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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공수처에 가려진 검찰 개혁 논의

시민에 의한 검찰 권력 통제를 고민하자

두 달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스스로를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라고 칭하며 사퇴했다.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보였던 집요한 인지‧표적수사에 대한 공분까지 더해지며, 남은 과제인 검찰 개혁으로 관심이 모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가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피력하며,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정권 연장용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며 공수처 결사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그 사이에서 바른미래당은 선거제 개편이 뒷전으로 밀릴까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각 정당은 장외집회와 서로를 향한 원색적 비난까지 불사하며 총력전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4월 이미 선거제도 개혁안, 공수처 설치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개혁 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절차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모두 10월 말에서 1월 말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다. 당시 정치 개혁과 사법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며 여야 4당 공조를 통해 패스트트랙이 성사되었으나, 어느새 ‘검찰 개혁의 상징’으로서 공수처만 남아 쟁점이 되고 있다.

 

공수처는 검찰을 바꿀 수 있을까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을 별도로 설치하는 공수처 논의는 96년 새정치국민회의의 부패방지법 발의부터 시작된다. 98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이 직접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으며 그 이후 공수처의 필요성은 20여 년 동안 제기되어왔다. 권력을 지닌 고위 공직자들이 그 권력을 이용해 비리와 범죄를 저질러온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의 봐주기식 기소유예로 인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거나 처벌받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니 고위 공직자에 한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별도의 기관을 설치하자는 것이 공수처 제안의 내용이다.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막고 청렴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필요성이 아니라, 마치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전부인 양 이야기되는 지금 상황이다. 공수처가 만들어져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 일부를 가져간다고 해도 정작 문제시되었던 검찰 권력이나 조직에 직접적 변화는 없다. 공수처를 통해 검찰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검찰이 개혁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말 검찰을 바꾸고 싶다면 검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기소독점주의, 이로 인한 무소불위의 권력, 2018년 서지현 검사가 고발한 조직 내 성폭력 등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 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기소권을 가진 유일한 기관으로서 검찰은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에 맞춰 기소/불기소 처분을 반복했으며, 자신들의 수사 지휘권을 이용해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 여부를 임의로 결정해왔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른 기관에 배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패스트트랙에 공수처 법안 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 양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 역시 상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 채 공수처 설치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공수처를 설치한다고 한들 자연스럽게 검찰 권력이 약화되거나 검찰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검찰을 통제할 더 큰 권력을?

지금의 공수처 법안은 대통령을 필두로 모든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해서 수사하되 검찰‧경찰‧법원에만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공수처가 사실상 검찰에 대한 견제 및 감시용 기관으로 이야기되는 배경이다. 검찰이 ‘정치 검찰’로 기능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구축하고 확대할 때, 또는 내부 수사나 기소를 꺼릴 때, 공수처를 통해서 이를 견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검찰이 위와 같은 만행을 자행할 수 있는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에서 나오며 바로 그 독점이 검찰 권력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는 정작 그 거대한 권력을 약화시킬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공수처는 검찰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에 고삐를 씌울 또 다른 권력을 만들어낼 뿐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을 견제할 방안 또한 비어있다.

공수처를 통해 검찰에 대한 실질적 견제나 감시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공수처가 검찰에 대해 기소권을 가지더라도, 정작 검찰을 기소할 공수처 수사관 역시 검사나 변호사 출신으로 구성된다. 공수처 직무를 수행하기 전후 일정 기간 동안 검찰에 재직할 수 없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결국 공수처 내 수사처 검사 역시 검찰 조직의 일부라는 의혹을 지우기는 어렵다. 기소독점주의를 깨기 위해서라도 기소권을 가진 새로운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오히려 공수처와 검찰이 유이하게 기소권을 가진 조직으로서 더 거대한 사법 카르텔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검찰 권력을 분산하거나 시민이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더 큰 권력을 만들어 고삐를 씌우려고만 하니, 권력은 약화되지 않고 거대해질 뿐이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만능열쇠가 될 수 없다.

 

권력의 확대가 아니라, 시민에 의한 통제로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을 바라며 촛불을 들고 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무엇을 겨냥했을까. 검찰이 저질러온 수많은 비리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온 역사,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데에서 나오는 거대한 권력, 마음만 먹으면 정부와도 힘 싸움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사람들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열망이 공수처 설치로만 수렴되거나 해소될 수는 없다.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또 다른 권력’은 개혁의 목표도 완성도 될 수 없다. 공수처를 통해 검찰을 제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검찰 권력을 개혁할 수는 없을뿐더러, 공수처라는 또 다른 권력을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한 검찰 권력의 배분,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 개선, 시민에 의한 검찰 권력 통제 방안 마련 등 검찰 개혁의 과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지난 9월 말 법무부 산하에 출범한 제 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역시 검찰에 대해서 ‘조직 외부로부터 민주적 통제 방안’, ‘조직 내부의 민주화 방안’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를 위해 2010년 발족한 검찰시민위원회의 활성화, 더 나아가 구속력을 가진 기소심의위원회 도입 등을 고민해야 한다.

 

‘공수처 우선론’을 넘어서

자유한국당은 조국 전 장관의 사퇴 이후 공수처로 타깃을 변경해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민주당은 지금의 공수처 국면에서 법안 처리 순서를 이야기한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의 다른 법안은 제친 채 공수처를 결사반대하고 있으니, 패스트트랙 법안 전체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수처 법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이 공수처에 집중하자는 제안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개혁 과제에 침묵할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니 공수처는 필요하다”는 식으로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가로막는 행태 또한 문제적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함께 올라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선거제 개혁에 대한 입장은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오로지 공수처만 외치고 있는 민주당의 ‘공수처 우선론’이 ‘공수처 유일론’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검찰의 비리‧범죄를 제대로 처벌하는 일’과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막는 일’은 서로 다르다. 공수처가 전자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후자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공수처 우선론을 넘어서 검찰을 바꾸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자. 검찰 권력은 공수처와 같은 또 다른 권력이 아니라 시민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한국 사회가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고 만들어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