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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요그야카르타 원칙(The Yogyakarta Principles)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탄생한 근대의 인권개념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핵심으로 한다. 흔히 알려진 사회계약 사상과 달리 신학적 인권개념은 절대자인 조물주로부터 인권개념을 끌어낸다. 절대자 앞에서 모든 인간은 그 피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조물주의 눈에는 똑같은 존재니 평등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조물주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그 형상을 지키고 본받기 위해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침해는 조물주의 권능에 대한 침해이다. 그래서 인권은 절대불가침이고 양도불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천부인권’이란 말을 즐겨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권이 지구화되고 문화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인권을 얘기하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인권론과 인권비판론이 존재하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인권의 핵심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많은 사람들이 존엄하다고 여겨지지 못하고 온갖 모욕과 배제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가장 초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그런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법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뒤편에서 얼마든지 차별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사람들 속에 깊이 뿌리박힌 편견과 혐오 같은 것을 일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법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초보 중의 초보적 조치에 해당한다. 법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은 엄청 많다.

그런데 이런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차별적 공격을 받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성적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차별금지의 근거규정에서 무더기로 잘려나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란 문구를 들어 “--등”이 있으니까 이번에 빠진 차별의 근거들도 얼마든지 차별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시되는 근거 목록에 들어가느냐 안들어가느냐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사법적 대응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등을 이유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등”에 만족하라는 건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요그야카르타 원칙 홈페이지 [출처] yogyakartaprinciples.org

▲ 요그야카르타 원칙 홈페이지 [출처] yogyakartaprinciples.org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이 2006년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에 모여 채택한 원칙이다. 초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을 비롯하여 유엔인권조약기구들의 위원, 유엔독립전문가, 판사, 민간단체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2007년 3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원칙을 발표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등에게 이 원칙을 보증하고 유엔 인권 활동의 모든 영역에 흡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 원칙을 만들 필요성은 전세계에서 목격되고 보고돼온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에서 제기됐다. 예를 들어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비사법적 살인, 고문과 학대, 성폭력 강간, 프라이버시 침해, 자의적인 구금, 고용과 교육 기회의 부정 등이 전세계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 이에 현재 존재하는 국제인권법의 내용을 망라하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고, 각 원칙마다 국가들에 대한 상세한 권고사항이 첨부돼 있다. 35쪽에 달하는 분량이기 때문에 일부 내용만 요약해 소개한다.

요그야카르타 원칙(요약)

우리, 국제인권법과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한 국제적 전문가들은

전문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인종‧피부색‧성‧언어‧종교‧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재산‧출생 또는 기타의 지위 등 어떤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폭력, 괴롭힘, 차별, 배제, 낙인, 편견이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 때문에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을 겨냥하며, 이러한 경험이 성, 인종, 종교, 장애, 건강상태 및 경제적 지위를 포함한 근거들에 의한 차별로 악화되며, 그러한 폭력, 괴롭힘, 차별, 배제, 낙인과 편견이 그런 침해를 받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손상하여 자존감과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압하며 공포스럽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을 살게 한다는 점에 우려하며,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레즈비언, 게이 또는 양성애자이거나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같은 성의 사람과의 동의한 성적 행위 때문에, 또는 트랜스색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이거나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또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의해 특정 사회에서 식별되는 사회집단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권침해를 경험해왔다는 것을 인식하며,

‘성적 지향’은 심오한 감정, 애정 및 성적 매력에 대한 각 사람의 능력 그리고 다른 성 또는 같은 성 또는 하나의 성 이상의 개인과의 친밀한 성적인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은 내적으로 개인적으로 각 사람이 깊이 느끼는 성(gender)경험으로, 신체에 대한 개인의 인식(자유롭게 선택된다면 의료적, 외과적 또는 기타 수단에 의해 신체적 외양이나 기능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될 수 있다)과 옷, 말하기, 독특한 특징을 비롯하여 기타의 성(gender) 표현이 출생에서 부여된 성(sex)과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국제인권법은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모든 인권을 완전히 향유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기존 인권들의 적용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과 경험을 고려해야만 하며, 아동과 관련한 모든 행동은 아동 최상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 아동은 그러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지며 그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한 중요성이 부여돼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며,

국제인권법은 시민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및 사회적인 모든 인권의 완전한 향유에 관하여 차별에 대한 절대적 금지를 규정하며, 성적 권리‧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남녀간의 평등 실현에 필수요소이며, 국가들은 하나의 성의 열등성이나 우월성 또는 남녀의 정형화된 역할에 대한 편견과 관습을 철폐하려는 조치를 취해야만 하며, 국제사회는 강제, 차별, 폭력이 없는 상태에서 성적 및 생식기의 건강을 포함하여 자신의 성(sexuality)과 관련된 문제를 자유롭게 책임지는 결정을 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국제인권법을 체계적으로 명료화하는 것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런 명료화가 국제인권법의 현 상태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며, 국제법의 발전을 고려하고 언제나 다양한 지역과 국가들에서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수한 삶과 경험에 대한 국제법의 적용을 고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수정을 요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이 선언을 채택한다.

원칙 1. 인권의 보편적 향유에 대한 권리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인간은 모든 인간의 완전한 향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원칙 2. 평등과 비차별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없이 모든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차별은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제한 또는 선호를 포함하며, 이는 법앞에 평등 또는 법의 평등한 보호, 또는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동등한 기반위에서 향유 또는 행사하는 것을 무효화하거나 손상하는 목적이나 효력을 갖는 것이다.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은 성, 인종, 연령, 종교, 장애, 건강 및 경제적 지위를 비롯한 여타의 차별과 흔히 혼합될 수 있다.

국가는 다음을 해야 한다:
A.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개정과 해석을 수단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여,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을 국내 헌법 또는 기타 적절한 법률에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그리고 이들 원칙의 효과적인 실현을 보장하라.
B. 동의 연령 이상의 같은 성별의 사람들간의 동의된 성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사실상 금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형법 및 기타 법률 규정을 개폐하고 동일한 성과 다른 성 둘 다의 성적 활동에 적용하는 동등한 동의 연령을 보장하라.
C.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입법 및 기타의 조치를 채택하라.

원칙 3.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앞에 인격으로 인정될 권리를 갖는다. …어느 누구도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압하거나 부인하도록 압력을 받아서는 안된다.

원칙 4. 생명에 대한 권리
원칙 5. 인격의 안전에 대한 권리
원칙 6.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프라이버시권은 자신의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과 관련된 정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및 동의에 의한 타인과의 성적 및 기타 관계 둘다에 관한 결정과 선택에 관한 정보를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을 선택을 포함한다.

원칙 7. 자유에 대한 자의적 박탈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칙 8.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
원칙 9. 구금된 동안 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권리
원칙 10. 고문,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칙 11. 모든 형태의 착취, 매매, 인신매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원칙 12. 노동에 대한 권리
원칙 13. 사회보장 및 기타의 사회적 보호 조치에 대한 권리
원칙 14.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
원칙 15.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원칙 16. 교육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근거로 차별하지 않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고려하는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원칙 17. 도달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에 대한 권리
원칙 18. 의료적 침해로부터 보호
…개인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의료적 병이 아니며 의료적 병으로 다뤄지거나 치료되거나 억제돼서는 안된다.…
원칙 19.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0.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1.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2. 이동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3. 망명처를 구할 권리
원칙 24. 가정을 구성할 권리
…가정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어떤 가정도 그 가족 구성원 누구의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근거해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
원칙 25.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
원칙 26.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원칙 27. 인권을 증진할 권리
원칙 28. 효과적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
원칙 29. 책임성
추가 권고 A-P.

(원문은 yogyakartaprinciples.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덧붙임

◎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