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이주노동자 노예로 만든 고용허가제

이주인권연대, 고용허가제 시행 1년 실태조사 결과 발표

16일로 다가온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을 맞아 10일 이주노동자인권연대(아래 이주인권연대)가 고용허가제 1주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10일 열린 실태조사 보고회

▲ 10일 열린 실태조사 보고회



사업장 이동 가로막는 노예허가제

조사결과 고용허가제 도입 당시 최악의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사업장 이동 제한'이 예측대로 이주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주범으로 드러났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이 가능한 사유를 △회사 사정에 의한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계약의 기간이 만료된 후 사업주가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경우 △휴업, 폐업, 도산 등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계속 근로할 수 없다고 인정된 경우 △입국 전 계약한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에 대한 계약 위반 등으로 제한하고 횟수도 3회로 한정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취업 및 고용관리지침'에서 사업장 이동이 가능한 근로조건 위반을 처음 제시된 근로조건과 실제임금 근로시간이 2할 이상 차이가 있을 때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주가 약속한 급여와 노동시간에 비해 2할 이상 차이만 나지 않으면 그보다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근로시간을 연장하더라도 사업주가 계약 갱신을 요구하는 한 이주노동자가 이를 거부하고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는 없는 것.

실제로 응답자 가운데 69명(63.3%)이 사업장 이동을 원했으며 그 이유로는 △낮은 임금(27.2%) △과중한 업무(26.3%) △장시간 노동(17.5%) △고용주의 언어/신체적 폭력(9.6%)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사업장 이동을 원하면서도 다른 회사로 옮기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거나(33.3%) △고용주가 협조하지 않거나(26.7%) △불이익을 염려하기 때문(13.3%)이라고 응답했다.


1년 단위 재계약 결정권은 사업주에게만

국내 취업기간을 최장 3년으로 제한하고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되 그 결정권은 사업주에게만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주인권연대는 "응답자 대부분은 회사와 1년 고용 계약이 끝난 후에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희망에 따라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으로 잘못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법률상으로는 재계약 결정권이 사업주에게만 주어"지므로 "회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회사가 재계약을 요구할 경우 계약을 거부할 수 없는 불평등한 관계"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입국 후 근로조건이 달라져도 사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국 전 알고 있었던 근로조건과 입국 후 실제 근로조건이 달라졌다고 응답한 비율(중복응답 가능)은 △임금 45.1% △근로시간 53.5% △업무내용 19.7%에 달했다. 이주인권연대가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입국한 필리핀 출신 한 이주노동자는 하루 8시간 기준으로 65만원을 받기로 한 원래 계약과는 달리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야 2교대(주간 11시간, 야간 13시간)로 일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는 회사를 바꾸고 싶다는 요구를 했다가 경찰을 부르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64만원에서 7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응답자가 47%에 이르렀으며 64만원 미만도 5.7%에 달했다. 이에 비해 하루평균 노동시간이 12시간 이상인 응답자가 42.4%에 이르렀다.

한편 송출브로커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아래 안산센터)의 인도네시아 현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입국 비용은 노동부가 파악하고 있는 금액의 2배에 달하는 2000달러에 이르렀다. 안산센터 박천응 소장은 "한국을 택하는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송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리대금 사채를 빌리고도 평균 6개월 이상을 기다린다"며 "그동안 돈을 벌지 못해 계속해서 이자를 물어야 하고, 입국 후에는 빚독촉을 견디다 못해 보다 나은 임금을 주는 회사로 이탈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6월 13일부터 7월 20일까지 이주인권연대 소속 지역상담소에 의해 실시됐다. 이주인권연대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입국한 이주노동자 134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이 가운데 44명을 심층 면접했다.

한편 10일 이주인권연대는 고용허가제 시행 1주년 성명서를 통해 △MOU 체결국가에 담당공무원을 파견배치해 송출비리를 척결하고 △사업장 이동 제한을 폐지하며 △사업주에 대한 소양교육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 교육을 실시하고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도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14일 연행돼 현재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는 이주노조 아노아르 위원장이 8일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한국 정부는 스스로 고용허가제는 실패한 제도라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동자는 자유롭게 일하고 자기 능력에 따라 대우받을 수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불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