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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차별의 꼬리표를 평등의 깃발로 만드는 순간

평등으로 연결되는 전국순회 평등버스

“참 많은 사람들에 기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별은 사람을 밀어내며 기댈 수 없게 만듭니다. 모두가 모두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민주광장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서서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모인 이유는, 함께 기대서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25일 광주 금남로 5.18 민주광장 한 가운데, 서울 국회 앞에서 출발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전국순회 평등버스’가 도착했을 때 광장에 울려 퍼진 목소리를 떠올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수도권의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집과 사무실만 오가는 요즘, 나 역시 평등버스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과의 기억에 기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평등을 열망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다짐,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그 힘으로 평등을 유예시키고 있는 국회의 담장을 넘겠다는 다짐, 8월 17일부터 서울 국회 앞에서 출발해 2주 동안 26개 도시를 순회하며 2,000km를 달린 평등버스는 그런 다짐을 영역과 지역을 가로질러 ‘우리 모두의 약속’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국순회의 여독을 채 풀기도 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교계 일부의 우려’를 감안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해나가자며 다짐도 약속도 회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혐오와 회피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공론장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 ‘평등의 수난사’가 우리를 덮친다. 그럴 때일수록 차별과 불평등을 지나쳐버리지 않고 변화시키고자 해왔던 시간을 떠올리는 힘이 필요하다.

차별에 함께 맞서는 지역 네트워크

평등버스가 지나온 많은 지역들은 한국사회에서 반차별에 맞서온 경험들이 어이진 ‘평등 정류장’이다. 그 기반에는 각 지역에서 벌어진 인권 관련 조례나 퀴어문화축제에서 벌어지는 혐오 대응 활동의 시간들이 쌓여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광주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려는 집단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2016년, 광주에서는 ‘광주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지역 내 혐오문화 대응과 퀴어문화축제 지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지속해왔다. 광주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울산, 전북, 충남, 충북, 수원·경기, 인천 등 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나 반차별 운동 단위들이 만들어지고 활동해온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반차별 운동의 주체가 지역 내에서 활발하게 구성되어 온 흐름이다. 이러한 지역 반차별 운동들이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지역에서 평등과 인권을 가로막는 세력이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보수개신교 세력과 동일해서만은 아니다. 2017년 촛불 이후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소수자의 이름으로 다시 쓰겠다고 선언하며 재출범한 것과 마찬가지로,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은 ‘소수자 운동’만의 과제라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권리와 존엄이 삭제되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평등과 인권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등 소수자 집단의 권리는 삭제되어도 괜찮은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평등에 대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기도 하다. ‘소수자’로 호명되는 당사자 운동에 힘을 보태는 연대를 넘어, 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적인 구조에 함께 맞서 싸우겠다는 연대의 확장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또한 평등버스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함께 요구하면서 반차별 운동의 기틀을 26개 도시로 더욱 넓히는 과정이기도 했다. 2018년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와 평등행진, 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네트워크로 만나지 못했던 강원과 여수 지역과의 만남, 지역 내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이제 막 구성되기 시작한 대전과 제주까지. 평등버스를 기점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연대는 지역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만난 지역 반차별 활동을 거점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어나갈 힘을 만들 수 있었다.

권리를 외칠 수 있는 근거

울산은 2017년 우신고의 학생인권침해 고발로부터 시작된 ‘학생인권조례안’부터 2018년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진흥 조례안’과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안’, 그리고 ‘청소년의회 구성 및 운영 조례안’까지 모두 4개의 청소년 인권 조례들이 가로막히고 유예되어 온 지역이다. 8월 20일 울산에 평등버스가 도착한 날, 간담회에는 20여개가 넘는 단체들이 모여 평등버스 기획단마저 깜짝 놀라게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사회적 의제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지금, 울산 지역 활동가들은 2020년 하반기에 다시 조례 제정 운동을 해나가려 준비하고 있다.

물론 각 지역의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들의 권리를 자동으로 실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절로 차별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_차별금지법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와 함께 평등버스에 자신의 사연을 보내준 서울 거주 청소년의 이야기는 왜 우리가 법과 제도를 통해 평등을 요구하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저희가 학교에 요구하고, 싸울 수 있었던 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힘이 정말 컸던 것 같아요. 제도적으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있으니까요. 제도가 우리를 미약하게나마 보호해 준다는 감각을 그때 처음 느껴보았어요. 만약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그때의 저희가 더 강하게 보호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법 조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강력한 힘이자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사연처럼 학생인권조례는 교내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독교 동아리의 캠페인은 허가하면서 청소년 인권을 말하는 인권동아리의 캠페인은 금지시킨 학교를 상대로 ‘조목조목’ 맞서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제시해준다. 그 근거를 통해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학생인권조례는 성소수자 학생이 자기 스스로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성소수자 학생이 학교 내 성소수자 차별을 문제제기하고 맞서 싸우려고 할 때 자신을 드러내고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 나아가 차별과 배제의 경험은 결코 익숙해져서도, 당연해져서도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권리’로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한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공간, 그래서 권리가 필요한 공간은 비단 학교라는 교육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용과 재화·용역 서비스, 행정 서비스 등 차별금지법이 규율하는 공적 영역은 바로 이러한 권리가 부정당하지 않아야 할 공간을 더 넓게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통해서 모이고 조직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는 관계

“저는 서울이 아닌 비수도권 지역 출신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동시에 저는 성소수자이고, HIV 감염인 당사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경멸스러운 존재로 그려지는 저는 오랜 시간동안 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혐오와 차별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저 스스로 저를 숨기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목소리를 저는 내고 싶습니다. 제가 잘못된 존재, 부정당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국을 순회한 평등버스가 다시 서울 국회 앞에 도착한 날, 기자회견에서 기획단 한 명은 커밍아웃을 했다. 부산에서 다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찾아간 무지개버스를 기억하며 2020년 평등버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호모새끼를 욕으로 쓰던 ‘군필남성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신 분들”이라는 환영의 말은 커밍아웃한 그에게 또 다른 용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등버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꼬리표’가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평택에서 만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일상 호칭에서도 차별의 구조를 본다. ‘누구누구씨’라고 불리는 정규직과 다르게 ‘야’라고 불리는 사람은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수원에 사는 취업준비생은 알바를 구하기만 해도 가방에 달려 있는 무지개 뱃지를 떼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취직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다. 창원에 사는 성소수자는 유치원 교사가 꿈이지만 성소수자가 ‘아이를 해치는 성범죄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꿈조차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는 그 존재 자체로 낙인이 된다. 거제도에 사는 여성은 ‘무거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채용 성차별과 모욕을 경험했고, 여수에 사는 40대 비혼 여성은 “언제 결혼 하냐, 그러다 아이도 못 낳는다, 재취업하기에 나이가 많다”는 말에 둘러싸인 채로 살아왔다. 나이나 외모로 인해 ‘여자답지 못한 여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가 자신에게 붙여준 꼬리표를 통해 왜 ‘자신’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를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특정한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차별의 구조를 말하기도 한다. ‘야’로 분류되는 비정규직 내부에도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노동자를 가르는 위계와 차별이 있고, 노동시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차별을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서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동료로 옆에 서고자 다짐하기도 한다. 여수에 사는 40대 비혼 여성은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에게 투표했다. 하지만 김회재 의원이 성소수자 혐오를 선동해온 보수기독교 집단과 함께 차별금지법 반대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의원이 자신을 대변해 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표한 사람들의 요구를 저버리지 말라고 나서주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중요한 반차별 운동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있을 때 이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말하고 존엄을 선언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반차별 운동의 관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 왔기 때문이다. 평등버스는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일수는 있지만, ‘법적 권리에만 만족하는 것’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될 수 없음을 다시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반차별이라는 가치에 기반한 운동의 조직과 연대가 계속 이어질 때,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정류장도 통과할 수 있다.

서로를 알아보는 자부심으로

만약 평등버스가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자격을 요구하며 차등적인 지위를 배분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평등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배제당한 사람들과 함께 차별적인 구조를 바꾸어가고 싶은 사람들 또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우리가 가진 꼬리표가 스스로의 탓이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싸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평등버스는 바로 이렇게 서로를 지켜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차별금지법을 성소수자에 대한 특권과 특혜로 호도하는 반대 집단, 차별금지법을 성소수자와 보수개신교의 대립 혹은 갈등으로 보도하는 언론,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을 포함하고 있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국회를 넘어설 것이다.

2주 내내 평등버스에 함께 했던 동료의 말처럼, 우리가 ‘권리’를 모두의 이름으로 다시 쓸 때 성소수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빈곤해서, 이주민이라서, 청소년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 우리를 차별했던 꼬리표는 반대로 서로를 알아보는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꼬리표를 평등의 깃발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고, 우리는 동료시민으로서 서로에게 기대며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평등을 향한 저항과 싸움을 혼자가 아닌 결집된 힘으로서 이루어나갈 수 있다. 평등버스의 경험이 2020년 하반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비춰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