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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경찰폭력 뿌리뽑기 프로젝트 ①

"전·의경제도, 폐지를 준비하자"

[편집자주] 경찰폭력으로 사망한 전용철·홍덕표 농민의 장례식이 지난해말 치뤄졌다. 결국 대통령의 사과와 경찰청장의 사퇴를 불러왔지만 경찰폭력의 근본원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에 본지에서는 경찰폭력을 뿌리뽑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난해 11월 15일 진행된 농민대회에서 농민 두 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 사과와 경찰청장 및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사퇴가 이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정치권과 언론은 '폭력시위'를 문제 삼으며 정치권의 정책적 실패의 화살을 또다시 집회·시위 참가자들에게 돌리려 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전·의경부모들과 전·의경 출신 전역자들이 경찰청 앞에서 평화시위 정착과 전·의경의 인권보호를 주장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전·의경들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복무과정 중 인권침해를 당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불합리한 현실이다. 전·의경제도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전·의경제도의 탄생 비화

전·의경제도는 한국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후방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지구경찰대가 편성되었고 이를 모태로 1970년 12월 31일 대간첩작전 수행을 위해 전투경찰대설치법이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전투경찰대가 일반 경찰관으로 구성되었던 것과 달리 전투경찰대설치법 제정을 통해 병역자원을 전환복무시켜 군복무자를 대상으로 구성하게 한 것이다. 이후 1975년 12월 31일 법개정으로 전투경찰대의 임무는 대간첩작전 및 치안보조업무로 확대되었고 전투경찰은 주로 반정부시위, 파업 등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또 1983년에는 늘어나는 집회·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치안수요 증가를 이유로 전투경찰대설치법을 개정, 의무전투경찰대가 신설되었고, 전경-의경의 이원체제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전·의경제도는 한미연합사가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던 현실 하에서 군병력을 독자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웠던 군사정권이 '대간첩작전'과 '사회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값싸게 치안병력을 확보하여 대정부투쟁을 탄압하기 위한 정권안보 수단으로 악용하였고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다.


"전·의경을 시위진압에 동원할 근거가 없다"

1991년 당시 현역 전경이던 박석진 씨는 전투경찰대설치법 및 시위진압명령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결정에서 군에 입대한 자 가운데 작전전투경찰을 차출하여 전임시키는 방식에 대해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반면 작전전경을 시위진압과 같은 치안보조업무에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록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4명의 소수의견이 존재했다. 이들 4명은 소수의견에서 "전투경찰대로 전임되는 현역병은 대간첩작전의 수행을 임무로 하고 있을 뿐이므로, 경찰의 순수한 치안업무인 집회 및 시위의 진압의 임무는 결코 국방의무에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전투경찰대설치법 중 '치안업무의 보조' 부분은 헌법 제39조 제1항의 규정의 정신과 제2항 규정에 위반된다는 주장이다. 이계수 교수(건국대 법학) 역시 <공법연구>(제31집 제4호)에 실은 '2003년 한국의 군사법과 치안법:군사와 치안의 착종과 민군관계의 전도'라는 글에서 "'대간첩작전 시'에만 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병력을 모든 일상적 시위현장에 투입시키는 관행과 그러한 관행을 현행법에 의해 정당화하는 해석은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과 경찰의 조직 및 임무의 구분이라는 헌법상의 국가구성원리는 사실상 파괴되고 만다는 것.

게다가 현재로서는 '대간첩작전 수행'이라는 기본 목적이 여전히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민의신문>과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주최한 '전의경의 역할과 인권' 토론회(아래 토론회)에서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는 "오늘날과 같은 남북의 화해분위기에서처럼 대간첩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군부대의 병력수준과 작전능력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규모의 대간첩작전 조직을 경찰이 별도로 가져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의경의 시위진압 동원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의경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는 전투경찰대설치법은 의경의 역할을 '치안보조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송 교수는 "시위의 진압은 가장 격렬한 형태의 범죄대응이며 그 진압의 일선에 투입되는 것은 분명 보조적인 수준을 넘어선 본연의 치안 활동"이라며 "설사 전투경찰제도를 시인한다 해도 의경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보조적'인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의경의 시위진압 동원에 반대했다.


전·의경제도 폐지에 대한 반론의 반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시 전·의경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치안공백 우려 및 재원확보의 어려움을 근거로 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국방부는 의경제도를 폐지할 방침을 세우고 경찰 측에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경찰은 집회·시위 관리 차질로 인한 사회혼란 우려, 재정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의경제도를 폐지하고 경찰관으로 대체한다면 현 의경인력의 2배의 경찰 인력을 증원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간 약 2조180억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서 김상균 교수(천안대 경찰행정학)는 "경찰이 수행하는 업무는 대부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와 직결되는 업무인데 이러한 일을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한 의무경찰이 수행하는 것은 치안서비스의 향상과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데 역부족이므로 중장기적으로 의무경찰은 폐지 내지 최소화하고 정규경찰인력을 확충하여 법집행현장은 경찰관에 의해 수행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전·의경제도는 사실 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 만큼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전경제도에 대한 위헌 논란은 헌재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대간첩작전'이라는 목적이 사실상 불필요해진 상황에서 제도의 존립 근거는 더욱더 부족해졌다. 군사독재시대에 민주화투쟁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제도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이제는 부당하게 유지되어온 전·의경제도의 폐지에 따른 사회적 공백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덧붙임

김헌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경찰감시팀 자원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