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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나는 당신들이 더 수치스럽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비혼여성 지원정책개발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간담회 이전에 온라인에서 550여명의 비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안전' 부분에서 70% 이상의 여성들이 여성안전에 대한 대책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응답을 했다고 한다. 최근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의 살인사건이 알려진 직후이기도 해서 담당자 선생님이 어떨 때 불안이나 위험을 느끼는지,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를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때 한 친구가 대답했다.

'경찰이 자기 역할이나 잘했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수치스러운가?

수원시가 최근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수원지검과 경기지방경찰청에 '수원 토막살인사건'이 아니라 '오원춘 사건'으로 사건 명칭을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맨 처음 기사의 제목만 보고서는 이러한 수원시의 '액션'이 2009년 당시 '나영이 사건'으로 보도하던 언론이 일제히 1면에 '조두순 사건'으로 명명하기로 했다는 공지를 내걸었을 때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혼자서 추측했다. 당시 아동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사건 이후에까지 왜 피해자만 낙인의 위험이나 여론의 집중이라는 부담까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회자되면서 언론들 역시 이를 발 빠르게 수용한 결과였다. 물론 당시 언론들이 사건 명칭 변경 결정을 공지하면서 이를 '법조계'와 '언론학계'의 조언을 통한 것이라고 밝혔을 때에도, 사회적 명명이 어떻게 사회 정의(justice)와 연결되는지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싸워 온 '여성운동계', '여성학계'라는 이름과 운동의 역사는 누락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법적, 사회적 인식에 전환을 가져온 '신 교수 성희롱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2009년도 당시 '나영이 사건'에 대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논평만 보아도 사건 명칭에 대한 절절한 요청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언론을 통해 '토막살인'이라는 사건의 특수성과 가해자의 잔혹함만 강조되는 것이 성폭력이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된 현실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과 주변 상황에 대한 성찰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명칭 변경을 요청했을 것이라 기대했던 나는 지극히 순진했던 것인가? (사실 전 국민에게 몽둥이를 맞고 있는 경찰 집단을 대신해 수원시가 눈치 빠르게 '물타기'를 시도하는 건가 의심해보기는 했다.)

그런데 수원시의 이러한 요청의 배경은 수원시의 이미지가 토막살인이라는 부정적인 사건과 연관된다는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 역시 수원시 이름 앞에 아무렇지 않게 '효원의 도시'를 붙이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는 것이 효원의 도시인 수원의 이름에 먹칠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한가?

이 기사를 보며 나는 '상처는 사유의 열매지만 수치심은 명예 의식과 관련하여 발달된 감정'이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을 떠올린다. 남성의 '억눌려있던 안 좋은 감정들이 한순간 폭발'할 때 그 분풀이의 대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이 된다는 사실, 피해자가 자신의 목숨을 건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경찰 조직의 무력한 현실에 대한 스스로의 자괴감보다 앞서는 것은,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서' 실추된 경찰의 명예다. 거기에 '상처'의 자리는 없다.

국가기관의 '자기 역할'

수원 여성살해 사건을 지켜보면서 모두가 경찰 조직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피해 여성의 유가족들이 경찰 신고 당시의 녹취록을 듣고 "오원춘만이 살인범이 아니다, 경찰도 살인범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이 경찰의 대처에 대해 '책임 방기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사건이 사회적 공분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국가기관에 의한 2차 피해로서 적극적으로 규명되고 책임소재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2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한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 논문발표회를 통해 확인한 실상을 떠올려 보면,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부정의'(injustice)가 판치는 세상인 것만 같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국가책임을 제기한 첫 번째 소송이 있었던 해이다(자세한 내용 : 이미경, 2012,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 이화여대 박사학위 논문 p.116~7 참고). 울산에서 귀갓길에 2명의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20대 여성은 사건 직후에 지나가던 112 순찰차를 세워 직접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112신고센터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그래서 검문검색조차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담당 형사 역시 '성관계 경험이 있느냐', '범인이 구강성교를 했느냐', '시집도 가야 하니 주위에 많이 알리지 마라' 등 인권침해적인 발언으로 사건에 미진하게 대응했다. 이에 대해 피해여성이 다음 해 국가와 울산광역시를 대상으로 112신고 상황처리 위반, 긴급배치 위반, 범죄수사규칙 위반, 피해자 보호에 관한 지침 위반, 수사 지연 등 성폭력 2차 피해와 울산시의 가로등 미설치로 인한 피해발생의 책임으로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굉장히 합당한 주장처럼 보이는 이 소송은, 2004년 울산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강간 사건은 긴급배치사건이 아니고, 범인 도주 이후에 사건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112 상황처리지침 위반을 인정할 수 없고, 피해자의 성경험 여부 조사는 불필요한 질문은 아니고, 담당경찰관의 잦은 교체는 행정상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미진한 대응이라고 볼 수 없으며, 가로등 미설치와 사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 소재가 기각된 10여 년 전의 사건. 수원 여성 살해사건의 검찰 최종 조사결과를 기다리며 굉장히 진부해 보이는 이 판결이 오버랩 되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은 사실 곳곳에서 경찰이나 법원, 국가가 성폭력의 방조, 일조, 공범자라고 생각하는 절망이나 불안을 확인한다. 대학교수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학생을 모텔로 데리고 갔을 때, 룸살롱에서 접대하는 여성이 손님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을 때, 혹은 부부강간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 그리고 순식간에 그것이 경찰서에서, 법정에서, 언론에서 성폭력이 아닌 명예훼손, 연애치정, 집안싸움으로 둔갑될 때 말이다.

'경찰(법원)이 자기 역할이나 제대로 했으며 좋겠어요'가 사실 얼마나 불신과 체념이 가득한 바람인지, 이 사회는 이해하고 있을까? 경찰에게 '성폭력의 위험이 없는 사회'라는 정의 실현의 주체가 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중에 내가 신고했을 때 제대로 처리하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경찰이나 법원은 상처는커녕 수치심이라도 느낄까?

며칠 전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피해자 보호조치 소홀 등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이 '녹음파일이 제출될 경우 국민에게 공개돼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녹취파일 제출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가해자의 전형적인 문제 인식과 해결 방식에 분노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위치와 국가기관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얼마나 순식간인지, 한국사회가, 국가기관이 얼마나 남성중심이고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이 저열한지를 확인하면서 일어나게 될 사회적 파장은 국민들이 감당하게 될 테니, 괜히 쓸데없이 국민을 걱정하는 척하지 마라.

신중을 기해 경계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파장'의 여부가 아니라, 생존자(survivor)들의 지난한 분투 과정과 그 의미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을 때, 경/검찰이 자신의 위치를 공모자의 자리로 위치 짓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절망과 좌절이 불러올 결과이다.
덧붙임

몽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