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민생공안’의 실체③ 기본권에 대한 도전

‘살기 힘들어도 숨 죽이고 있어라’

지난 4월 14일 민주노총이 부평역에서 ‘폭력진압 정리해고 김대중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했다. 2월 20일 대검공안부가 ‘민생공안 원년’을 선언하고, 2월 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바로 ‘민생공안’ 작품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린 이후 근 두달만에 집회가 ‘허가’된 것이다.

대우자동차 공동투쟁본부나 민주노총이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하면 ‘불법시위 전력이 있어 불법·폭력시위를 할 우려가 있다’거나 ‘불법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금지’하던 것과 비교하면 새삼스런 일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정이고 참으로 유감스럽다. 뜻하지 않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노동운동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4월 19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4월 10일 대우차 사태와 관련, 과잉진압 행위자와 과격폭력 시위자 모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곧 △공권력이 잘못한 것은 없으며 흥분한 전경이 개인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것이고, △전경 개개인을 흥분하게 한 노동자들이 잘못한 것이고, △‘불법시위’ 전력을 문제삼아 언제든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집회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16일 종로구는 ‘집회·시위 도중 훼손된 공공시설물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1인 시위’를 막기까지 했다. 레미콘 노동자가 미이라 복장을 하고 시위에 나선 것이 흉칙하다며 경범죄로 강제연행하는가 하면, 25미터 간격을 두고 국회를 둘러싸겠다는 ‘1인 시위’도 금지통보했다.

공권력의 이런 조치는 ‘민생공안’에 비춰보면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대검공안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을 집단이기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관리하고’, ‘엄단해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관되게 반영된 것이다. ‘민생공안’ 주창자들이 말하는 집단이기주의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세력을 말한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와 4월 10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언명한대로 ‘상시개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김 대통령의 ‘개혁’은 곧 ‘구조조정’을 의미하며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를 의미한다. 과거 1차·2차 구조조정을 운위하다가 이제는 상시적으로 정리해고를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19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연말 올해 경제성장률이 5.1%로 예측한 것을 수정하고 올해 성장률이 4.3% 정도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경제가 나빠질 경우 3% 성장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전망은 김대중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는 상시적 구조조정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에 대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저항도 거세질 것이라는 객관적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민생공안’이란 바로 이런 저항을 ‘관리’하고 ‘진압’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민생공안’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심지어 ‘4월 10일 부평만행’에서 보듯이 법마저도 무시한다.

화염병 사범을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는 ‘민생공안’은 애꿎은 대학생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 8일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화염병이 투척되자 수원지역 대학생을 들쑤시고 다녔다. 연합뉴스에 나온 화염병 투척기사를 퍼 나른 아이디를 추적해 윤호상(수원대 환경공학과 3년) 씨의 부모는 물론 휴대폰 전화통화내역까지 알아 내 괴롭히고 영장도 없이 윤 씨의 자취방을 급습하기도 했다. 그리곤 윤 씨의 아이디 나우누리 아이디 ‘수대행동’을 사용한 한 선배를 고소하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또 검찰은 동광주병원 노조의 자문에 응한 공인노무사 이병훈 씨를 제3자 개입금지 위반혐의로 기소해 노동자를 도우려는 전문가에게 제동을 걸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민생공안’에는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헌법 21조 집회의 자유는 결사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집단적 의견표명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뜻한다. 집회․시위는 사회적 약자들이 공공에 가장 강력하게 효과를 미치는 의사표현 형식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때 ‘국민국가’는 이들이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집단이기주의를 엄벌하고 공권력을 엄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공안기관이 총결집해 펼치는 ‘민생공안’은 국가공권력의 이름으로 기본권을 유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생공안’이 계속된다면 공권력이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는 지를 더욱 뚜렷이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