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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이주노동자의 인간선언, 우리는 노동자다!

7월 5일, 전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연대시민이 울산 HD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 모였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던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나쁜 계약’을 철회하고 정당한 임금 보장, 차별대우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집회 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있었다.
 
‘나쁜 계약’이란 지난 5월 말, HD현대중공업이 직고용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작성하게 했던 계약을 말하는 것인데, 그 안에는 기본급 삭감과 성과차등임금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빼앗고, 대신 연장근무를 유도하며 더 저렴하게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는 착취적 구조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게다가 성과로 등급을 매겨 노동자를 줄 세워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차등임금제는 이주노동자를 자본과 산업을 위한 부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HD현대중공업에서의 차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미 3년 전부터 직고용 이주노동자에게만 50만 원이 넘는 식대를 공제하고, 성과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E-7-3(일반기능인력) 비자는 휴·폐업한 경우가 아닐 경우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고, 설령 이직을 한다 해도 조선소를 벗어날 수 없는, 고용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취약한 입장이기 때문에 사측은 ‘그렇게 해도 괜찮’았던 것이다. 제도가 용인한 차별이 차곡차곡 쌓여오다가 6월 17일, 나쁜 계약을 거부하는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투쟁은 시작되었다.
 
 
다시는 이런 차별이 반복되지 않기를

집회 장소까지는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이하 사람이왔다)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 외에도 경기, 경주, 대구, 거제 등 약 열 대의 연대버스가 울산으로 향했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는 지금의 투쟁 과정과 의미를 새기는 자료와 6월 26일에 진행되었던 투쟁문화제 영상을 보았는데,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던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와 회사의 강압에 의해 서명했음을 밝히며 연서명을 진행하는 장면이 나왔다. 사측은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재계약과 재취업 여부를 빌미 삼아 협박하고, 서명한 이들에게만 잔업을 시키거나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재계약/재취업은 생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체류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노동에 대한 환경과 임금, 체류 등 삶의 조건을 전부 자본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시는 이런 차별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서명을 거부하고, 혹은 서명을 이미 했음에도 싸우는 이들이 있었다. 어느새 창문 밖으로 ‘세계 최고의 조선소’라는 슬로건이 적힌 HD현대중공업 조선소의 풍경이 보였다.

 

노동자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집회에서는 무려 9명의 발언과 2개의 공연이 준비되어있었는데 공연을 포함하여 무대에 올랐던 모든 이들의 투쟁 의지가 타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민주노총 권수정 부위원장은 23년 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선언을 언급하며 지금의 투쟁이 ‘이주노동자의 인간선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기 전에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할 수는 없었는가. 이어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브래드 지회장,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의 윤다혜 사무국장과 이주노조 라셰드 사무국장의 발언을 들었다. 각자가 서있는 다양한 위치에서 하고 있는 싸움과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투쟁으로 바꿔내야 하는 것은 개인이나 개별 사업장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취급할 수 있게 한 정부의 정책과 이러한 차별구조를 공고히 하는 자본의 이윤 전략이라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의 직고용 스리랑카 노동자인 차리타 노동자대표가 싱할라어로 발언을 시작하자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앉아있는 자리 곳곳에서 주먹이 솟아올랐고 가끔은 함성을 외치기도 했다. 강렬한 단결이란 이런 것이구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는 힘이 많으니 회사가 시키는대로 하라”는 한국인 동료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회사의 힘은 무엇입니까? 이 건물이 회사의 힘입니까? 아닙니다. 회사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회사의 힘입니다” 노동자 없이는 조선소도, 공장도, 그 무엇도 작동하지 않는다. 세상을 굴리던 노동자의 힘이 이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차리타 노동자대표의 발언이 끝난 후, 집회 현장 여기저기에 노동조합 가입서가 돌았다. 이주노동자는 체류기간이 정해져있고, 각자의 현장에서 고립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노동조합 조직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 함께 싸우기 위해 천 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당일 현장에서 15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 가입서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 투쟁 속에서 우리의 힘이 더 크고 단단해지길 바란다.

 

디야우 디야우, 아피타 디야우!

행진하던 중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들이 모국어인 싱할라어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땅을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커다란 외침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대오를 이루던 수많은 이들을 결집시켰고 곧이어 싱할라어를 할 줄 모르는 이들도 각자 뜻과 발음을 물어가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여러 구호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이 들리던 “디야우 디야우 아피타 디야우( දියව් දියව් අපිට දියව්)는 “우리에게 내놔라”라는 뜻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이들에게 내놓아야 할 건 정당한 임금뿐 아니라 국적과 인종에 관계하지 않는 평등한 대우이자 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시작한 구호를 모두가 다함께 외치던 순간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투쟁의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곳의 이주노동자들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 투쟁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자본의 차별과 횡포, 협박과 탄압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앞장서있다. 이주노동자의 투쟁에 이주노동자가 맨 앞에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노동 구조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거대한 자본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벌써 밥값을 소급 환급받는 등 소정의 성과도 이루어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권리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모든 이주노동자의 평등과 존엄을 위해 싸우고 있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목소리로 싸우고 있는 오늘의 경험이 또 다른 사업장과 또 다른 업종의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용기를 낸 이들이 모여 나아가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분리하고 위계화하는 사회, 그 위계를 바탕으로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자본의 시스템을 뒤집을 전환을 만들어낼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모든 이주민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향한 거대한 투쟁의 불씨를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 오는 8월 16일 오후 2시, 2차 전국공동행동이 열린다. 뜨거웠던 울산 현장의 기억을 안고, 보신각 앞에서 함께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