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검경, 수많은 '버닝썬', '김학의 사태'의 공범이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조직의 명운을 건 경찰과 검찰이 달라지려면

클럽 버닝썬, 고(故) 장자연 리스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최근 한국사회의 분노가 모인 사건들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각 사건들에서 제기된 국민적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이후 고(故) 장자연 씨 사건과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다뤄온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 기한이 연장되었다. 앞서 '경찰총장'마저 언급된 버닝썬 사건에 대해 경찰은 대규모 합동수사팀을 구성하며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언론은 이번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수사권을 둘러싼 경찰과 검찰의 대결이 관전포인트인 것처럼 다룬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길 바라지만, 석연치가 않다. 지금 경찰과 검찰이 보이는 절박함은 조직의 명운일 뿐 피해자들의 고통, 우리의 분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권력, 누구의 권력인가

모든 사건은 철저히 수사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의 자체적인 노력에만 기대선 안 될 것 같다. 세 사건은 시기가 다르지만 모두 겹쳐지면서 하나의 사실을 말해준다.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공유하며 유지되어 온 남성권력의 한 축으로 경찰과 검찰이 역할을 맡아왔다는 것이다. 여성이 겪는 범죄 피해에 공권력은 어떻게 해왔나. 불법촬영 범죄를 신고해도 무시하고,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을 사적 관계의 문제로 치부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유흥업소와 유착해왔다. 여성 폭력, 여성 범죄에 대해 방조하거나 오히려 가담해온 것이 공권력이다.

지금 이 사건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단지 공권력의 부실수사로 인해 많은 의혹이 남아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찰과 검찰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덮은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인 경찰과 검찰이 수사와 기소라는 권한을 행사할 때 이는 법의 잣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하거나 반대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어떤 사건은 더 부각하고 어떤 사건은 덮는다. 이렇게 여성을 착취하는 공범관계로서 경찰과 검찰은 남성권력의 일부를 담당해왔다.

이 사건들은 여성을 매개로 남성권력을 유지하고 지탱해온 공권력의 실체를 드러낸 사건들이다. 불법촬영 범죄를 무죄로 만들어준 경찰, 피해자에게 성폭력 당시 상황을 재연해보라던 검찰은 2018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나란히 하위 점수를 받았다. 그런 두 조직이 이번 사건들을 두고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현안 앞에서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다시 경찰이냐, 검찰이냐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둘 다 미덥지 않으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면 되는 걸까? 기존 권력의 배분과 다를 바 없는 권한 조정은 개혁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각 사건의 진상 규명을 넘어 이번 일로 경찰과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은 남성권력의 한 축이었던 공권력 그 자체와 맞닿아있다. 공권력이 그동안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젠더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같은 사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권력 나눠먹기는 개혁이 아니다

적폐청산의 과제로 권력기구 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권력기구들은 저마다 개혁위원회를 꾸렸다. 인권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인권침해의 가해자로 민중 위에 군림해왔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쥐고 있던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정권의 눈치 보기에서 비롯한 셀프개혁 행보였다.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를 진행해온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검찰은 경찰을 나치 게슈타포로, 경찰은 검찰을 중국 공안으로 빗대며 서로 깎아내리는 문건을 배포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번 사건들을 대하는 경찰, 검찰의 태도에서도 확인되듯이 공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칼과 방패로 피해자의 고통을 이용해왔다.

올해 중 권력기구 개혁의 실질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며 지난 2월 당정청 협의회에서 개혁 방향이 합의되고,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께 논의됐던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경찰법 전면개정안이 지난주 국회에 발의됐다. 권력기구 개혁 논의는 권력을 분산하면 서로 견제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이루어진다. 그러나 권력이 단지 큰 게 문제인가. 같은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작은 권력들은 문제가 아닌가. 권력의 총량과 성격이 그대로인 채 검찰의 권력을 일부 떼서 공수처와 경찰로, 국가경찰의 권력을 일부 떼서 자치경찰로 넘기는 형식적인 권력 배분은 개혁 요구에 대한 응답일 수 없다.

권력기구에 대한 감시와 견제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중요하지만, 이 또한 형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경찰위원회나 검찰시민위원회가 감시와 견제가 아닌 오히려 권력기구의 알리바이가 되거나 이익단체화 되는 것도 문제로 제기돼왔다. 버닝썬 관계자가 강남경찰서 경찰발전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경찰청이 일제히 협력단체 점검에 나선 결과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사퇴했다고 한다. 감시와 견제 방안을 그저 형식적으로만 접근하여 제도화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권력기구 개혁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이번 사건들에서 확인되었듯 공권력이 수사와 기소라는 권한을 행사할 때 그 기준은 정의가 아니었다. 지금 공권력을 향한 비난과 분노는 공권력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제 역할과 의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부실수사니 보완하라거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문제제기가 반영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공권력이 독단적으로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들처럼 진실이 묻히고 피해자가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공권력 자체가 새롭게 구성되어야

이번 사건들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경찰과 검찰은 조직 내 일부의 일탈적인 문제로 결론내고 싶어 할 것이다. 피해자들의 외침과 사회적 분노는 공권력 그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가진 자들 편에서 작동해왔던 공권력이, 남성들의 권력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동해온 공권력의 작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 공권력은 원래 그렇다고 체념하기엔 그들이 쥐고 흔드는 우리의 삶은 너무 위태롭다. 부정의한 공권력이 피해자를 다시 고통으로 내모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경찰, 검찰과 같은 권력기구로부터 독립적이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부터 고통받아온 수많은 이들의 외침과 요구에 기초한 독립적 기구가 공권력의 일부로 새롭게 배치될 때, 공권력 그 자체의 근본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사건이 불거질 때만 여론에 떠밀리듯 이루어지는 수사, 특별검사, 청와대 청원을 넘어, 공권력 자체의 재구성을 위한 구조적 개혁이 절실하다. 세 사건이 지금 한국사회에 던지고 있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