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특집> 김대중 정부 1년을 돌아본다 ④ 공권력 남용 및 인권보장제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인권단체들은 그가 군사정권 시절의 극단적 인권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즉, 김 대통령이 인권문제를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고,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첨예한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인권문제는 획기적인 진전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취임 후 1년이 지난 지금 인권단체들은 상심을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전향장기수의 사면과 같은 제한적인 진전을 보인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권정책이 이전 정부와 차별성이 없으며 특히 공권력남용의 규제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공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으로서 그 위임의 취지에 따라 헌법과 법령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부단한 주의를 기울이고, 공권력을 남용한 자를 엄정히 처벌하며, 근본적으로는 공권력의 남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과 공권력 규제를 위한 제도의 마련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모두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공권력의 집행과정에서는 경찰관의 총기남용, 민간인 사찰, 불심검문 그리고 통신감청 등의 문제점이 주요하게 드러냈다.


총기남용과 불심검문

총기사용은 경찰장비관리규칙상 나름대로의 엄격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비록 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따라서 총기사용에는 극도의 주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사용횟수는 1996년 294회, 1997년 295회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1월부터 8월 사이에만 279회에 달했고 사망자 3명, 부상자 25명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일반시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있는 불심검문은 시민단체의 각종 캠페인과 법원의 판결에 의해 겨우 제동이 걸리고 있다. 1999년 1월 20일 서울지방법원 항소부는 1심 법원에 이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어긋나는 불심검문에 대하여 국가는 시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잘못된 불심검문 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이 그 동안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남용되어온 잘못된 불심검문 관행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지는 의문이다.


도․감청과 민간인 사찰

도청․감청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는 이전 정권에 비하여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1999년 1월 10일 수원에서 한총련 수배자의 여자친구 집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었고, 영남위원회 사건에서는 몇 년에 걸친 감청을 통해 사생활을 극단적으로 침해한 사실이 밝혀졌다.

전기통신 감청 건수는 수치상으로도 1997년 6천2건이었던 것이 1998년에는 6천6백38건으로 10.6%나 늘어나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불법감청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정부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불법감청의 통제장치로서는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군사정권 때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민간인사찰 문제도 불거져 나왔다. 경찰청이 사회단체 및 그 구성원 등에 대한 단체자료와 인물존안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있음이 밝혀졌고, 이에 민변,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은 사찰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찰청이 비공개사항이라는 이유로 정보의 공개를 거부함에 따라 위 단체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 계류중이다.


특검제 거부, 인권위 난항

한편,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도 김대중 정부는 특별검사제를 거부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문제에 난항을 보임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검사제는 검찰권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행사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제도다. 그런데 야당시절 특별검사제를 일관되게 주장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집권 이후 입장을 180도 바꾸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내외에 널리 약속했던 국가인권기구 설치 문제에서는 법무부가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원회를 고집하면서 그 권한과 활동을 축소시키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단체들은 김대중 정부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은 더 이상 공권력을 남용해 인권을 침해하지 말 것을, 미래를 향해서는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를 확립해 달라는 것을 요구할 따름이다. 하지만 공권력의 남용은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는 확립은커녕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논란에 파묻혀 버렸다.

지난 1년, 김대중 정부는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주된 의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자유주의의 일반원칙조차 내면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공권력의 집행기관인 경찰과 검찰, 법무부는 공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망각하고, 여전히 국민에게 군림하는 권력기관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광희(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