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연결된 낙인, 무력한 국내인권보장체계

[연결된 낙인, 무력한 국내인권보장체계] ③국제인권기구의 개인진정, 그 출구는 없는가

25년간의 국제인권법, 한국 인권운동의 새로운 전기

인권의 향유는 행복의 기본조건이다. 아무리 호의호식을 한다고 해도 감옥 속에 있다면 행복할 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인권향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님은 역사가 증명한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하고, 때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시달렸다. 제왕적 대통령 이승만, 군사정권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해 인권은 철저히 유린되었다.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피를 흘렸고 감옥에서 신음했으며 때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때 우리에게 하나의 빛이 다가왔다. 대한민국을 넘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인권활동이었다. 국제사회는 2차 대전 이후 인권보장의 국제화를 위해 담대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국제연합(유엔)은 인권의 국제적 보호를 그 창설의 목적 중 하나로 천명해 왔다. 유엔은 헌장을 토대로 인권과 관련된 논의를 해내가며 세계인권선언을 만들어냈고, 이어서 그 내용을 구속력 있는 국제인권조약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인권조약은 그냥 종이 위의 권리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그 조약에 들어온 가입국에게 그 이행을 위해 여러 의무를 부과한다.

당사국은 정기적으로 해당 조약에서 보장하는 인권이 그 나라에서 얼마나 잘 보장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조사해 조약감독기구에 보고하고 그 내용을 정부대표단의 참여 하에 검토를 받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도 개발했다. 개인진정(individual complaints)이란 제도인데, 이 제도를 통해 인권조약 상의 권리를 침해 받은 당사자는 직접 조약감독기구에 진정할 수 있다. 진정이 있게 되면 감독기구는 진정인의 주장과 당사국의 주장을 듣고 조약위반 여부를 판단해 결정을 한다.

우리가 이런 국제인권제도를 알고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게 어느새 25년이 넘었다.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이 된 1990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인권조약 대부분에 가입했고 그들 조약에 따른 인권메커니즘 속에 들어가 있다. 더욱 유엔은 2000년대에 들어와 유엔인권조직을 대폭 개편해 종래 인권기구를 주요기구인 이사회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유엔인권이사회다. 인권이사회는 새로운 제도(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를 도입해 모든 회원국을 인권조약 가입 여부와 관련 없이 정기적으로 국가별인권상황을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른 권고를 하고 있다. 한국은 바로 이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면서 현재 의장국이기도 하다.

지난 25년간 우리나라의 인권운동에서 위와 같은 국제인권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보편적 인권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인권조약의 기준으로 국내인권제도나 실태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인권운동의 주요 방법론이 되었다. 인권운동가와 전문가들 중에는 그 무대를 유엔과 국제적 인권단체로 돌려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 결과 국내의 인권제도와 실태에도 꽤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가입한 인권조약에 위반되거나 미치지 못하는 법령이 그에 맞추어 개정된 사례가 그 증거다. 특히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에 우리가 가입한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활용도는 더욱 높아졌다. 인권위법에 국제인권법에 따른 인권증진을 인권위의 주요기능으로 명문화했기 때문이다.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개인진정한 사건에 대해 한국정부가 자유권 규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법무부 인권국은 결정문을 2013년 8월 홈페이지에 게시만 했다. (http://hr.go.kr/HP/COM/bbs_03/ListShowData.do)

▲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개인진정한 사건에 대해 한국정부가 자유권 규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법무부 인권국은 결정문을 2013년 8월 홈페이지에 게시만 했다. (http://hr.go.kr/HP/COM/bbs_03/ListShowData.do)


국제인권법의 위기를 초래한 두 번의 보수정권

그런데 노무현 정권 이후 두 번의 보수정권이 들어서 8년이 지나면서 국제인권법에 의한 인권증진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심한 회의가 들고 있다. 두 정권의 인권 비친화적 속성이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국제인권분야가 유독 심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정권은 그간 국제인권기구가 우리나라 인권에 대해 지적하고 권고하는 것에 대해 도대체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오불관언, 마이동풍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개인진정에 따른 유엔인권기구의 결정을 국내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문제다. 개인진정은 보통의 다른 국제인권 메커니즘과는 수준을 달리하는, 이제껏 국제사회가 만든 인권보장책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제도로 통한다. 재판기구가 하는 사법적 절차는 아니지만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약감독기구가 해당 당사국의 진정사건에 대해 법적 판단을 하는, 소위 준사법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절차에서 당사국의 조약위반이 판단되면 그것은 단지 권고로 생각해 지키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견해도 있고,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그에 준하는 사실상의 구속력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런 개인진정이 지난 10년 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나라가 어딜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가입한 인권조약 중에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을 비롯해 4개 조약이 있다. 이 중에서 이제까지 개인진정을 가장 많이 한 조약은 자유권규약이었다. 국내절차에서 벽에 부딪힌 인권 피해자들은 이 규약을 우리 정부가 침해했다고 하면서 유엔으로 들고 갔다. 1990년대에는 주로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법 관련 사건이 많았고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많다. 이제까지 무려 500명이 넘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절차에 의해 규약위반을 확인받았고 현재도 수 백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내국인만 이 제도를 이용하는 게 아니다. 외국인이라도 할지라도 한국 내에서 인권조약 상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면 당해 조약감독기구에 진정할 수 있다. 최근 문제된 외국인 영어보조교사에 대한 에이즈 및 마약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는 경우 외국인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매년 에이즈 및 마약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검사는 내국인을 물론 외국인이지만 한국계의 경우도 해당이 없다. 누가 봐도 인종적 요소에 의해 차별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최근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했던 한 외국인의 개인진정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철폐협약에 위반된다고 결정하고 그 당사자에게 적절하게 보상하고 관련 규정을 고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태도는 그간의 예처럼 제 갈 길을 갈뿐이다. 그런 정도의 결정은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겠다는 식이다.

시급한 개인진정 결정의 실효적 국내이행절차

대한민국 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국제법 존중주의에도 어긋나며 국제인권법의 장래에 매우 악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이 제도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성숙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계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조약감독기구의 결정을 국내적으로 이행하는 방법이 크게 문제인데, 그 향방이 이 결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지금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정부의 태도가 이 정도니 이 제도의 장래가 참 딱할 뿐이다.

물론 개인진정 사건으로 조약감독기구에서 조약위반으로 결정이 난 경우 그것을 국내에서 그대로 이행하는 것은 방법론상 쉽지 않다. 대부분 문제된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서 국내재판으론 이미 확정된 것이라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정을 국내에서 존중하기 위해선 막 바로 사법적 구제방법을 사용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준사법적 절차를 통해서 얻어낸 결정이니 그것을 존중하는 방법도 준사법적 절차를 통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진정 결정이 우리 정부에 의해 외면 받고 쌓여만 가는 현 상황에서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당사자들은 개인진정 결정이 국내에서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엔의 관련감독기구나 이것을 담당하는 특별보고관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유엔의 또 다른 강력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정부로선 큰 압박이 될 것이다.

나아가 반복되는 결정에도 아무런 국내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관련 조약 및 헌법 위반이 될 여지가 크다. 이 경우엔 부작위에 의한(공권력의 불행사)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으므로 당사자들은 헌법소원 등의 절차도 이용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런 개별적 차원의 접근방법보다는 이런 결정이 있는 경우 국내적 절차를 이행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권피해자가 그 험난한 과정을 통해 이런 결정을 받아냈다면 그 이후의 구제는 국가의 몫이지 당사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문제해결의 지름길은 정권교체

그런데 이런 법이 이 정부에서 가능할까? 두 번의 보수정권이 이제까지 보여준 것으로 판단하건대, 그 가능성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입법적인 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법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다. 정권을 바꾸는 일이다. 인권친화적 정권이 들어서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국내이행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처럼 국제인권기구의 결정을 소귀에 경 읽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정부 아래에서는 사실 백약이 무효다. 일단 그 정권을 바꾸고 새 정권에서 지혜를 모으는 게 이 문제의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방법이다.


덧붙임

박찬운 님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교수이자 변호사로, 민변 국제연대위원장 및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