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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1] 파업에 민·형사 면책을 허(許)하라

권리행사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007년 7월 1일 ‘비정규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자본은 계약직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고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 하려 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21일간 매장을 점거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해 파업대오를 해산했다. 그도 모자라 사법부는 ‘가처분’ 결정으로 매장 주변에서의 현수막 부착과 피켓 게시마저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노동조합은 1000만원, 조합원은 100만원을 사측에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어 7월 29일 협상을 요구하며 재점거에 들어간 노동자들도 이틀만에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또한 7월 31일 연세의료원 파업은 사용자의 직장폐쇄로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왜 이랜드의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와야 하는 것일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파업권이 왜 현실에서는 법의 이름으로 거부될까? 손해배상과 가압류, 가처분 등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권과 자본이 사용하는 법 논리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7월 31일 뉴코아 2차 점거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이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7월 31일 뉴코아 2차 점거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이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파업권 쟁취의 역사

파업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고용되어야만 노동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약자인 노동자가 자본가(사용자)와 비슷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대항권이다. 한국의 헌법도 헌법 제33조 1항에서 파업권을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의 헌법적 보장이란 원칙적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것을 범죄행위, 불법행위로 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사적으로도 18세기말~19세기초에는 ‘계약의 자유’를 절대시하며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금지하는 법령, 즉 ‘단결금지법령’이 존재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단결금지법령은 폐지된 것이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즉, 쟁의행위를 형사처벌하지 않도록 입법하거나 법령을 개폐하거나 아니면 기존 법령을 달리 해석하는 식으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보장받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1870년대를 전후하여 파업 등 쟁의행위를 처벌하는 단결금지법령이 폐지되었고 형사책임의 면책이 보장되었다. 그러자 자본가(사용자)는 손해배상과 같은 민사적 수단을 사용했고 이에 대항한 끈질긴 싸움으로 결국 파업권은 민사 책임의 면책까지 획득했다.

이러한 역사는 자본주의의의 모국인 영국에서 잘 드러난다. 1871년 노동조합법은 형법수정법과 함께 파업 자체는 합법이지만 파업수단은 범죄로 취급했다. 그러다 1875년에 제정된 공모죄와 재산보호법(the Conspiracy and Protection of Property Act)에 의해 노조가 취하는 쟁의행위를 합법화시키고 쟁의행위의 수단이 위법인 경우에만 개별적으로 범죄가 되어 형사처벌로부터 면책되었다.

그러자 영국의 자본가들은 민사책임을 들고 나왔다. 파업으로 인한 사용자의 손해를 인정하여 사실상 쟁의권을 박탈한 1901년 영국의 태프 베일(Taff Vale)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판결을 번복시키는 운동을 벌였고 결국 1906년 노조활동의 보호 법률인 노동쟁의법(Trade Dispute Act)이 만들어졌다. 쟁의행위는 이제 형사 처벌은 물론 민사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법은 노조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오히려 국가가 노동기본권 행사를 처벌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쟁의행위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을 뿐더러 쟁의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 많아 파업을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또 사용자가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며 제기하는 손해배상과 가처분을 법원이 광범위하게 인정하면서 파업은 민사 책임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파업권 행사를 가로막는 형사처벌과 민사처벌이 실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법조항을 통해 살펴보고 그것이 인권의 원칙과 얼마나 어긋나는지 따져보자.

7월 29일 뉴코아 강남점을 다시 점거한 노동자들이 경찰력 투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매장 안에서 열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7월 29일 뉴코아 강남점을 다시 점거한 노동자들이 경찰력 투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매장 안에서 열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법조항을 구체적으로 신설해 형사처벌의 족쇄를 달다

파업권을 포함한 단체행동권은 자유권적인 성격과 사회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단체행동권의 행사가 경찰권, 형벌권 등 국가의 억압대상이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획득했다는 의미(자유권)이며, 나아가 국가로부터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법령 등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의미(사회권)이다.

자유권적 성격이라 함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단체행동을 위한 모든 절차를 스스로 정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므로, 국가가 정한 절차에 따라 파업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의 노동기본권 침해이다. 그러나 한국은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쟁의행위의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심지어 구체적인 쟁의절차까지 법에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업 돌입 찬반투표 규정의 경우 1953년 노동쟁의조정법 제정 당시만 해도 찬반투표를 하지 않으면 ‘노조 명의’로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1986년 12월 개정에서는 기존 ‘직접무기명투표’가 ‘직접, 비밀, 무기명투표’로 바뀌었다. 1997년 3월 개정에서는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하지 아니하면”으로 개악되어 이를 충족하지 않을 경우 ‘불법파업’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 노조법 개악의 역사는 노동조합의 자율적인 결정과 행동을 보장하지 않고 국가가 법률로 외부적 통제를 단행함으로써 단체행동의 자유를 제한해 온 역사이다.

이에 비해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수단인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실시의 경우, 구체적인 절차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다. 정당성이 있든 없든, 직장폐쇄는 신고만으로 가능하며 대체근로는 신고도 필요없이 실시할 수 있다. 이렇듯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사용자와 노동자에 대해 형평성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는 금속노조가 한미FTA를 반대하며 벌인 정치파업을 두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파업이므로 엄중 처벌하겠다며 파업권 행사를 방해했다.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한·미 FTA의 최대 수혜자이고 현장 조합원은 물론 집행부도 파업에 소극적인데 일부 강경파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며 "조정 절차나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쟁의행위는 업무방해죄(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나 노동조합법(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권 행사의 절차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인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결정하고 행사할 문제이지 국가권력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또 파업의 목적을 단위사업장의 임금과 노동조건 문제로 한정하고 이를 벗어나는 ‘정치파업’은 불법파업으로 단정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방향과 노동권 실현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 정책, 정치적 쟁점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묵살하는 것으로 파업권을 제한하는 행위이다.

파업의 방식에 대한 규제 또한 문제다. 예를 들어 이랜드 노동자들이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매장 점거는 불법으로 규정된다. 법원의 판례는 일관되게 “파업시 사용자의 의사에 반하여 직장에 체류하는 쟁의수단인 직장점거는 사용자측의 점유를 완전히 배제하지 아니하고 그 조업도 방해하지 않는 부분적, 병존적 점거일 경우에 한하여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대법원 1990.10.12. 선고 90도1431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업 중에도 생산이 계속된다면 파업권은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게 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들이 행한 매장 점거는 생산의 중단, 노동의 중단이라는 파업권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업무방해의 인정은 파업권의 부정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가 파업권의 인정과 형사처벌의 면제, 업무방해로 인한 민사면책을 쟁취한 것은 사용자의 재산권보다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우선된다는 당연한 상식을 반영하고 있다. 파업은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노동, 평등한 노동조건과 임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임금노동관계에서 노동자의 노동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가(사용자)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노동의 중단 뿐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노동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면 자본가가 노동자의 요구를 고려나 하겠는가? 그래서 파업권은 다른 노동기본권을 실현하는 기본적인 권리로 가장 먼저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리의 실현인 파업권 행사가 형벌의 대상이 된다면 누가 이 권리를 행사하려 하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은 폭력행위가 없는 파업조차 범죄행위로 몰며 국가 형벌의 대상, 경찰력 행사의 대상으로 보는 반인권적 법 집행이 만연하고 있다. 파업권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헌법에 명시하면서도 파업으로 인한 영업상의 손해를 주장하는 사용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업무상 방해와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파업권이 이름뿐인 ‘명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인 현실에서 사용자의 재산권보다 노동기본권의 보장이 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사회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재산권의 행사가 사회공공복리에 종속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파업권을 진정으로 보장하려면 국가는 업무방해 등 형사·민사상의 책임을 면책하는 전면적인 쟁의행위 보장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형사상, 민사상 책임 면제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며 강조점을 ‘정당한’에 두고 있어 마치 ‘부당한’ 쟁의행위가 있음을 상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아가 불법파업의 처벌조항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권 실현에 역행하고 있다.

파업권 실현을 위해 지금 국가가 할 일은? 파업 불개입!

파업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단체행동으로 인한 업무방해, 손해배상, 가처분은 쟁의행위에 적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쟁의행위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명시된 노동조합법의 단체행동권 조항은 폐기하고 노조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만약 노동자가 한달 월급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가처분 결정의 벌금에 시달린다면,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 백지 계약서로 상징되는 고용불안에 노동자가 어떻게 맞설 수 있겠는가. 나아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수많은 노동자가 형법상 업무방해, 이에 따른 체포영장, 가처분·가압류·손해배상으로 인해 온전한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인권을 파괴하는 국가폭력이다. 정부가 파업권 실현을 위해 현재 해야 할 일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국가 개입이 아니라 파업에 대한 불개입과 사용자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이다. 그러할 때만 정부는 ‘자본 편들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