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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집회·시위의 자유는 경찰기동대 해체로부터

[기획] 경찰폭력 뿌리뽑기 프로젝트 ③ (끝)

최근 경찰청은 시위진압 전·의경에게 이름표를 부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인권단체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이러한 조치가 두 명의 무고한 농민 사망자를 낸 이후에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뒤늦은 감이 있지만 공권력의 책임있는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데는 시민사회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위 진압을 전담해 온 '준군사 조직'인 경찰기동대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는 이러한 조치가 집회·시위 현장에서 일어나는 경찰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위진압 전담부대, 경찰기동대

경찰기동대는 1955년 서남지구전투경찰법이 폐지되고 사후대책으로 경찰직무응원법이 제정되면서 '돌발사태의 진압이나 특수지구의 경비'를 위해 조직되었다. 그러나 군사정부 시절은 물론이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현재까지도 시위진압 전담 부대로서 기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경찰은 '무최루탄 정책'을 표방하며 이를 높아진 인권의식의 상징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최루탄 대신 더욱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증가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제1기동대는 정예부대로서 특별한 관할지역 없이 전국적으로 주요 집회, 시위나 파업 현장에 투입되어 공격적인 진압을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실에서 지난해 9월 27일 발표한 브리핑에 의하면, 서울시경 제1기동대 평균 신장은 176.5cm인 반면 제2기동대 평균 신장은 172.3cm로 평균 신장이 무려 4cm 이상 차이가 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제1기동대 1∼3중대(1001∼1003부대)는 평균 신장이 182cm 정도로 제1기동대 중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실은 "1001∼1003부대가 시위진압의 최정예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라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며 "경찰폭력이 난무하는 곳에 항상 존재하는 이들 부대는 제2의 백골단"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과잉진압을 낳는다"

2001년 5월 당시 정광섭 종로경찰서장은 '준법과 포용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언론 기고문에서 "법 절차를 무시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거리로 나온다면 거리는 온통 1인 시위자로 가득할 것"이라며 집회·시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내보인 바 있다.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왜곡된 인식은 경찰기동대 지휘자들의 행동에서도 확인된다. 2003년 11월 노동자 대회 진압에서 수십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폭력에 의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휘관이었던 강영규 경무관은 기동대 홈페이지에 "큰 불상사 없이 끝난 것을 치하한다"며 기동대원들을 격려하는 '치하문'을 게시한 바 있다. 또 2005년 7월 평택 평화대행진에서는 현장 지휘관 이종우 기동단장이 전 의경들을 감정적으로 선동하고 하체 가격을 지시하는 등 폭력 진압을 지휘하여 집회 참가자와 경찰 병력 간의 충돌을 조장한 바 있다. 이 전 기동단장은 두 농민의 사망과 더불어 수많은 부상자를 낸 지난해 11월 15일 여의도 농민집회 진압 지휘를 맡아 또다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야 할 경찰이 집회·시위를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왜곡된 인식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에도 대규모의 경찰기동대를 동원하는 식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2001년 1월 17일 경찰은 미대사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문정현 신부를 강제로 연행해 40여분 간 길 위에서 불법감금했다. 2004년 3월 26일에 진행된 고 최옥란 열사 2주기 추모문화제 역시 합법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해산되고 참가자들은 대거 강제연행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바로 옆에서 열리던 탄핵 반대 촛불 집회는 아무런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더 큰 폭력은 정부에 의한 정책적 폭력

집회·시위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경우 경찰에 의한 지나친 통제와 과잉진압은 분명히 지적되어야할 문제이지만, 물리적 충돌의 결과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 시위 참가자도 경찰도 모두 피해자가 되는 이러한 상황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정책적 실패에서 기인하는 '제도적 국가 폭력'에 있다. 제도적 국가 폭력의 문제가 더 심각한데도 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인해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시위에서 경찰은 더욱더 강경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2003년 7월 부안군수가 의회와 군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자 1만2천여 명의 부안 군민들이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집회에 모였다. 정부는 군민들을 설득하고 의사를 모으는 데 실패했지만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은 '엄정 대처'를 지시했고 경찰은 1기동대를 포함한 40여 개 경찰기동중대를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진압, 여성과 어린이 등을 포함해 백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농민단체는 쌀개방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있는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줄곧 대화를 거부했다. 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고 결국 거리에서 두 농민이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이때는 이미 세 명의 농민이 정부의 쌀정책을 비관하며 자살한 후이기도 했다.

집회·시위를 전담하는 '준군사 조직'으로서 경찰기동대는 존재 자체가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다. 집회·시위는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불온한 것이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 권리이며 민주주의의 필연적 과정이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 전담부대인 경찰기동대에 의한 시위 진압을 통해 집회·시위 참가자들과 물리적 충돌의 발생 가능성을 더 크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시위조차 금지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경찰기동대가 전·의경으로 구성되느냐 직업 경찰관으로 구성되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 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기동대는 집회·시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진압부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해야할 기본권의 영역이라면 집회·시위 진압을 전담하는 상시적인 '준군사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경찰기동대가 하루빨리 없어져야할 이유다.
덧붙임

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경찰감시팀 자원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