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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민주당표’ 검찰개혁이 말하지 않는 것

검찰개혁,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야

언젠가부터 뉴스를 살필 때 슬쩍 건너뛰는 기사들이 생겼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갈등을 다루는 기사들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이견에서 출발한 갈등에서 시간이 지나자 원자력 발전소 폐쇄 결정에 대한 재수사가 등장하고,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휴대폰 비밀번호 강제로 해제하는 법을 추진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들의 말 한마디까지 전부 기사화 되면서 서로의 가족에 대한 흠집 내기와 신상 털이가 이어진다. 이 상황에 대한 피로감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단순히 고위 공직자 간의 갈등이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이라는 권력 기관 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쏟아지는 보도 속 피로감에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차분하게 지금의 국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작은 분명 검찰개혁

 

분명 시작은 검찰개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검찰개혁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검찰은 물리적 공권력을 행사할 권한을 지닌 동시에 사법 절차의 시작점인 기소를 독점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권한에 비해 견제는 적게 받는데, 범죄 수사의 독립성을 이유로 외부의 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 구성원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스스로 기소를 독점하는 까닭에 검사가 법적 처벌을 받는 일 역시 드물다. 검찰이 바로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불화하며 스스로를 정치 세력화하고,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일이 잦았다.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우병우, 김기춘과 같이 검찰 출신 인사가 청와대의 요직에서 검찰을 정권의 칼로 활용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기도 했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배경이다. 탄핵국면을 거쳐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고,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검찰개혁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검찰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분리하는 것, 둘째, 검찰의 비위가 발생했을 때 셀프 면책이 되지 않도록 공수처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9년 4월 민주당이 주도해 공수처법안과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고 20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시켰다. 마지막 세 번째 방향은 법무부의 탈(脫)검찰화라는 기조 아래 정부가 검찰을 통제하며 검찰이 독자적 정치 세력처럼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부임과 동시에 검찰 인사를 재편하고, 검찰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도 이 맥락에 놓여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에 대해서 "검찰개혁의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고 그게 본질"이라고 한 말은 현 사태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표’ 검찰개혁이 말하지 않는 것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민주당이 국회에서 제도를 만들고, 법무부가 검찰과 직접 대립하며 수행하는 ‘민주당표’ 검찰개혁 방안의 결론은 한 가지를 향한다. 비대한 검찰의 권력을 견제하고 쪼개서 그 힘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는 검찰의 기소 독점을 깨뜨리기 위함이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나누는 일이었으며, 법무부장관의 검찰 인사 재편 강행은 검찰의 인사권을 흔들어놓았다. 거대한 권력인 검찰을 공격해 약화시키면 곧 검찰이 개혁된다는 식이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개혁이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검찰이 변해야 하는 이유가 정부와 민주당의 말처럼 그저 검찰 권력이 비대하기 때문일까. 검찰 권력의 ‘크기’에 집중할수록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비대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향’이다. 2009년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이다 참사가 벌어졌을 때 용역 깡패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부실하게 수사한 것도, 참사의 모든 책임은 철거민에게 있다며 기소하고 수사기록물은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검찰이다. 2013년 국정원과 함께 서울시의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에 가담했지만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도 검찰이다. 기업이 노동조합 파괴 공작을 벌릴 때는 눈을 감았다가, 노동자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시신을 탈취해 강제 부검하도록 수사를 지휘한 것도 검찰이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검찰이 정부와 힘을 겨룰 수 있을 만큼 비대한 권력 집단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검찰이 특정한 사건에만 공안사건이나 노동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지배 질서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이 방향성을 바꿔 놓지 않으면 노동자와 시민에겐 무용할 따름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검찰개혁이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말하지 않고 있다.

 

‘검찰 길들이기’는 검찰개혁이 아니다

 

2017년 12월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검찰의 권력이 지금까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시작부터 위원회의 구성, 조사 사건 선정 과정, 위원회의 권한 등에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범 후에도 당시 문무일 검찰 총장의 사과를 다섯 차례나 받아냈다고 하지만 상징적인 사과에서 그칠 뿐 검찰의 과거사에 대한 의미 있는 권고 역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에 대해 구속수사라는 성과를 만들었다하지만 이마저도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뇌물죄’를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위원회였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과거사위가 개별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과거사위의 역할을 ‘개별 사건의 재심을 담당하는 것’처럼 여겼다는 데 있다. 검찰 권력이 여태껏 어떻게 움직였는지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개혁의 방향성을 도출해낼 기회, 즉 검찰이 지금까지 민주적 통제나 시민의 감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던 조직인지를 확인하고 변화를 꾀할 기회를 날린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의 활동은 각 사건의 시시비비에 갇히는 꼴이 되었고, 제대로 된 결론 역시 도출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태도였다. 과거사를 통해 검찰의 문제를 진단하는 일에 앞장서기는커녕 과거사위의 부실한 운영을 핑계 삼아 기승전-공수처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검찰개혁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자리는 걷어차고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 흐름은 소위 ‘조국 사태’ 이후 지난 1년 동안 법무부가 보여주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태도는 ‘검찰개혁’을 통해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정권이 검찰력을 손에 쥐기 위한 모습에 가까웠다. 추미애 장관은 부임과 동시에 친정부 성향의 검사를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하는 것을 넘어 이에 반발하는 평검사의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하며 검찰을 길들이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외에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과정이나 울산시장 하명수사팀과 같이 정부와 관련된 수사팀의 지휘라인을 흔드는 모습은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길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누군가는 행정부 산하의 검찰이 장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에 반발하는 검찰이 문제가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개혁은 권력 기구의 서열을 정리하거나 재편 하는데 멈추어선 안 된다. 정권이 검찰력을 손에 쥐고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일을 검찰개혁이라 부를 순 없다. 공권력 앞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비대한 검찰 권력의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시민이 통제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검찰 길들이기’에만 열 올리는 법무부가 정말 검찰개혁을 바라는지, 아니면 검찰이라는 권력을 손에 넣기를 바라는지 의심하게 되는 이유이다.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원칙으로

 

검찰개혁이 불필요하다거나 지금 검찰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이 노동자와 시민을 탄압하며 권력에 복무해온 역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검찰을 장악하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 ‘덕분’에, 검찰은 스스로를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이라 자처할 명분을 쌓고 있다. 검찰권 행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토대로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법무부의 검찰 장악이라는 정해진 결론을 반복하는 사이에 개혁의 대상인 검찰이 오히려 개혁의 주체를 자처한다. ‘정치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진짜 검찰개혁’이라며 검찰이 당당하게 나서는 난처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다시 원칙을 확인하자. 검찰의 권력이 거대하다는 사실 자체로 위협을 느끼는 것은 민주당 정권의 입장에 불과하다. 검찰 권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지, 시민이 감시와 견제를 이어갈 방안이 무엇일지 이야기하자. 공권력이 시민의 삶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소심의위원회’를 설치해서 검찰의 기소를 시민이 직접 견제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 검사가 아니라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기소하는 ‘사인소추제도’, 피해자가 직접 상소하고 공소에 참여하는 ‘공소참여제도’ 등 참고할 수 있는 제도 역시 많다. 다만, 2017년 설치한 수사심의위원회가 검찰에 명분만 제공했을 뿐 실제로는 위원회 명단부터 심의 근거까지 모두 비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제도의 도입이나 변화 그 자체는 핵심이 아니다. 공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을 원칙으로 검찰개혁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건너뛴 검찰개혁은 허울뿐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 시민의 삶을 바꾸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