 이를 모르고 있다면 직무유기일 것이고 알면서도 3년 연장이 무슨 해법이라도 되는 양 떠들고 있다면 ‘국민사기극’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기간제 노동자의 75%가 3년 미만의 근속기간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간연장은 남용을 방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로 계속 사용해도 무방함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파견을 확대하자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허탈하다. 그동안 불법파견과 중간착취, 주기적 해고를 통해 파견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아직도 부족한 것인가. 500일을 거리에서 싸워왔고 지금도 30여명이 집단단식 중인 KTX 승무원들, 660일을 넘긴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할 것인가.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가지고 파견을 확대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태연한 얼굴로 뇌까릴 수 있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대량해고는 일차적으로 차별시정 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며 문제가 되고 있는 직무급제 도입 역시 분리직군제를 통한 차별고착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지위와 무관하게 동일가치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이 지급되도록 하여 차별금지조항의 실효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이랜드는 기간제한 방식이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는데 무력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두산건설과 송파구청, 학교 비정규직 등 지금의 해고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345만 임시직과 228만 기간제노동자들이 여전히 비정규법의 칼날 앞에 설 날만을 바라보며 떨고 있다.

아울러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방안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계약 당사자만 바뀌는 위장도급을 방지할 수 있도록 사내하도급을 엄격히 규제하고 도급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분담하여 외주화의 이점을 없애야 한다. 용역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상수 장관의 발언 중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이마저도 립서비스로 끝날 공산이 크다. “장관께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며 “현재 구체적 검토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노동부 관계자의 입장이다.(한겨레 7월 12일자)

홈에버 매장을 점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홈에버 매장을 점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상수 장관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며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고 언론은 ‘불법필벌’을 주장하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강산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유구하게 계속되는 파업에 대한 불법시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대응하고 싶지도 않다. 그간 이랜드가 저질러온 온갖 불법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하는 것 역시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다만 노동법이 뭔지도 몰랐던 아주머니들이 ‘선수’들도 하기 힘든 구속결의를 하면서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하는 시대, “가장 온순한 사람들을 가장 열렬한 투사로 만들어내고” 있는 비정규‘보호’법에 대해서는 이미 20년 전에 한 ‘인권변호사’가 남긴 말이면 충분하리라.

“법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한 법이고,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 자기들만 좋도록 만들어 놓은 법은 악법입니다. 여러분은 정당한 법만 지킬 의무가 있지 악법은 지킬 의무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악법은 따르지 않는 것이 국민의 의무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파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파업은 여러분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어떤 중상모략에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지음, 현장문학사, 1989)
덧붙임

이류한승님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