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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만 당해야하나”

해고 위기에 몰린 학교 청소 노동자 천옥자씨

천옥자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지난해 8월 정부는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를 구분해서 핵심업무만 ‘무기계약’으로 고용하겠다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발표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발표한 이 ‘대책’은 결국 예산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허세에 불과했다. 올해 현장 학교는 앞으로 있을 변화로 인한 예산의 부담을 덜기 위해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건 공평치가 않은 거 아니에요”

“청소부 주제에 무슨 사진을 찍어. 안 찍을래요.”
22년간 경기여고에서 화장실 청소를 해온 천옥자씨는 끝내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자 청소부가 무슨 선생님이냐며 부담스러워 했다. ‘청소부’를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청소부 주제에 월급이 많다’며 해고하려는 학교에 얼마나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일까.

“저도 청소부 치고는 오래되다 보니깐 월급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네들 월급 오른 건 생각도 안하고, 청소부는 월급 적게 받아야 된다는 인식으로 그러니깐 서글프죠. 우리같이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은 이렇게 당해야 하나…”

그녀의 월급은 약 2백만원이다. 언제부턴가 오르던 호봉도 멈춰버렸다. 수년 전부터 설명도 없이 도장 찍으라고 내밀던 1년 계약서가 이번에는 2개월짜리 계약서가 되어 나타났다. 학교는 용역직으로 전환해서 계약을 하거나,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길 바라고 있었다. 2개월 후에 해고하기 위한 수순으로 단기 계약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약서 자체를 안 쓰다가 언젠가부터 ‘계약직’으로 계약을 쓰더라구요, 1년마다. 그 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도장 가져와서 찍고 했는데 이번에는 두 달치를 찍으래요. 여기에 도장을 찍어주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안 찍었어요. 교장은 어디로 델꼬 가드만, 당신이 8월에 정년인데 자기도 떠난다고. 그 사람은 63세지만 난 인자 호적에는 51살뿐이 안 되었는데, 그건 공평치가 않은 거 아니에요.”

“화려하진 않아도 원망 않고 열심히 살았어요”

천옥자씨는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짓는 형편’이라 학교는 다니다 말았다.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어려운 단어로 글을 쓰는 것은 조금 힘들다. 스무살 남짓에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도 정해진 직장 없이 일하면서 함께 살아왔다.

“친정도 어려운데, 우리 아저씨네 집도 어렵더라구요. 서로 어려우니깐, 내가 일을 안 다녔으면 이만큼도 못 살죠. 나는 핸드폰도 없이 근검절약하며 사니까. 시어머니가 또 위암에 걸려서 뒤치다꺼리하다 시어머니 돌아가시면 좀 괜찮을까 했더니, 그것도 또 복이라고 우리 아저씨가 그러고……. 사람이 살아보니까, 없는 사람한테는 엎친 데 덮치는 그런 거 더라구요.”

남편은 2000년, 2003년 두 번에 걸쳐 뇌출혈로 쓰러지고, 지금은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피를 바꿔주는 약이라고 꾸준히 먹는 약”도 너무 비쌌다. 심할 땐 혼자 거동도 하지 못해 사람이 한 명 옆에 있어야 한다. 한 달에 백만원 정도 벌어오는 딸이 집에 보탤 수 있는 건 없었다. 집을 마련하느라 진 융자 빚과 치료비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었다.

“일하면 재밌었죠. 청소하면서 시간도 잘 가고. 경제적으로 우리 집 아저씨 아파서 그렇지. 그냥 병원비 카드로 막고 월급타서 갚고. 화려하게는 못 살았지만 그냥 그렇게 밥은 먹고 살았어요. 내 몸으로 벌어먹고 사니까 행복하다 했죠. 나는 왜 가난할까, 그런 원망은 안했어. 나보다 직장이 없어 벌어먹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이렇게 청소일이라도 직장이 든든한 게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이렇게 사람이 무서울 줄은 정말 몰랐어요”

천옥자씨는 계약서 문제에 대해 어찌할지 몰라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노동청에 연락을 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지역에서 역시 청소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동료의 소개로 민주노총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산하에 있는 학교비정규직투쟁대책위원회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힘을 얻어 고심 끝에 출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도장을 찍으라고, 찍으라고 하는데 안 찍었죠. 도장 안 찍으니까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라고. 너무 무서웠어요. 3월엔 그래서 안 나갔어요. 도장 안 찍으면 못 견딜 거 같으니까, 무서워서 못 간 거예요. 무서워서 못 가다가 선생님들(학교비정규직투쟁대책위원회 사람들)이랑 여럿이 학교에 가서 일하러 나오게 해달라고 했어요. 인자 4월까지는 아무 소리 안 할텐데, 그 다음부터는 또 도장 찍으라 하겠죠…”

그녀가 22년간 일해 온 직장에는 현재 그녀에 대한 탄압과 적대의 시선으로 가득하다. 익숙하던 일상이 두려움과 고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천옥자씨는 옷을 학교 밖에서 갈아입고 있다. 쉴 곳도 없고, 밥을 먹을 곳도 없다. 학교 측은 그동안 천씨가 사용해온 대기실의 손잡이를 교환하고 열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곳이 없어 경비실에서 밥을 시켜 먹으려 하자, 학교 행정실에서 경비아저씨를 협박해 천씨가 경비실에서 밥을 못 먹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심장이 떨려서 약을 지어먹는다면서 호주머니에서 약봉지를 주섬주섬 꺼냈다.

“어떻게 그 사람(자신을 관리하는 실장)을 이겨요. 아침부터 근무일지 쓰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요. 아침부터 근무일지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일 끝나고 써야지. 글씨도 잘 못쓰는데. 한 2천명이 어지르는데 내가 혼자 아무리 청소해도 지저분하다고 꼬투리 잡을 게 없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뭔들 트집을 못 잡겠어요. 죄도 안 지었는데, 전화만 오면 몸이 떨려요. 죄인처럼 이렇게 달달달 떨어야 되나, 모르겠어요. 너무 슬프고, 이럴 바엔 죽고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경기여고에서 육성회계직은 3명이다. 사무담당과 회계담당 그리고 청소담당인 천옥자씨. 이번에 계약서를 요구받은 것은 천옥자씨 한 명뿐이다. 그런 외로움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내가 기자회견하고 나니깐 용역회사에서 전화해서, ‘아줌마 그런 거 하면 손해예요’ 이런 말 하면서 ‘용역에서 일할래요?’ 물어서 안한다고 하니, ‘놀아도 안할래요?’ 그래 물어. 그래도 안한다 그랬죠. 학교서 잘렸는디 구태 뭐하러 용역에서 해요. 나 혼자 외톨이요. 나 죄진 것도 없는 데 죄인이요. 사람보기도 챙피스럽고 죄인 같애요. 마음이 독하지가 못해서.”

“배운 사람들이 한 것도 안했다고 거짓말 할 적에, 세상이 이렇게 무섭나. 사람이 이럴 수 있나…”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까.

“내가 빌었다는 그 자체가 억울한 거야”

“3년간 싸운 사람도 있다면서요?” “나처럼 해고된 비정규직이 많다면서요?” “4월에 복직할 수 있을까요?” 죽고 싶다고 말할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천옥자씨에게선 작은 의지가 느껴진다. 비록 학교에선 혼자지만 이런 일을 당한 건 자기 자신만이 아니란 것을 노동조합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항시 약자는 어디 가서도 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헌디, 나는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만나 갖고, 이렇게 말이라도 내 억울한 것이라도 풀 수 있다는 게 좀 나은 거 같아요. 나같이 억울하게 당하고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 얼마나 많겠어요.”

지난 3월 27일 학교비정규직투쟁대책위원회가 교육부 앞에서 진행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및 처우악화 사례증언대회’<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3월 27일 학교비정규직투쟁대책위원회가 교육부 앞에서 진행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및 처우악화 사례증언대회’<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계약해지, 불합리한 계약서 강요 등의 사례는 올해 들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3월 27일 학교비정규직투쟁대책위원회는 교육부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및 처우악화 사례증언대회’를 열었다. 천옥자씨도 이 자리에서 증언한 조합원 중 하나다.

“내가 학교에서 빌었다는 그 자체가 억울한 거야. 좀 있게 해달라고 빈 게, 그게 진짜 억울해!”

자신이 당당하게 노동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음을 천옥자씨는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