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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비친 인권 풍경] 국가 폭력의 현실과 피해자들 ①

군사정권의 폭력 피해자들에게서 현재의 국가폭력을 읽다

지난 6월 10일 경찰이 무기 하나 없는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던 것은 그건 단순히 전경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르는 폭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국가폭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라는 한숨 섞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일 때, 내가 맞은 주먹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를 파헤쳐 보니 ‘그게 바로 국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 ‘과연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국가를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국가폭력의 정치를 파악하고,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일은 현실을 넘기 위한 첫 일이기에 관련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에게 국가폭력에 대해 듣고, 고문 피해자들과 함께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진범수 정신과 전문의에게 폭력피해의 현실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자 그 가족인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님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았다.

폭력, 근대 국가의 본질

국가 폭력은 한 국가의 국민에게 국가기구, 특별히 억압적 국가기구(예컨대 경찰, 군, 각종 정보기관, 사법기관 등)가 가하는 직․간접적인 물리적 힘의 행사를 의미한다. 직접적으로는 독재정권의 고문에서 시작해 간접적으로는 법도 국가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법’ 그 자체가 피지배세력에 대한 지배 권력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희연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근대국가는 그 ‘본질’에 있어 ‘폭력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전근대국가에서 물리력, 군사력, 무장력은 여러 지방권력들에 분산되어 있었지만 근대국가에서는 ‘국군’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물리력, 넓은 의미에서의 폭력이 근대국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에게 있어 폭력은 ‘위임받은 권한’에 속한다. 문제는 그러한 권력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의도에 따라서 사용된다는 점이다,

국가 폭력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적 폭력과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가 ‘공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희연 교수는 저서 『국가 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 혹은 그에 의해 임명된 특정 국가 기구 책임자가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명령하였을 때 그 폭력도 위임받은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선출된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위임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체제가 바뀌고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문제제기하고 처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 당시에 피해자로서 국민들이 거대 권력인 국가와 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국가폭력과 죽음의 정치

이러한 국가폭력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은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였다. 그때의 여러 희생은 국가폭력의 결과가 어떤 지를 잘 보여준다. 긴급조치 시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개인 및 가족에 대한 고문과 사찰, 사회적 추방과 사회적 박해, 빈곤과 심리적‧정신적 충격, 가족 해체와 가정 파괴, 자살 등을 동반하기도 했다.

국가폭력의 극단적 전형은 ‘죽음의 정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죽음의 정치란 국가 폭력이 극단적으로 구사되어 급기야 사람의 목숨을 박탈해버리는 정치적 현상이다. 조희연 교수는 “인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생명권이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상실되고 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죽음의 정치는 국가에 의한 직접 살인과 간접 살인으로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경찰과의 대치에서 희생당한 용산 참사에서부터 죽게 만들어 버리는 화물연대 박종태 씨의 죽음까지 모두 죽음의 정치에 포함되는 사건이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외상에 시달려

폭력의 주체가 국가라일 때, 피해자에게 ‘어찌할 수 없음’ 곧 대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준다. 정신과 전문의 진범수 씨는 “사람이 대처할 수단이 있고 반항할 기제가 있으면 깊은 상처가 남지 않지만 고문은 때리면 때리는 대로 속수무책으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고 맞붙을 수 없고 벌레처럼 벌벌 기면서 처절한 무력감에서 구타나 당한 외상이다.”며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시위진압의 모습만 봐도 자신이 다시 또 잡혀 가지 않을까 하며 여전히 두려움 속에 살고 있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권의 변화나 정치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다.

또한 진범수 전문의는 고문 등의 국가폭력은 개인에게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에 의한 고문은 사회에 나가서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차별, 냉대, 직장 취업에도 지장”을 줄 뿐 아니라 “누군가 감시할 것”이라는 정신적 상처까지 낳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무장한 경찰이 평온한 도시거리를 차지한다.

▲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무장한 경찰이 평온한 도시거리를 차지한다.


권력자의 두려움이 경찰차를 둘러

진중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말한다. "국가의 주권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시민인가? 아니다. 지금이 비상사태라고 판단할 권리를 가진 자가 곧 '주권자'다." 그리고 "자기를 국가라 믿는 자들은 자기가 위험하면 국가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개인적 비상상태를 국가의 비상사태라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 폭력이 더욱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진단은 곧 지금 정부가 얼마나 자신들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항상 도심에 늘 빡빡하게 세워둔 경찰차는 그들이 곧 보이지 않는 불안과 싸우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요즘 다들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인 국가폭력이외에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으로 ‘파시즘X’라 불릴 정도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네르바 구속 등 일련의 인터넷에 대한 통제장치, 비판적 보도를 행하는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매체에 대한 직간접적인 통제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시도하는 일련의 통제는 국가 폭력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차단한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 사법과 입법 기관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 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국가폭력’을 행하게 만들고 마는 상황은 현재의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할 상황은 이러한 통제에 익숙해져 국민들 다수가 침묵해 버리는 일일 것이다.

침묵의 카르텔의 선봉, 보수언론

조희연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우리 사회의 상층계급이나 보수적 대중들은 용산에서의 폭력과 희생에 대해서도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침묵’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 침묵의 카르텔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보수언론의 역할이 크다”며 “하나의 사건을 공론장에서 주변화시키는 기능을 통해서 용산의 문제를, 광화문에서의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게 된다.”고 지적한다.

가장 좋은 것은 국가를 딱히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국가가 오히려 국민의 삶을 위협해 ‘국가’는 ‘폭력’으로 각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일 쏟아지는 기사는 우리를 화가 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조희연 교수의 말처럼 “국가폭력의 부당성이 쟁점화되고 그 국가폭력의 사용집단의 정당성을 타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국가폭력 사용집단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가 갖는 희망일 수도 있기에 비민주적인 정권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이 민주주의 역사였음을 되새길 때이다.

군사정권의 폭력 피해자인 강민조 님을 만나다

최근 들어 경찰과 집회 시위자 간의 충돌은 격화되고 있으며, 경찰폭력에 대한 우려도 커가고 있다. 1991년 노태우정권 시절 경찰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목숨을 잃은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선생을 만나 과거와 현재의 경찰폭력에 대한 체감정도를 들어봤다. 강경대 열사(1972~1991)는 사망 당시 명지대 1학년 재학생으로, 명지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광철 씨 구속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이던 중 전투경찰의 쇠파이프와 몽둥이에 맞아 숨졌다.

◆요사이 경찰폭력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상당히 무섭다. 이승만 정권 말기, 4.19때 나도 학생이어서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정권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삼권분립은 사실상 없었고 청와대 말이 법이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검찰과 경찰의 태도는 대통령 성향에 얼마간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최근 경찰들의 모습은 '협의'보다 '지시'에 익숙한 CEO출신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10년간 민주화 세상은 있어서는 안 될 세상이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경찰의 모습도 민주화운동 이전, 일제순사와의 모습과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민주화 이전과 현재의 경찰폭력,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제말기, 우리나라에는 무학자가 많았다. 일제순사가 교육을 시켜도 잘 따르지 못했다. 그러면 동네 이웃 혹은 친척 둘을 세워놓고 뺨을 때리게 하는 등 갈등을 유발시켰다. 요즘 경찰폭력은 그런 양상을 닮아가는 중이다. 학생, 시민, 노동자가 시위할 때에는 그 속에 주장하는 바가 있어서 시위하는 것이다. 정권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을 외침으로써 알리는 것, 시정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위가 정권을 엎어버리고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정권은 이것을 단지 싸움 내지는 갈등으로 인식한다. 나는 91년에도 그 모습을 보았다. (힘)없는 사람에게 경찰은 최고의 권력자였다.

◆ 국가폭력 피해 경험자로서 느낌을 말한다면.
실제로 겪어 보지 않으면 심정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남은 인생 편히 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진짜 위로는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언제나 함께 못해줘서 미안하다.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정도면 족하다. 여생을 놀면서 지내라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 경찰에게도 할 말이 있다. 경찰들은 자신이 한 일은 아니더라도 경찰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유족에게 아주 작은 양심이라도 가져야한다. 경찰은 가해자인 셈이고 우리에게는 죄인이다. 이 정도는 가슴에 가질 인간,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경찰은 욕을 하고 상스러운 짓을 유족에게 한다. 그런 모습이 경찰의 모습일까. 경찰폭력은 국가폭력, 법에 의한 '정당한'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에 가만히 있는 사람 방패로 찍으라는 법이 있는가. 91년, 나는 감옥에 가게 됐다. 그런데 내 재판정에 우리 가족이 들어오지 못했다. 들어오려는 부인을 방패로 찍어 저지해서 생니가 뽑히고 부러졌다. 경찰은 법에 의거해 시민들의 질서유지를 시켜야한다. 그런데 경찰이 되레 법을 지키지 않았다. 정당한 집회는 존중받고 법을 어긴다면 경찰력이 동원돼야하는데 그 전에 나서서 미리 막는다. 그 예로 얼마 전 서울 광장 폐쇄가 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대한민국은 정권과 경찰의 소유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공권력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찰은 무기, 권력 등을 갖고 있다. 시민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요즘 경찰진압은 토끼몰이 식이다. 산에서 토끼를 잡을 때 총도 없고 할 때 많은 사람이 호루라기로 토끼를 가운데로 모으는 것이 토끼몰이다. 나갈 구멍 없으면 작은 토끼도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인데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시민이 저항하는 것을 ‘공권력에 대해 대들었다, 공무집행 방해’라고 한다. 힘을 가진 자로서 경찰의 참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은 먼저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경찰 권력이 싸움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폭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찰은 스스로가 권력자가 아니고 국민의 심부름, 아픔을 치유하는 자임을 깨닫고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경찰의 눈이 맑아져야한다. 지금 경찰 다수의 눈은 의심의 눈초리다. 살인자의 눈이다. 변하지 않으면 국민이 경찰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눈동자를 바꾸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경찰을 하며 국민을 위해 자손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경찰이 되어야할 것이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진정한 경찰로 거듭나길 바란다.
덧붙임

윤미 님과 이진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