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사회권 현실과 국가의 의무 ⑤ (끝)

이주노동자, 단속과 관리의 대상


‘한달 임금 21만원, 하루 12시간․주72시간 노동, 최초 3개월 임금 보증금 이란 명목으로 미지급, 결근․지각․조퇴 시 임금삭감….’

세원전기공업주식회사(아래 세원전기)가 필리핀 연수생들과 체결한 계약조건의 일부다. 이는 ‘국내노동자들 보다 임금이 싸고 통제가 용이하다’는 세원전기의 이해와 ‘본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


불법을 양산하는 사회

그러나 이 계약은 애초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원전기 연수생들은 지난 3월 12일 임금 3만원 인상 등 지극히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단체행동을 했다. 그리고 무조건 업무에 복귀하라는 세원전기의 명령에 불복하여, 15일부터는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세원전기는 3월 31일 출입국관리소에 이탈신고를 했고 필리핀 연수생들은 불법체류자가 되어 오늘도 경찰의 단속망을 피해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세원전기 연수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엔지니어, 학원강사 등 전문기술인력을 제외하고 현재 정부는 산업연수생 이외에 이주노동자의 합법적 체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0년 8월 현재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산업연수생은 7만9천여 명이고 ‘미등록노동자’는 17만2천여 명에 이른다. 이는 26만7천여 국내 이주노동자 중 65%는 이미 불법체류자이며, 30%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일하다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인권의 실종, 구조적 악순환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는 지난 해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를 발간하여, 산업연수생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고발했다. 이 백서에 따르면 산업연수생들은 △외출금지 등 인신구금 △구타 및 언어․성폭행 등에 노출돼 있고, △신분증 압류 △송출비리 △강제적립금 등 이중․삼중의 관리체계에 속박당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연수생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다 불법체류를 택하면 신분이 보장되지 않아 단속과 강제추방에 불안해하며 ‘불법취업’한다.

산업연수생이건 불법체류자건 25만명에 육박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장시간노동을 기본으로 하여, 산재보험․의료보험 등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결혼과 교육에서도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열악한 노동조건--기본적 의식주의 불안정--가정생활과 여가생활의 불가능--사회생활에서의 절망’으로 구조화되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사회권조약 제2차 반박보고서’는 이에 대해, 정부가 “한국에 많은 이주노동력이 현실적으로 필요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연수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력 도입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편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총서 시리즈 중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사회’에서, 저자 설동훈 씨는 “단기적 이익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할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며, “외국인노동자를 단기적 생산요소로만 여기지 말” 것을 제안한다.


난민 불인정은 사회적 사형선고

자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들도 생존의 벼랑 끝에 허덕이고 있기는 마찬가지. 한국정부는 92년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조약과 의정서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이디오피아인 타다세 데구(26) 씨가 유일하다 난민지위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모두 104명.

지난해 한국정부에 난민인정 신청서를 제출했던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소속 회원 19명. 한국정부는 아직도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할지 결정하지 않고 있다. NLD 외교담당관 로딩 씨는 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전세계 NLD 지부 중 한국지부만이 유일하게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웅산 수지와 친분이 있는) 김대중 정부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하며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