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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미등록 이주아동이 내일을 꿈꿀 수 없는 이유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라!

“한국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특별히 제가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없는 아이래요. 엄마 아빠는 국적이 있는데, 저와 동생은 엄마, 아빠의 국적도 가질 수 없고, 한국 국적도 가질 수 없어요. 그럼 저는 누구일까요? 너무 이상해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이방인 취급을 해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 공동협력사업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나온 미등록 이주아동이 재학중에 겪는 불이익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이 미등록 상태가 되는 건 부모의 체류자격을 반영한 결과다. 합법적으로 온 가족이 동반 입국해서 체류 연장이 되지 않거나, 부모가 미등록 상태에서 자녀를 출산하거나 혹은 출생등록조차 못 하는 경우 등 상황은 다양하다. 말 그대로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등록‘이라는 존재는 그저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강제퇴거 되어야 하는 단속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아동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사회로부터 배제가 일상인 삶

현재 국내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권리는 정책적으로 기본권 보장이라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보장되기보다는 일부 소극적 조치에 그치고 있다. 2012년 미등록 상태였던 몽골이주고등학생이 부모와 분리되어 단독으로 강제추방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주아동 교육권 보장과 안정적 체류의 필요성이 이야기됐다. 이후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무원의 강제퇴거대상자 통보의무를 교육기간에 면제했다. 이로 인해 미등록 이주아동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강제퇴거가 유예됐다. 몇 차례 초ᆞ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체류자격 관련 서류가 미비하더라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등록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취학통지서와 같은 입학절차에 관한 정보 접근은 어렵고, 학교가 입학을 거절하면 대처방안도 없다. 운 좋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교육권이 보장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학교 밖에서 또 다른 배제된 현실을 마주한다. 미등록 상태는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번호’가 부여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료보험에 가입도 불가능하고 병원비 부담도 커진다. 아프면 참는 게 최선이 된다. 그 외에도 각종 대회에 출전하거나, 자격증시험응시 같은 기회로의 참여도 차단된다. 휴대폰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개통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한 용돈벌이 등 일상을 유지하는 활동도 크게 제약을 받는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많은 일상은 차별의 경험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킬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기회를 차단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현행 국내법 체계 안에 미등록 이주아동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없어 삶을 제대로 계획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새로운 시작점이자 여전한 문제

지난해 10월 인권위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지속적인 체류를 원할 시 체류자격 심사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제도마련 이전에라도 현행 법·제도상 가용절차를 활용하여 체류자격 부여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의 권고를 일부 수용한 법무부는 올해부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시행했다. 법무부의 이번 대책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체류자격을 취득할 경로가 없는 현행 법·제도를 인권침해라고 판단한 결정을 받아들이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문제는 이 대책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조건부 대책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생자이며, 15년 이상 국내에서 장기체류하고, 신청일 기준 국내 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 졸업자여야만 한다. 혹여 퇴학 조치나 범법행위 등의 경우가 발생하면 체류 기간은 연장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미등록 거주 기간에 따른 범칙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렇게 엄격하게 설계된 이번 구제대책에 법무부 추산 2만 명 정도 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90% 이상은 해당 사항이 없다. 사실상 이번 대책은 여전히 대다수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배제되고 강제퇴거와 가족 강제분리라는 삶의 조건을 크게 바꿔놓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구제대책의 효과와 한계가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의정부 엑소더스 이주민센터 강슬기 활동가에게 물었다. 강 활동가는 이번 대책은 새로운 시작점인 동시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두 명의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제대책을 신청해서 고등학생 A가 체류 외국인 등록증이 나왔어요. 건강보험도 가입하고 통장을 만들었어요. 구체대책이 아니었으면 대학도 못가고 그냥 미래라는 게 없거든요. 사실상 고등학교 졸업하면 강제추방되는 거였어요. A가 자기 미래가 이제 풀리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다른 고등학생 B가 있어요. B는 두 살 때에 한국으로 왔어요. 내년에 고3이 되는데 구제대책을 신청할 수 없으니, 대학진학을 못 할 가능성이 높아요. A와 B의 차이는 국내 출생 여부밖에 없거든요. 한편 신청자격이 있어도 부모에게 부과되는 거액의 범칙금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기도 해요. 미등록체류기간이 7년 이상 머물렀다고 하면 3천만 원 나오는데요. 법무부가 3개월 이내에 범칙금을 내면 일괄 70%를 깎아줘서 1인당 900만 원까지 내려준대요.”

 

구제를 넘어 모든 아동의 권리 보장으로

현행 아동복지법은 모든 아동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성장하고, 국가는 이를 위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하다는 기본 이념을 견지한다. 이는 한국이 비준하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한데, 한국정부는 아동권리협약의 이행 당사국으로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 아동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무 주체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아동권리위원회와 이주노동자권리위원회가 공동으로 채택한 <국제이주 맥락에서의 아동 인권에 관한 출신국, 경유국, 목적국 및 귀환국에서의 국가의무에 관한 일반논평> 역시 구체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발달에 대한 권리와 최상의 이익 원칙을 고려한 정책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법무부 대책이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 조치라고 볼 수 있을까? 이에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단법인 두루 김진 변호사는 “구제대책은 아동의 최상의 이익의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출입국 차원의 외국인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아동이 반드시 누려야 하는 권리에서 소외되는 면이 있다’ 며 구제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차등하는 현재의 정책을 비판했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구체적인 미등록 이주아동의 삶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정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추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가 ‘학교는 다니게 해줄게, 최소한 응급 치료는 받을 수 있게 해 줄게’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지금의 구제대책이다. 그러나 그 대책명으로 드러나듯 아무리 구제대책이라 내세워도 ‘불법체류’라는 낙인과 함께 강제퇴거가 한시적으로 유예된 조건부 체류 상태에서 여전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존재를 숨겨야 하고 언제든 쫓겨날 수 있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조건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이 삶을 기획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차단된다. 이번 법무부 대책이 일부 나아간 지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시로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체류기간을 연장해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아동의 권리 보장의 방향 속에서 미등록 이주아동 정책이 마련될 때,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존재가 비로소 가시화되고 권리 보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으며, 존재 자체가 불법일 수 없다는 이주인권운동의 오랜 문장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불법 사람은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