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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버마, 어린 영혼들의 외침

어지러운 대권경쟁의 불꽃놀이 속에서 사회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신음소리가 불쏘시개로 동원되고 인용되는 틈새로 희미한 촛불 하나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버마’, 공식적으로는 ‘미얀마’로 불리는 나라에서 오랜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 터져나왔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버마는 1948년부터 내전 상태이고, 1962년부터 죽 군사통치하에 있다. 1988년 대규모 항쟁이 있었으나 군부는 수천명의 시위자를 학살하고 진압했다. 이후 체제를 정비하면서 1989년 군사정부는 국가의 공식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유혈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하여 1990년 민주화세력과의 타협책으로 총선을 치뤘다. 군부는 대참패했고,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가 압승했으나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폭압은 계속됐다. 군부는 비사법적 처형, 약식처형, 고문, 강간, 강제이주, 강제노동, 토지와 재산의 몰수, 아동군인의 이용 등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저질렀다. 즉 함부로 죽이고 뺏고 노예처럼 부리고 아이들까지 총알받이와 지뢰탐지기로 활용했다는 말이다. 최근의 시위는 그렇게 오래 강요된 고통과 침묵을 뚫고 터져 나온 것이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건조한 사실 묘사에 담긴 정황을 살아있는 인간이 겪는 구체적 현실로 그려보는 일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를 보여준다. 이 글들은 강제로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난민아동이 쓴 것이다. 타이-버마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타이의 인권단체 ‘국경없는 친구들’(Friends Without Borders)이 소개한 것으로, 국경지대의 카렌족 난민 마을 러퍼허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버마에는 130여개에 이르는 소수민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마족이 다수족이고 카렌, 카레니, 샨, 몽족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6월의 소원;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우리는 생각하는 걸 배우고 꿈꾸고 싶어요 [출처]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만든 달력

▲ 6월의 소원;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우리는 생각하는 걸 배우고 꿈꾸고 싶어요 [출처]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만든 달력



전쟁과 자원 부족으로 난민 아동 중 열에 한 명 정도밖에 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한다. 움막에 불과한 초라한 학교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을 배운다 한다.

아침에 선생님이 사회수학(social math) 수업을 시작하셨다.
“모래 한 더미에 또 모래 한 더미를 더하면 얼마가 되지?” “둘이요”
“맞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만약에 두 더미의 모래가 하나로 섞이면 어떻게 되죠? 마치 우리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인권은 사람과 사람의 연대를 토대로 할 때만 추구될 가치가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가치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한 모퉁이에서 밝혀지는 작은 촛불 하나를 돌아보고, 민주화된 한국에 와서 난민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노동과 민주화투쟁을 병행하는 버마인들을 지지하고, 돈벌이를 위해 군부에 무기를 팔고 ‘건설적 개입’이라는 명분하에 자원착취에 나선 한국 및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넣는 것이야말로 인권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하진 않더라도 필수적인 방도일 것이다.

7월에는 바깥에서 놀기에는 너무 축축해요. 모든 아이들에게 미디어와 정보에 대한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출처]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만든 달력

▲ 7월에는 바깥에서 놀기에는 너무 축축해요. 모든 아이들에게 미디어와 정보에 대한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출처]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만든 달력



쏘 투 루(Saw Tu Lu, 14살, 3학년)


나는 커리루키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셨다. 내겐 누나 한명과 형 세명이 있다. 난 막내다.


내가 어렸을 때, 버마 군부가 강제로 마을사람들을 짐꾼으로 데려갔다. 내 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무거운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매를 맞으셨다. 아버지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향과 땅을 떠날 수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버마 군인들은 우리에게 고향을 떠나도록 떠밀었다.


우리는 쏘코 마을로 도망쳤다. 그 마을에는 학교와 병원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학교에 다녔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는 병이 드셨고 결국 우리를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가끔씩 버마 군인들과 무장세력이 와서 우리 마을을 또다시 부쉈다. 우리는 강을 건너서 타이로 도망쳤다. 거기에는 타이 군인들이 있었고, 그 군인들은 우리를 난민 캠프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무서워서 그들의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난민 캠프에서 사는 것을 무서워하셨다. 많은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가기로 했고, 해방구에 있는 러퍼허 마을에 모였다.


러퍼허 마을에서는 학교와 병원을 다시 갖게 돼서 행복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 짧았다. 군인들이 쫓아왔고 우릴 공격했다. 또 한번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타이로 도망쳤다. 군인들이 가버리고 나서 우리는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우리 집과 학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불태워버렸다.


우리는 남쪽으로 좀더 내려갔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집과 학교와 병원을 다시 세울 때까지 나무 아래서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그곳을 ‘새 러퍼허’라고 불렀다. 형들과 누나는 결혼해서 나갔다.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어머니는 아주 나이가 많으셔서 나는 어머니가 음식 구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와 쥐를 잡으러 갔다. 어둑해질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 앞장섰고 나는 뒤따랐는데 나는 지뢰를 밟았다. 친구들이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마을 사람들은 타이에 있는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내가 회복되자 학교에 다시 보냈다. 하지만 내 다리는 더 이상 똑같지 않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 난 더 이상 부끄럽거나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다. 매일 밤, 숙제를 하고 나서 잠자기 전에, 나는 기도한다. 우리를 모든 해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처럼 피난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 무 재(Naw Mu Jae, 11살, 1학년)


나는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고향은 평화롭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불태워졌고 우리는 쫓겨났다. 그래서 여기 와있다. 내가 여기 왔을 때, 사람들이 쌀과 소금과 어묵과 옷을 가져다줬다. 나는 너무 좋았다.


여기 있으면서 나는 아주 행복하지만, 가끔은 아주 비참하기도 하다. 우리 학교와 마을은 연거푸 불태워 무너졌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정글에 숨었다. 나무 아래 땅바닥에서 모기와 벌레들에게 물리면서 자야했다. 공포와 걱정이 내 인생의 친구가 됐다.


이제 나는 학생이다. 아침에, 나는 학교친구들과 놀러간다. 학교가 문 닫으면 전혀 재밌는 일이 없을 거다. 집에만 있어야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나를 사랑해주신다.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이 돼서 우리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돕고 싶다.


쏘 무(Saw Mu, 13살, 3학년)


우리 학교는 버마 쪽 강둑에 있다. 나는 학생이다. 매일 나는 빨간색으로 된 카렌족 전통 셔츠를 입고 학교에 걸어간다.


때때로, 나는 학교 근처에 서서 타이 쪽을 바라본다. 타이 쪽에 있는 학교는 근사하게 서있다. 아름답다. 거기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다. 때때로 나도 그 학교에 가고 싶다.


우리 학교건물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마른 잎으로 돼있다. 땅바닥 말고는 우리가 공부하는데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때때로 버마 군인들을 피해 숨어야 하고, 그럴 때는 학교 대신에 나무 밑에서 공부한다.


나는 이따금 이런 일 때문에 부모님에게 불평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작고 볼품 없는 학교지만, 좋은 선생님이 계시고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학교를 졸업하겠다고. 언젠가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쏘 수 래 (Saw Su Le, 11살, 1학년)


빨간색 카렌족 셔츠를 입고,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학생들은 배울 수 없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읽는 것을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때문에 셈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을 읽고 쓸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를 밤낮으로 도와주신다. 전혀 불평하거나 소리를 치지 않으시고, 너무나 친절하게 너무나 인내심을 갖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다. 우리 카렌족 아이들은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노력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 친구들을 선생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도울 것이다.
덧붙임

◎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