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조선업은 ‘슈퍼사이클’, 말그대로 초호황을 맞고 있다. 2010년대 장기간 지속되던 불황기가 2020년 이후 세계적으로 친환경 선박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로 변화되었다. LNG 추진 선박에 대한 기술력을 앞세운 한국의 조선업은 미국, 중동, 인도 등에서 대량 수주에 성공했다. 올해 조선 3사는 13년 만에 동반 흑자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인 연간 영업이익 10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소 2028년까지 물량도 이미 확보해놓았다. 이렇게 K조선의 미래가 탄탄대로일 때, 그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미래도 장밋빛일까?
울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지난 5월 27일, HD현대중공업은 E-7-3(일반기능인력) 비자를 가진 직고용 이주노동자들에게 ‘나쁜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본급 삭감과 고정연장근로수당 신설, 성과차등임금제 도입이다. 연장근로를 해야만 삭감된 기본급을 보충하는 구조로, 사실상 기존 기본급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또한 성과에 따라 상여금과 성과급, 재고용 여부를 판단해 노동자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3년 전부터 월 50만원 가량의 식대 공제, 성과급 미지급 등의 차별을 받아왔다. 이에 더해 ‘더 싸게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사측의 노골적인 시도에 이주노동자들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투쟁은 시작되었다. 처음에 서명을 거부한 28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서로를 조직했고, 이후 1000여 명의 노동자와 연대시민이 함께 모이는 집회로 확대되었다. 집회 이후 22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노조에 가입했다. 이러한 투쟁으로 사측은 그간 공제하던 식대를 소급하여 환급하고 성과차등임금제를 철회하기로 했다.
그러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본급 삭감을 기조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측은 다양한 인센티브 구조를 마련하고 식사를 무상제공함으로써 실수령액은 증가하는 계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자의 몫을 바로 돌린 것인데도 마치 ‘혜택’인 것처럼 제시하며, 기본급 삭감, 강제연장근로와 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 후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고정’연장근로수당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잔업수당보다 매달 임금이 20만원 가량 적어진다. 기만적인 사측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시간과 임금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차별은 HD현대중공업이 식사를 제공하거나 식대를 환급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조선업 이주노동자들이 사측의 차별 행위에 맞서기 어려웠던 것은 비자체계가 사업주에게 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함께 사실상 체류여부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에 맞설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하는 현행 비자 체계는, 자본이 이주노동자를 자유롭게 착취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또 다른 형태의 착취와 차별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차별적인 노동 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이 차별 시정을 넘어 차별을 공고히 하는 노동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한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조선소
1970년 이후 조선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한국의 대표 수출산업으로 자리잡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 불황을 겪었다. 이 불황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의 대대적인 노동자 해고와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15년 20만 명이 넘던 조선 노동자는 2022년 9만 3천여 명으로 감소하였다. 펜데믹 이후 물동량 증가로 선박수요가 늘어나고 친환경 LNG 추진 선박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선업은 제2의 호황기를 맞는다. 하지만 정작 그 배를 만들 노동자들이 없었다. 고위험·고강도·장시간 노동 조건은 여전한데 임금은 불황기와 마찬가지로 매우 낮았기 때문에 구조조정 당시 조선소를 떠났던 숙련공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극심한 인력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 환경이나 임금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으나 자본은 다른 방안을 찾았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찾는 것이었다. 조선소의 이주노동자는 그때부터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2년 4월, 정부는 기능인력비자(E-7) 발급 지침을 대폭 개정·완화하고 고용 허가 비율 상향, 조선업 전용 쿼터를 신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조선업 인력 배치에 관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23년 1만 4천여명으로 예측했던 한 해 인력 부족분이 3분기만에 보충되었는데, 이 중 86%가 이주노동자였다. 2021년에는 4500여 명에 불과했던 조선업 종사 이주노동자가 2만 3천 여명으로 증가했다. 현재도 여전히 광역형,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업에 배치할 이주노동자를 불러오고 있다.
정부가 적극 유치한 E-7-3(일반기능인력) 도입은 민간기관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60% 이상이 브로커에게 1,200만~2,000만 원에 달하는 송출료때문에 빚을 지고 한국에 들어온다. 또한 현장에서는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초단기 계약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재계약에 실패하면 6개월 안에 직접 비자 조건에 맞는 새 사업장을 구해야 하고 출입국 심사 수준의 서류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 빚더미를 안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산재나 차별을 당해도 불이익이 두려워 문제제기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를 이용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견딜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이는 정부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자체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
불평등과 차별구조, 조선업의 경영비결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조선업의 차별 문제가 주목받고 있지만, 조선소 현장은 오래 전부터 노동자를 끊임없이 분할하고 위계지으며 작동해왔다. 조선소 이주노동자에 앞서, 위험한 환경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해고로 가장 먼저 쫓겨나야 했던 노동자의 이름은 비정규직-하청노동자였다. 조선업은 원하청 관계에 단기 계약 노동자들인 물량팀까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복잡하게 이루어져있다. 조선업에서 하청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2.3%로 전 산업 평균인 17.9%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수주량 변동이 큰 사이클 산업이라 인력 수요의 폭이 일정하지 않고 공정의 분절화라는 특성으로 조선업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 전면 직영화되며 1990년대 초반에는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비중이 20%까지 낮아졌으나,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고용유연화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경기 상황에 따라 쉬운 해고가 가능하며 위험하거나 기피되는 공정에 투입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 저임금 고용과 함께 노조 등으로 결집된 힘을 모으기 어려운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21~2023년 사이 5대 조선소 직영노동자가 천 여명 증가할 때 하청노동자는 1만 6천명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이 구조가 여전히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임금의 70%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더 위험하고 힘든 작업에 배치된다.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 속에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간 조선업 사고사망자의 69.6%가 하청 노동자였다.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있지만 산재 신청율은 정규직 노동자는 1/4에 불과하다. 산재 신청 시 계약해지나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청업체가 폐업할 경우 임금 체불의 문제도 있지만, 원청은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한화오션) 하청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했다. 불황기에 임금을 삭감했던 사측은 호황기에도 여전히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리려 했다. 하청노동자들은 빼앗긴 임금을 되돌리고 진짜 사장인 원청과의 단체교섭권을 요구하며 51일 간의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투쟁은 노란봉투법의 제정을 이끄는 사회적 동력을 만들기도 했다. 이전부터 조선업은 계약관계를 통해 노동자를 분할하며 차별을 정당화해왔고 이러한 불평등 구조의 아래에 위치한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부정당하며 위험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왔다. 이에 맞선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어 왔고, 2026년 울산에서는 직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이 이 기나긴 투쟁을 이어받았다.
모두의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투쟁
대형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 등지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짧은 기간 급속히 늘어나자, 정주민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올해 1월, 울산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고용할 수 없지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국내 조선산업을 육성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조선업체는 좋겠지만 지역에선 고용의 기회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후 노동부는 원청 직고용을 제한하거나, 기능인력비자를 순차 축소할 계획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조선소 현장의 노동 환경 악화가 모두 이주노동자 탓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곳은 따로 있다.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은 누구도 일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자리’에서 일하며 조선업을 떠받치고 있다. 이주민 여부가 아니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몫을 빼앗는 구조를 만들고 노동자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본 그리고 이를 제도로 뒷받침하는 정부를 향해 책임을 물을 때, 지역에 ‘좋은 일자리’도 가능하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하청 노동자의 외침은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외치는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열악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쟁취해야 한다. 정주와 이주, 정규직과 하청으로 노동자를 끊임없이 갈라치며 누군가의 권리 박탈을 당연시해온 자본의 구조에 맞서는 것만이 우리의 진짜 대안이다. 9월 13일, ‘나쁜’ 계약을 철폐하고 ‘좋은’ 일자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서울고용노동청 앞으로 모인다. 하나의 업종, 하나의 사업장을 바꾸는 것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에 함께 하자.
이주노동자에게 자유와 권리를!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변경의 자유 완전 보장! 모든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 보장! 2026 민주노총 전국 이주노동자 대회

- 일시 2026. 9. 13(일) 14:00
- 장소 서울고용노동청 앞
- 집회 후 청와대 앞까지 행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