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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인권위, 검찰 견제 역할 스스로 포기했다

불공정 불기소처분 관련 진정 받지 않기로…법률적 사고가 인권위 망쳐


기소독점주의 아래 검찰이 부당하게 불기소 처분을 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한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아래 인권위)는 이를 조사할 수 있을까? 이른바 '불공정 불기소 처분 등에 대한 진정사건 처리방안'(아래 불기소처분 처리방안)에 관해 인권위는 1년 가까이 논의를 끌어오다가, 지난달 26일 제42차 전원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조사불가' 결정을 내렸다.<관련기사 본지 4월 23일자 참조>

이는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인권위가 견제 기능을 아예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여서, '검찰 등 권력기관에 맞선 인권의 나팔수 역할을 기대'하며 인권위에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인권단체와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김창국 위원장은 이번 논의과정에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옹호하고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질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불공정 불기소처분은 인권침해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동운 인권위원은 '검찰의 불공정한 불기소 처분'에 대해 검찰항고, 재정신청, 헌법소원 등의 구제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인권위에 진정한 경우 인권위는 이를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권위법 제32조 1항 5호는 "진정이 제기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하여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재판,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그 밖의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 그 진정을 각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 위원에 따르면, 이 조항은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만을 각하사유로 명시하고 있고, 권리구제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제3의 경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 불기소처분 자체가 인권침해 행위임은 명백하다. 이미 헌법재판소도는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1989.7.14.선고 89헌마10 결정 등) 따라서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다른 권리구제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경우, 인권위는 인권위법 제32조 1항 5호에 의해 각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신 위원의 주장이었다.


법조계, 보수적인 법 해석 내놓아

이러한 신 위원의 의견은 인권위가 불공정 불기소처분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법 해석으로,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42차 전원위원회 안건지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불공정 불기소처분과 관련해 인권위의 자문요청에 응한 한국헌법학회,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법인 광장, 법무법인 삼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법무부 등은 모두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다른 구제절차를 경유하지 않고 인권위에 진정한 경우 각하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법조계 단체들은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두 경우로 나눠 의견을 제시했다. 첫 번째 검찰항고 등의 신청기간이 경과한 경우, 인권위는 권리구제절차가 종결된 것으로 봐서 각하해야 한다고 것이 법조계 단체들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신청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해석은 조금씩 달랐다. 한국헌법학회, 법무법인 삼한 등은 검찰항고 등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법무부는 진정인의 의사에 따라 재수사 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 미확정의 상태이므로, 수사 또는 권리구제절차가 계속 중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불기소처분이 있으면 일단 수사가 종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권단체들, 법조계 논리 반박

반면 14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쇄신을 위한 열린 회의」(아래 열린회의)는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다른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권위에 진정한 경우, 인권위가 각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유일하게 제시했다.

열린회의는 "이 사안이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향후 활동방식 등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고 판단"해 인권위의 자문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0일 <기소독점주의 아래 '검찰의 불공정한 불기소 처분에 대한 진정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열린회의는 의견서에서 "검찰항고 등은 진정인의 항고 등에 의해 비로소 개시되는 것"이라며 "개시되지도 않은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의제하여 인권위의 활동범위를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열린회의는 "다른 권리구제절차의 신청기간이 경과했다 하더라도 당해 절차가 '종결'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법조계 단체들의 논리를 반박했다. 만약 법조계 단체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헌법소원은 인권침해가 있는 날로부터 1백8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하므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건은 1백80일이 경과함으로써 구제절차가 '종결'되어 더 이상 인권위에 진정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졸속적인 인권위 의결과정

이처럼 불공정 불기소처분의 처리방안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인권위는 가장 적극적인 해석을 받아들여 '검찰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역할을 마땅히 택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의결과정을 보면, 인권위는 법조계가 제출한 보수적인 법 해석을 근거로 검찰 견제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방향으로 성급하게 결정을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불공정 불기소처분 처리방안이 1년 가까이 신중하게 논의되어 온 것과 비교할 때, 이는 분명 졸속적인 의결과정이었다.

당시 제42차 전원위원회를 방청했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전하는 의결과정이다. 먼저 안건설명과 자문의견에 대한 사무처의 발제가 끝나자, 김창국 위원장은 모든 법조계 단체들이 인권위의 자문요청에 대해 각하 의견을 제출한 사실을 거론하며 전원위원회에 각하 의결을 주문했다. 이때 신동운 위원이 일본의 검찰심사회 제도 등을 예로 들며 '각하'에 대해 반대의견을 피력했고, 김 위원장은 별다른 논의과정 없이 곧바로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 결과, 신동운, 김오섭, 이흥록 등 3명의 위원만이 불공정불기소처분에 대해 인권위가 각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손을 들었다. 법조계 출신인 유 현, 조미경, 김덕현 위원은 물론, 운동 경험이 있는 박경서, 류시춘, 정강자 위원도 신 위원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은 셈이 됐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인권위가 각하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불기소처분 처리방안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인권위가 불공정 불기소처분을 각하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정리했어야 했다.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대해 각하해야 한다고 자문했던 법조계 단체들 사이에서도 각하의 사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새사회연대 오영경 씨는 "불공정불기소처분에 대해 인권위가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는 그냥 스쳐가는 분위기였다"라며, 이번 의결과정에서 책임있는 논의가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은 불공정불기소처분에 대해 인권위가 각하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검찰이 자의나 독선, 혹은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인권침해 혹은 범죄행위를 기소하지 않음으로써, 인권침해 상태를 지속시키고 침해된 인권의 회복을 가로막는 경우는 군사정권 시절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의문사위가 87년 김준배 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폭행사실을 확인하고 고발조치한 가해경찰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한 바 있다. 울산구치소 구숭우 씨 사망사건의 경우에도, 인권위는 가해 교도관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가혹행위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률적 사고가 인권위 망친다

그렇다면 불공정 불기소처분에 따른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인권위는 왜 조사를 포기했을까? 이에 대해 열린회의는 3일 성명에서 "불공정 불기소처분을 인권침해로 체감하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인권위가 공감하지 못한 채 "단지 법리적인 해석만을 내"렸기 때문라고 꼬집었다. 이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해 견제제도가 없는 현실에서…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취지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기소독점주의의 폐해에 대한 김창국 위원장의 안이한 인식도 한 몫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14일 제39차 전원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뤄야 할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것도 불만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검찰이 불기소하였으면 그만큼 사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주장이었다. 이는 인권위원장이 할 이야기인지 의구심이 드는 발언으로, 어쨌거나 검찰 출신인 김 위원장의 부족한 인권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권단체 의견은 푸대접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법률적 사고만을 강조했을 때 인권단체에 대한 경시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이번 논의과정에서는 여과없이 드러났다. 이번 불기소처분 처리방안에 대해 인권위가 자문을 요청한 8곳은 모두 법조계 단체들이었다. 인권위가 자문을 구하는 곳도 지금까지는 주로 변호사, 법학자, 법조계 단체들로, 이는 인권위가 사안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인권의 언어보다는 법률적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나마 인권단체이 자발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한 경우에도 인권위로부터 푸대접을 당하기 일쑤다. 이번 불공정 불기소처분이 대표적인 경우로, 김 위원장은 전원위원회 안건지에 열린회의 의견서가 포함된 사실을 보고 "우리가 (열린회의에 자문을) 요청했나? (요청도 안 했는데) 이걸 왜 여기 넣어?"라며 인권단체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을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방청을 했던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김 위원장이 열린회의의 의견에 대해 크게 신경쓸 것 없다는 식으로 전원위원회 분위기를 몰고 갔다고 분명히 전했다.

현재 인권위는 '인권'위원회보다는 '법률'위원회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싶다. "위원장의 사고 안에는 법률단체와 몇몇 시민단체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가 경험했던 조직 이외의 나머지 단체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집단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전혀 유의미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법률가'라는 이름값에 부응하는 활동의 연장선일 수는 있지만, 인권 마인드를 가진 인권위원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 인권활동가의 신랄한 비판 앞에서 김창국 위원장과 인권위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