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페미니스트' 대통령 후보에게 드리는 말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차별금지법을 '나중에' 만들면 안 되는 이유

차별금지법은 걱정하지 말라? 반드시 제정할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지난 13일 문재인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비공식 면담을 가졌다. 문재인은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당 입장이 확실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보수기독교 세력을 안심시켰다. "동성애는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과 혐오는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차별금지법은 만들지 않겠다는 식의 논리를 또다시 꺼내 든 것이다.

'나중에'

"저는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지난 16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에게 던져진 기습 질문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른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각자의 깃발을 꽂고 있다. 문재인 역시 가짜 보수를 불태우겠다며 광장의 촛불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중이다. 그렇게 광장을 등에 업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대권 주자의 대답은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발언의 기회를 '나중에' 주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에워싼 '나중에'란 외침이 그냥 질문을 나중에 하라는 말로 들릴 수는 없었다.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성애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로 성소수자 인권을 유예시켜온 10년의 역사가 그 말에 담겨 있다.

나중에 말하라는 게 어때서?

차별금지법은 10년 동안 입법 과제로 늘 오르내렸다. 박근혜 정권조차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꼽았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UN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했다.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라고 주장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했다. 결국 성적지향과 병력 등을 삭제한 누더기 법안이 되며 차별금지법은 폐기되었다. 이후 수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무산되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만든 역사였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혐오 세력'이 세력화되는 과정이었다. 2013년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역시나 보수기독교 세력의 항의가 빗발쳤고 급기야 발의한 국회의원이 법안을 자진 철회하는 웃지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이유였다. 평등을 부정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의 억지가 사회적 힘으로서 승인된 것이다. 성소수자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힘은 점차 노골적이고 거침없어졌다. 차별금지법 무산의 역사는 평등을 허용할 수 없다는 반헌법적 발상이 확산되어온 역사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문재인의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정당이 다시 사회적 합의를 내세운다. 문재인이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것은 표를 얻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박탈하면서 여성의 평등권을 외친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평등'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질문을 '나중에'란 말로 에워싸며 다수의 실력을 행사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평등'은 불가능해 보인다.

광장의 평등이 일상의 평등으로 이어지려면

광장의 촛불과 함께한다는 대선 주자들은 박근혜와는 다른 대통령, 보수 정권과 다른 정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를 외친다. 그런 주자들이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다거나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은 인권이 불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만들 사회에 보수 기독교 세력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만 성소수자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박근혜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가자고 외치면서 성소수자는 '나중에' 오라고 배제하는 것이다. 평등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다.

우리는 촛불을 통해서 더 많은 평등이 만들어온 힘을 경험하는 중이다. 광장에서 페미니스트가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장애인이 권리를 선언했다. 청소년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노동자가 함께 외쳤다. 지금까지 같은 사회에 있다고 하지만 만날 수는 없었던 사람들이 편견 없이, 차별 없이 광장에서 만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또 타인의 이야길 들으며 서로의 존엄을 확인했다. 그렇게 존엄을 세우며 천만 촛불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광장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박근혜 체제가 끝나고 광장의 촛불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그냥 정권 교체가 아니라 일상의 평등이다. 더 많은 평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모두의 숙제로 놓여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문제는 법안 하나가 만들어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촛불 이후 만들어질 사회의 리트머스지다. 촛불의 경험은 더 많은 광장을 열고, 만남을 확장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누구나 평등한 존재로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광장에서 모두의 권리가 회복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무산되어 온 10년은 누군가를 사회로부터 배제해온 10년이다. 누구든 어떤 집단이든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수 있음이 확인되어온 10년이다. 차별금지법 무산의 역사와 단절할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반드시

2월 18일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6차 촛불까지 이어지는 동안 처음이었다.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공연에 이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김찬영 대표가 말했다. "박근혜 퇴진을 넘어 배제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성소수자들 역시 이 광장에서 또 돌아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그는 '나중에'로 배제당한 존엄을 광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다시 세웠다.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권리를 빼앗긴다. 2014년 서울시청을 점거했을 때 외쳤던 구호처럼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배제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유력 정치인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뭐라 하든 배제당하는 사람들은 더욱 크게 외칠 것이다. 함께 외치는 만큼 우리는 더욱 평등해질 것이며, 다른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함께 외치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