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격리 정책이 부른 사회적 죽음

한센병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여전

"타고 가는 버스나 열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진다든지, 식당에서 밥이 다 떨어져 팔 수 없다고 거절을 당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11일, '문둥병'이나 '나병'으로 더 많이 알려진 '한센병' 병력자들과 가족 200여 명이 모인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그동안 이들이 겪어온 차별과 편견에 대한 한맺힌 절규가 터져나왔다.

"부모가 한센병이라는 것이 주위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자신을 고아라고 하기도 하고,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숨어서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완치된 후에도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센병력자들은 물론 가족들이 경험해야 했던 고통은 구구절절 안타까운 사연들로 가득했다.

한센병 병력자들과 가족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한센병인권보고대회에서는 한센병을 둘러싼 인권문제와 해결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토론회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가톨릭대 채규택 의과대학 교수는 "한센병이란 전염성이 아주 약한 병이며, 리팜피신 1회 복용으로 99.9%의 균이 죽어 전염성이 없어져 가족이나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한센병력자들이 격리와 배척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국가의 격리 정책에서 비롯됐다. 식민지 시절인 1916년 일본은 전염을 차단한다는 미명 아래 조선인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로 강제 격리 수용해, 강제노동과 단종 및 생체실험 등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격리 정책은 해방 후 1963년까지 한국 정부로 이어졌다. 폐지 후에도 정부는 한센인들에게 '자립 정착촌'을 권장, 이는 사실상 소록도를 육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했다. 현재 87개에 달하는 정착촌은 또 다른 사회 격리로 일반인들에게 '한센병이 전염성이 강해 격리 수용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유지시켜 왔다.

이에 대한변협 한센병인권위원회 박찬운 변호사는 "한센병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한센병과거사 특별기구'는 물론 특별법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소록도 84인 학살사건(한센병 환자 84인이 죽임을 당함), 비토리 사건(비토리 주민들이 한센병 환자들 천막에 불을 질러 26명이 죽고 70여명이 다침), 오마도 간척지 강탈 사건(한센인들을 시켜 바다를 막은 다음 정부가 보상도 하지 않고 쫓아냄) 등 진상조사는 물론 공론화조차 되지 못한 사건들이 무수하다.

이 외에도 소록도병원운영규칙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운영규칙에 따르면, 병원은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력자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며, 환자(병력자 포함)의 면회, 외출, 외박 등과 관련, 환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이에 박 변호사는 △병원장의 관할권을 섬 전체가 아닌 병원 시설에만 국한할 것 △환자들의 권리 제한을 질서 유지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할 것 등을 주장했다.

한편, 일본에 의해 강제 격리된 한센병력자 111인에 대해서는 일본을 상대로 한 '한센병 보상금 지급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