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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최은아의 인권이야기

호주제 폐지 이후 호적제도의 개혁 과제


지난 4일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를 주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함에 따라, 이번 국회에서 민법개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호적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호주를 기본으로 가(家) 중심의 법적 신분관계를 국가에 등록하도록 한 현행 호적제도는 호주제 폐지 이후 호적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을 구성·운영해오면서 최근 그 대안으로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채택했다. 이제는 가족별 편제냐 개인별 편제냐에 대한 논쟁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고,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해 공개된 개인별신분등록제 안은 개인을 기준으로 신분변동사항(출생·혼인·사망·입양 등)을 기록하고 이곳에 부모, 배우자, 자녀의 기본 신분사항도 함께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개인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본인 이외의 배우자, 부모, 자녀의 신분사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에 따라 부모, 배우자, 자녀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형태만이 '정상가족'이라는 지금의 고정관념을 유지시킬 위험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부모가족이나 독신가족, 이혼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별신분등록제에는 개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 등록하면 된다. 그 외 신분변동사항은 출생부, 혼인부, 사부 등 사건별로 편제된 별도의 공부(公俯)를 만드는 방식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또 하나 호적제도를 개정하는 데 있어 검토해야 할 사항은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이다. 그 동안 한국의 국가신분증명제도는 과도한 정보집적으로 인해 인권을 침해해 왔다. 행정자치부에서는 주민등록제도를 통해 동적인 신원사항을 파악해 왔고, 대법원에서는 호적제도를 통해 호주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정적인 신분관계를 파악해 왔다. 개인의 신분관련 정보를 두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수집·관리하는 것은 정보의 과다한 집적이다. 게다가 이 안은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부모, 배우자, 자녀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중으로 신분등록제도를 운영해야할 어떤 이유가 있는가? 이 시점에서 이원적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주민등록제도와 호적제도의 통폐합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호주를 근간에 둔 현행 호적법의 연원은 일본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효과적인 식민통치를 위하여 자국의 호적제도를 한반도에 이식시킨다. 일본의 호적제도는 막부 중심의 봉건제를 청산하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체계를 만드는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신분등록제도였다. 이 제도가 안착되자 일본에서는 징병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군국주의가 등장한다. 패전이후 일본은 호주제를 폐지했지만 한반도에서는 지난 50여년간 호주를 중심으로 한 호적제가 유지되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에 관한 논의는 그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