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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무엇을 위한 이주노동인가?


이 모든 일이 과연 가족들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필리핀 국적의 제이 마크(Jay Mark) 씨는 홍콩에 있는 세계기독학생연합 아․태 지구(WSCF-AP)의 인권연대 담당자로서 한국에 파견되어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크 씨는 오랫동안 이주 노동자들을 접하면서 가져온 생각들을 이 글에 담았다. 다소 긴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부분 발췌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와 그들이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좋은 생활을 하게 해주겠다는 바램만으로 치루는 고통을 알게 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이주 노동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5년에서 10년, 혹은 그 이상 헤어져 완전히 다른 문화와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는 것, 온갖 굴욕과 차별, 정체성과 전문성의 상실을 감수하고 고용주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 이 모든 일이 과연 가족들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고향에서 다달이 생활비와,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수입품들로 가득 찬 선물상자를 받고 기뻐하는 식구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들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 등지에서 자신들끼리의 회합을 가지면서 웃음을 함께 나누지만 그 웃음 뒤에 있는 눈물과 슬픔을 감출 수는 없다. 10년이 넘도록 자식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나 친척들에게 자식들을 맡긴 채로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보통 한국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르다. 집에 보낼 한 푼의 달러를 위해 그들은 육체적․정서적․정신적인 많은 희생을 견뎌야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대다수는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일하며 초과 수당을 받기 위해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에도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불법 이주노동자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아무런 복지혜택 없이 하루에 열 다섯 시간씩 일한다.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무방비상태이며, 여러 종류의 학대와 착취를 당하고 있다.

지난 수 년 간 한국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회사에 부도가 나거나 고용주가 도망쳐 버려 체불 임금을 전혀 받지 못받은 이주노동자들도 많았다. 한국의 여러 민단단체들은 구타당하거나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된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를 보고했다. 또한 매우 많은 노동자들은 건강악화, 고독, 심각한 스트레스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주노동이 그의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물으면 대다수는 '처음엔 좀 외로워했지만 곧 적응하게 되었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고향에 남아 있는, 또 타국에 있는 많은 부부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외도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이주노동자와 그의 가족들, 특히 아이들은 정서적 스트레스 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까지 받게 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과 가족들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모국에서의 곤경과 가난을 극복하고 싶은 것이다.

이주노동의 근본적 원인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보다는 노동자의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공생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약소국과 강대국간의 불공평한 경제적 관계는 상품과 자본, 노동의 불평등한 교환을 낳았으며 결국 이는 세계를 강력한 자본주의 사회와 종속적인 저발전 사회로 분화시켰다.

필리핀의 경우 이같은 상황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랜 식민통치 후 필리핀은 값싼 원료의 공급지이자 값비싼 완제품의 소비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값싼 설탕을 수출하고 값비싼 허쉬 초콜렛을 수입하는 것이다.

노동력 수입국은 또한 그들의 노동 시장의 조건에 맞추어 이주노동을 허가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3D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임금도 낮아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근무한다. 또한 이들은 내국인과 차별되는 임금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내국인이 9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는 7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만약 그 이주노동자가 훈련생이라면 같은 노동을 하고도 더욱 적은 임금을 받게 된다.

현재 필리핀 정부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할 능력과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필리핀 정부는 '우리는 산업화를 위한 경제 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산업화나 노동시장 유연화 등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더 큰 위기로 느껴질 뿐이다.

필리핀의 경우 노동력의 수출은 제도화된 이주노동자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이주노동은 해외송금과 국내 실업률을 저하시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필리핀 해외거주노동자들의 송금은 1980년대 국민총생산의 가장 큰 항목을 구성했으며, 1998년에 해외 송금액은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82억불에 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리핀 정부의 노동수출정책은 해외거주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정책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정부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다만 이들을 '근대화의 역군'으로 치켜세우며 '노동력 수출 정책'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번역․정리: 김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