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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출입국관리법을 갈아엎자

제1회 이주와 난민 포럼 (하) <끝>

[편집자주] <인권하루소식>은 제1회 이주와 난민 포럼(아래 포럼)의 논의내용을 3회로 나눠 소개한다.


강제단속과 보호소의 인권침해에 이어 포럼에서는 출입국관리법 개정 문제도 제기됐다.

지난 3월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홍승구 판사는 나이지리아 출신 치네두 폴 오그보나(아래 폴) 씨가 보호소 내에서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3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2년 7월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폴 씨는 같은해 10월 9일 아침 자신이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는 것을 비디오로 촬영한 보호소 직원에게 물을 뿌리며 항의하다 수갑을 찬 채 독방에 감금당했다. 이후 폴 씨는 건강악화로 보호일시해제된 후 2003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4년 6월 28일 폭행사건으로 용산경찰서에 입건되어 서울출입국사무소에서 보호조치를 받다가 다음날인 29일 본국으로 강제퇴거됐다. 이 과정에서 담당 변호사는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해 이번 재판은 원고인 폴 씨가 없는 채로 진행됐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보호외국인도 타인과 교류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관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고, 이는…헌법상의 기본권에 속한다"고 전제하고, 독방 격리와 이를 위한 수갑 사용에 대해 "(이를 규정한 외국인보호규칙과 시행세칙은) 법률에 유보 조항 없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항이어서, 이를 근거로 원고를 격리보호하거나 독서 등을 금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 비디오 촬영의 경우도 "시험찰영을 했다"는 직원의 진술을 들어 촬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의사에 반해 촬영해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출입국관리법 전체가 운동의 초점에 들어와야

이번 판결은 외국인보호소에서 자행되는 독방감금, 수갑사용 등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 2일 개정돼 6월부터 시행되는 출입국관리법이 △강제력 행사와 격리보호의 요건 △경찰봉·전자충격기 등 강제력 행사를 위한 보안장구 열거 △수갑·포승·안면보호구 등 계구의 사용 △면회·서신·전화통화 허가제 △감시장비의 설치 등 기존에 외국인보호규칙 등에 있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법률로 옮겨와 이번 판결의 취지를 다른 사건에도 적용하기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홍예연 씨는 "기본권 제한을 법률로 규정하였다는 점에서는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지만…격리보호나 강제력 사용 등이…(개정 전에는)…위법을 다툴 수 있었던 데 반해 이제 엄연히 법률로 규정되었으므로 기본권 제한이 용이해졌다고 볼 소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 씨는 "기존에 시행되던 내용은 그대로 하고 형식만 법률로 옮겨놓은 것이라면 실질적인 개선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평등노조 이주지부 사무국장 쏘냐 씨는 "그동안 우리가 싸워왔던 인권침해적 조항을 모두 법률로 옮겨놓은 셈"이라며 "출입국관리법 개악을 막아야 했지만 강제단속 문제가 너무 급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황필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출입국관리법이 입법예고된 후 정당은 물론 사회단체 등 운동세력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며 "단속과 보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를 감시하기 위해 출입국관리법 전체가 운동의 초점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 씨는 "이번 개정은 대부분 관계 공무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며 "법률에 대한 위헌 소원이나 개별 소송을 통한 대응 등 세부적인 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제퇴거 처분에도 무죄추정 원칙 지켜져야

한편 출입국관리국의 강제퇴거 결정에 대해 보호소에 갇힌 외국인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집행을 중단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46조는 강제퇴거 사유를 입국금지 사유인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경제질서 또는 사회질서를 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등에서 원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정훈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용의자가 범죄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도 혐의 확정 전에 강제퇴거결정을 하고, 구속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용의자를 강제퇴거를 위한 보호제도를 이용해 보호소에서 인신의 자유를 제한한 채 수사절차가 진행되도록 하거나, 범죄혐의가 경미하여 기소유예처분 또는 약식기소에 의한 벌금형이 부과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강제퇴거결정 및 집행을 하는 사례들이 지적되고 있다"며 "외국인의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에 집행정지를 하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표적단속에 의해 보호소에 갇혔다가 2004년 4월 1일 강제출국 당한 평등노조 이주지부 전 위원장 샤말 타파 씨. 그는 출국 몇시간 전에야 강제출국 결정을 통보 받았다.

▲ 표적단속에 의해 보호소에 갇혔다가 2004년 4월 1일 강제출국 당한 평등노조 이주지부 전 위원장 샤말 타파 씨. 그는 출국 몇시간 전에야 강제출국 결정을 통보 받았다.



정 변호사는 "강제퇴거는 일반적인 행정절차와는 달리 일단 집행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처분이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원상회복할 수 있는 실효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비록 행정처분이기는 하나 형사절차상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의 정신이 존중되어야 필요성이 특히 크다"고 밝혔다.

출입국관리법이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출입국관리법 제17조는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정치활동을 한 때에는 그 외국인에 대하여 서면으로 그 활동의 중지 기타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 정치활동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질서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의 결성 및 가입을 금지하는 등 극히 예외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출입국관리법

이계수 교수(건국대 법학)는 "출입국관리법은 입국심사, 지문채취, 외국인 등록, 강제퇴거, 보호, 출국명령 등을 통해 외국인을 감시의 관리·감시대상 나아가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면서 "체류 관리의 대상에서 기본권의 주체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외국인은 득표 대상이 아니므로 그동안 외국인법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법의 대명사"였다며 "보호, 강제출국과 관련된 본질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부에게 위임하지 말고 입법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방기되어 외국인의 인건은 철저하게 무시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 보호는 형사처벌이 아니므로 징벌이나 교정교화의 목적을 위한 기본권의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타당하다"면서도 "사실상 형사처벌처럼 운용하고 있으면서도 형사절차에서 인정되는 제반 권리들은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단속과 연행시 미란다 원칙 준수 △법원의 결정에 의한 외국인 보호명령장 발부 제도 △보호기간 최장 3개월로 제한 △진술거부권의 허용 △변호인의 조력 △보호 외국인에 대한 국선변호인 제도 등을 제안했다. 또 "보호중인 외국인이 받게 될 심리적 압박은 교도소 혹은 미결구금시설 수용자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교도소에 있는 심리상담사에 해당하는 심리상담사가 보호소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법체류자' 강제수용의 대안 찾아야

포럼에서는 '불법체류자 강제수용'의 대안형태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외국인 보호조치는 강제퇴거라는 행정처분을 편리하게 집행하기 위한 행정적 수법에 불과하며 비례원칙에 반한다"며 "외국인의 인권을 덜 침해하는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수용 대신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이 일정한 장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체크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9.11 이후 미국에서는 국가안보에 구체적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 난민신청자 1700명에게 전자족쇄를 채워 24시간 전자감시가 가능해졌다"며 "수용의 대안 형태에 대한 연구와 시도를 서둘지 않으면 우리의 경우에도 전자족쇄 얘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