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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차별의 예외가 아니라 평등의 선두에 서야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온전한 차별금지법’

202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 12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대표발의로 평등법안(「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이 곧 발의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코로나19로 높아진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발표하면서 국회에 평등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권고했고,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두 개의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가 보수개신교의 반대로 모두 철회해버린 전적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에게 평등법안 발의는 ‘자랑’할만한 의정활동이기 전에, 평등을 계속 유예시켜온 주요 정당이 스스로 완수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가깝다. 그 책임을 21대 국회에서는 ‘연내 발의’라는 행동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반년 가까이 발의를 준비 중이었던 바로 그 평등법안에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막아 온 보수개신교의 반대를 뛰어넘어 합의점을 만들고 제정까지 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의 존엄과 평등을 기본적으로 명시하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업법 취지까지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이다. 2020년의 마무리를 일주일 정도 앞둔 12월 23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토론회: ‘종교기관 예외’ 조항 무엇이 문제인가>가 열린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종교기관 예외’ 조항을 왜?

사실상 보수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가 그동안 차별금지법에 대해 쏟아낸 가짜뉴스는 어마어마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예배나 설교 전도와 같은 종교행위가 금지되고 종교인들이 처벌받는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도 동성애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면 거액의 소송을 당해 교회공동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를 일으킨 것처럼,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이 마치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보루처럼 왜곡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애초에 예배, 설교, 전도와 같은 종교적 행사 및 종교활동은 애초에 차별금지법 규율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물론 법에서 규율하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게다가 종교의 본질적 행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는 이미 ‘진정직업자격’ 조항을 통해서 고용 상의 차별이 아닌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우’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서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종교교육기관에서 교수를 채용하고자 할 때 채용 대상자를 ‘해당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한 경우’로서 차별의 예외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평등법안의 예외 조항은 이미 법에서 차별로 보지 않는 종교 활동을 예외로 다시 명시하는 불필요한 조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굳이 종교계를 달래기 위해서 불필요한 조항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종교기관’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예외로 두자는 것?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회,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신조, 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 (평등법안 중 ‘종교기관’ 예외로 알려진 조항)

예외 조항의 핵심은 바로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으로까지 예외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에 있다. 위 사례처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 해당 직무나 교육, 제공하는 재화․용역․서비스의 내용과 ‘무관하게’ 특정 종교나 신념을 가질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강요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는 행위는 ‘차별’이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바로 이렇게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적용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종교단체에 소속된 기관’으로까지 예외가 확장된다면, 종교단체에서 설립․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초중고등 종립학교, 병원, 의료원 및 요양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종교 현황을 보면 종교단체에서 설립한 법인은 1천개가 넘고, 종립학교는 1천여 개에 가깝다. 요양 및 의료, 호스피스 기관만 560여 개, 사회복지법인과 단체는 520여 개가 넘는다. 이러한 기관들은 종교단체들에 의해 설립․운영된다 할지라도 교육, 의료, 사회복지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공공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금지영역에 해당한다. 이미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용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종교 강요와 괴롭힘, 종립학교 교직원 및 교원을 비롯해서 종교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리고 쟁점토론회에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로 가장 많은 피해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 역시 다수의 사회복지시설에 기거하는 장애인이거나, 종교 교리 상 혐오의 표적이 되는 성소수자나 미혼모, 종교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이 정당화되는 이주민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별의 예외에 종교기관을 두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로 인한 기존의 차별을 눈감고 한국사회에서 종교단체들이 가진 특권적 지위를 더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게다가 평등법안에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 들어가게 된다면, 이는 차별 관련 사안에서 종교기관 면제를 인정하는 최초의 입법례가 된다고 한다.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혐오선동에 앞서는 보수개신교계에 굴복해서 차별금지법을 철회한 결과가 이후 지자체 인권 관련 조례의 개악이나 폐지, 인권정책의 후퇴에 영향을 미쳤듯이, 종교예외 조항이 다른 인권 법제에 미칠 영향은 굳이 떠올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종교세력을 핑계 삼지 않는 국회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평등에 예외는 없다’

평등법안에 ‘종교기관 예외’를 명시한 조항이 포함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13년이 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슬로건들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외침이 향하는 곳이 국회라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이유를 종교의 자유와 기업활동의 자유를 막는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줄기차게 반대해 온 보수개신교계와 재계에서 찾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국회가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을 자의적으로 분류하는 사회, 평등할 권리를 가지려면 자격을 대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회를 만든 책임이 보수개신교와 재계에 있다고, 혹은 그 집단들의 반대를 뛰어넘을 만큼의 세력을 만들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하는 건 비겁하다.
보수개신교계를 설득할 ‘전략’이 되기는커녕 차별금지법 발의 원천 반대 입장에 더 불을 붙인 현재의 상황만을 보더라도,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 지역구 대형교회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 용은 될 수 있을지언정 보수개신교계와 합의점을 찾는 계기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와 원불교는 보수개신교의 특권적 지위를 강화하는 법안임을 비판하면서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사회적 인식 결과를 들이밀지 않아도, 코로나19로 높아진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내밀지 않아도, 평등에 대한 요구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지 오래다. 존엄과 평등에 대한 원칙을 사회적으로 선언하고 제도와 정책을 통해 실행할 가장 큰 책임은 여전히 국회에게 있다.

2020년은 어느 때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았던 해다.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 포함된 평등법안은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평등에 예외는 없다’고 외쳐왔고 지금도 여전히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온전한 차별금지법의 모습일 수 없다. 이상민 의원과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바로 그 ‘온전한’ 모습의 평등법안을 발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올라가 있지만 4년 동안 아무런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국회 회기만료 폐기’라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발의 이후에도 적극적인 제정 논의가 이루어지도로 할 책임까지 자신들의 몫으로 여겨야 한다.

온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시 2021년을 바라봐야 하는 지금,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물을 것이다.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평등에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