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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호주제 딛고, 날자!

실질적인 양성평등 위한 후속조치 뒤따라야

여성 차별의 대명사 '호주제'가 드디어 폐지됐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재적 296명 가운데 235명이 투표해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민법개정안이 통과되자 여성단체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아래 여연)은 2일 성명을 통해 "뿌리깊은 성차별 역사를 재생산·강화시켜온 호주제 폐지를 대단히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연 이구경숙 정책부장은 "호주제 폐지가 지연되어 피해자들에게 미안했는데 이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조지혜(언니네트워크) 활동가도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첫 단계로서 호주제 폐지를 환영한다"며 "새롭게 만들어갈 신분등록제도가 인권의 윈칙과 일치하도록 만들어져 호주제 폐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호주·호적제는 부계중심, 가부장의 상징

1957년 민법 제정 이후 호주제는 '부가입적' '호주 승계시 남성 우선' 등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평등권을 침해하며, 남아선호 사상을 유지·강화시켜왔다. 또한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 단위로 편제되는 신분등록제인 호적제는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원을 증명해 왔다. 한마디로 호주제와 호적제는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이 사회에서 부계중심성, 가부장성을 대표해온 제도이다.

이를 반영하듯 1999년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자유권규약에 따른 2차 한국 정부보고서를 심의한 후 "호주제는 여성을 종속적인 역할로 위치 짓는 가부장적 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강화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2001년 6월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규약에 따른 2차 한국정부 보고서를 심의한 후 호주제에 관해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가 계속 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미 지난 2월 3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가 성(性)에 기초해 가족구성원의 법적 지위를 차별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라고 결정한 바 있어 이번 국회 통과는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법개정안, 혈연중심의 가족개념 유지

이번 민법 개정은 호주제 폐지로 가족 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가족해체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현실과 부합하지 않은 가족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점,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성원칙주의를 따르고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여성·인권단체들은 가족개념을 삭제하고, 성씨를 따르는 데 있어서 부모가 협의하여 부 혹은 모, 부모 양성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나 민법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못한 것.

우선, 민법개정안에는 호주에 관한 규정이 삭제되고 호주와 가(家)의 구성원의 관계로 정의되고 있는 가족에 관한 규정이 새롭게 재정의 됐다. 새롭게 규정된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이에 대해 2일 여성민우회는 성명서를 통해 "호주제 폐지를 환영"하면서도 "(민법개정안이) 가족의 범위를 혈연중심 관계로만 규정해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다양한 가족공동체가 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부와 미혼자녀를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고아, 한부모 가족, 비혼모·부, 비혈연 공동체, 독신가구, 동성간·이성간 동거 등의 형태를 '비정상화'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


관행적으로 부의 성 따를 수도…양성평등 위한 후속조치 있어야

자녀의 성과 본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민법개정안은 "자(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국가가 개인에게 부의 성을 강제로 따르게 한 것을 완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 타리 활동가는 "성 씨 선택에 있어서 양성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가 뒤따라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부계혈통을 따르는 관행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민법개정안은 2008년 1월 1일까지 유예기간을 둬 그전까지는 호주제가 한시적으로 존속된다. 이 기간동안 정부와 국회는 현행 호적을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마련하게 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내 새로운 신분등록법을 제정할 방침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