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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한 존재들에 대한 폭력, 아동학대라는 고문

약자의 처지를 보면 해당 사회의 인권수준을 압축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재소자나 고령자, 장애인, 난민신청자 및 이주노동자, 극빈층이 어떻게 대우받는지 헤아리면, 해당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얼마만큼 포용하며 더불어 살려는지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권유린에 취약하게 노출된 사람들이 존엄성을 잃지 않게끔 배려하는 사회는, 단지 조화를 일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신뢰에 더해진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부조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치로 되돌아와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한다.

숨겨진 사회적 약자, 아동

한국사회에서 특히 보듬어야 할 약자들이 누구일까 판단할 때 빠지지 말아야 할 대상은 아동들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나칠 정도로 사랑받으며 호강 속에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기에, 아동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것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한국은 개인의 불행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는 체계가 부족하다. 어떠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는지가 삶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단지 성공이나 부, 외모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살 권리조차 운명에 좌지우지된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한다. 폭력의 결과 죽거나 영구장애를 겪는 일까지 거듭 벌어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가정폭력의 후유증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파괴적인 삶으로 이끈다.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바대로, 폭력은 질기도록 대물림되어서 평생 폭력에 신음했던 이들이 장차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로 둔갑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며 폭력을 행사할 때 체념으로 일관하는 삶에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범죄나 테러에 준한다고 일컬어지는 가정폭력의 폐해에 비해서, 한국사회 정치권이나 언론의 가정폭력 근절노력은 태부족하다. 이 사이 가정폭력으로 무참히 목숨을 잃는 희생자들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증가해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잔인성과 극단성이 혀를 내두를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방지대책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나 일부 학계는 가정폭력의 증가원인을 “핵가족 확산의 심화”로 두는 등,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는 수준을 드러낸다.

숨겨진 인권유린 스캔들 - 아동학대

[포스터: 이러한 일이 당신의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세요]

▲ [포스터: 이러한 일이 당신의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세요]

한국인 중에 인권보호정책의 향상으로 아동학대가 상당수 줄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2012년 한 해 동안 외신에 보도될 만큼 끔찍한 아동학대사례가 줄을 이었다. 부모라는 작자들에 의해서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다가, 영유아들이 사망하거나 영구장애인으로 전락하는 참상이 반복되고 있다. 부모가 공모해서 아이를 학대하기도 하고, 부모 중 하나가 고문에 가깝도록 아이를 구타할 때 옆에서 방조하기도 한다.
2011년 겨울에는 3살짜리 아이를 수시로 잔악무도하게 구타하다가 아이의 머리를 싱크대에 찧어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아이를 ‘쓰레기’처럼 대충 싸서 근처 공사장에 내다 버렸다. 평소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생모는 사실상 사태를 방관했다. 사건 이후 해당 지역 주민들은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 부동산 시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쉬쉬했으며, 평소 가해 부모들이 습관적으로 아이들을 구타했을 때 어느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섯 달밖에 안 된 아기를 수차례 바닥에 짓이겨서 영구장애인으로 만든 천인공노할 범죄가 발생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상식을 벗어나서 친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의 감형사유는 생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과 가해자가 수감되면 생계가 막막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평생 후천적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고려를 몰각한 처사라는 데서, 아동인권에 대한 법원의 퇴보적인 인권의식을 드러낸다. 최근에는 남편과 불화 후 데리고 나온 친아들을 수시로 구타하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른 생모가 보도되었다. 아이를 죽인 죄악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도록, 생모는 아이의 자그마한 사체를 담은 가방에 돌덩이를 집어넣어서 저수지에 빠뜨렸다. 지난주에는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수시로 때리고 물건처럼 집어 던지다가 3세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체포된 가해 부모들은 “죄송하다”는 짤막한 말로 자신들의 행동을 수습하려 한다. 사죄의 일차적인 대상조차 살해당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데서 충격을 더한다. 소유물인 양 자식들을 함부로 대하다 보니, 살해 이후에도 애도와 반성을 하지 않는 작태로 이어지는 듯하다.

나라마다 천차만별인 아동학대에 대한 대응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나라마다 대응방식과 예방책이 확연히 다르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하면 십중팔구 헤드라인뉴스로 보도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좋아할 성싶은 장난감이나 사탕을 희생자가 죽은 장소 어귀에 놓아두며 헌화한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움을 카드에 담아서 추모하기도 한다. 언론은 관련 대책의 부재를 꼬집고, 정치권은 법제화를 위해 주력한다. 이밖에 경찰과 법원은 아이의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을 체포 및 소환해서 책임을 가리기 위해 힘쓴다. 학대를 인지하면 신고할 의무가 있는 교사들이나 사회복지사들이 업무태만으로 아이가 죽었다고 판단되면 징계를 받는다. 한국과 달리 직접적으로 아이를 사망케 만든 사람뿐만 아니라, 아동이 극심한 학대에 시달린다는 것을 직접 인지한 이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한 사람들도 처벌된다.
몇 년 전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피터 사망사건’의 경우에도, 생모는 직접적인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장기간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형이 어린 피터를 학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했다. 생모는 현재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영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자”라는 악명을 지니고 있다.

아동학대를 소홀히 다루는 한국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어도 거의 대부분 단신 기사로 처리된다. 아이들이 낯선 유괴범에게 살해당하면 대서특필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모에게 집에서 살해당하는 아이들의 참극은 외면된다. 심지어 10살짜리 아이가 친모에 의해 아파트에서 사망한 사건이 서로 “합의”된 “동반자살”로 보도될 지경이다. 생모가 처벌되지 않은 것 역시 문제적이다.
아동학대를 여전히 사적인 가정문제로 국한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아동학대는 다른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크나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지속적인 폭력의 후유증으로 인해 노동력 상실, 자살시도, 병원치료 및 만성 질환, 피해자의 가해자화, 몰각된 내면이나 자존감 상실, 평등과 안전의식의 붕괴 등을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이다. 더불어, ‘때릴 만한 정당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된 채 잔악무도하게 죽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까. 혹은 그러한 동기들을 애써 찾는 시각이 온당한 것인가.

아동학대에 무관용으로 일관하는 몇몇 나라들의 사례

증가하는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보다 먼저 고민해서 대책을 수립했던 외국의 사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안겨줄 수 있다. 스웨덴은 한국처럼 대대로 부모나 교사의 체벌을 옹호해오다가, 체벌이 미치는 부정적 여파를 인식하면서 1970년대 말부터 체벌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웨덴을 비롯한 노르웨이, 핀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라트비아, 사이프러스, 크로아티아에서는 부모와 교사의 육체적 훈육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7개국

스웨덴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모나 교사들의 훈육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슬링샷』(Kådisbellan)은 1920년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꿈 많은 소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다. 사회주의자이자 유대인 부모를 둔 롤란드는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사들의 방침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한다. 급기야 롤란드는 한정치산으로 낙인찍혀 “문제아”로 득시글거리는 소년원에 보내진다.
이 영화에 나오듯이 스웨덴에서는 전통적으로 체벌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응답자 중 절반이 체벌을 옹호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체벌에 대한 여론이 꾸준히 부정적으로 변해서, 2011년 조사에서는 불과 8%만이 체벌을 찬성했다. 아이들이 훈육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점이, 스웨덴이 추구하는 평등과 인권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아동들은 보살핌과 안전, 양질의 양육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 아동들은 인간과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체벌 혹은 다른 종류의 비인간적 대우에 처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명시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로 부모나 교사에 의한 체벌을 1979년 법으로 금지했다. 체벌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일상적으로 ‘가벼운’ 매를 맞고 살아가는 아동들이 적지 않았다. 법과 현실의 괴리 속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수차례 법을 개정하며 보완점을 다듬었다.
아동학대가 주로 밀폐된 가정에서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해서, 스웨덴에서는 교사나 의료진, 사회복지사가 아동학대가 의심될 만한 정황이 있을 때 즉시 사회복지당국이나 경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아이들에게는 체벌이 위법행위이며, 누군가에게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없다는 점을 가르쳤다. 스웨덴에서는 아동들이 직접 학대를 신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부와 경찰, 법원, 학계 및 사회가 협력하는 아동학대 근절노력

스웨덴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 정부는 관련 분야 연구진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분석 및 해결책 제시를 의뢰한다. 학계에서 보고서를 발표하면 관계자들과의 공청회나 논의를 거쳐 의제화하면서 공식적인 정책으로 밀고 나간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아동학대신고가 급증한 것에 충격을 받은 스웨덴에서는, 아동학대 척결을 위해 여러 주체들이 공조한다.
스웨덴범죄예방당국(Brå)은 영아에서부터 6세까지 아동들이 당하는 아동학대의 양상 진단 및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진들은 스웨덴통계청과 경찰, 의료보험당국 등이 수집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아동학대의 실상을 최대한 정확하게 짚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합당한 분석 위에 바람직한 대안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구진들의 조사에서 여러 시사점이 제기되었다.

① 학대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②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부모나 사회복지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의료진들이나 경찰이 신고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③ ‘모든 종류의 부상, 질병, 고통을 유발하는 체벌’로 아동학대를 규정한 후, 부모가 아닌 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범죄와 동일하게 처벌할 것을 권고하며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출간 이후 아동학대가 스웨덴에서 이미 근절되었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스웨덴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각성이 더해지자,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아동학대 양상을 조사하는 후속 연구가 뒤따랐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2012년에 「0세에서 6세까지 아동들에 대항한 공격범죄 : 2009년에 신고된 범죄 경향」(Assault offences against children aged 0–6 years ; Trends in reported offences to 2009)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학대받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면식범(주로 부모)에게 피해를 입는다.
② 가해부모 중 2/3가 남자였으며, 30대가 45%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은 직접적 사회복지 수급가정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부모 및 한부모 가정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각한 수준의 학대를 저지른 부모 중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③ 신고된 아동학대를 진지하게 다루는 경찰 및 법원의 대응도 눈에 띈다. 2001년과 2009년 사이 경찰에 신고된 아동학대는 총 1,035건이었다. 이 중 772건이 정식으로 수사되는 등, 다른 범죄들에 비해서 기소유예나 수사종결 비율이 낮았다. 끔찍한 폭행을 일삼은 부모들 중 31명이 법정에 회부되어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처벌수위로는 벌금형과 집행유예석방이 가장 많았으며, 교도소에 수감된 부모는 총 4명이었다.
④ 대부분 면식범들에 의해서 집 안에서 매를 맞는 만큼,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대하는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의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위험에 처해있는 취약한 아이들의 생명권을 보장해주는 필수적인 조치이다.
⑤ 중차대한 학대를 입어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10만 명당 3~4명꼴이어서 국제비교 수치로 보면 미미하다. 1990년대 이후 학대를 받다가 숨지는 아이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고무적이다. 2003년과 2006년 사이 부모에게 살해당한 14세 미만 아동들의 수를 스웨덴과 네덜란드, 핀란드를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 스웨덴이 가장 안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핀란드는 전체 살인 중에서 부모에 의한 아동살해가 차지하는 비율이 4.4%인 반면 스웨덴은 1.9%였다.

스웨덴에서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해 펼치는 방안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아동학대를 법으로 금지하고 아이를 때리는 것이 위법행위이자 학대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②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회복지사와 유치원/학교 교사, 의료진들은 학대가 의심될 경우 즉시 사회복지당국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③ 아동학대로 조사를 받거나 처벌받은 경우, 사회복지당국과 경찰에서는 피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세세하게 기울여서 추가적인 피해를 막도록 힘쓴다.
④ 학교 및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부모를 포함한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교육한다.
⑤ 미디어 및 기업은 가정폭력을 근절시키는 데 공조한다. 미디어 차원에서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및 기획물을 보도하거나, 가정폭력을 두둔하는 프로그램에 주의를 기울인다. 기업은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비정부기구를 지원하거나, 광고나 포장지, 일회용 봉지 등을 통해 가정폭력 반대 입장을 확산하는 데 일조한다.
⑥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이 발생한 이후 개선 가능성이 낮아서 아동의 건강한 성장이나 안전이 치명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양육권을 제한적 혹은 영구히 박탈한다. (아동의 안전권이 해당 아이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의 일환이기도 하다.)
⑦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을 위한 각종 치유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들이 다시금 안전에 대한 믿음 속에서 행복하고 순탄하게 커 나갈 수 있도록 상담과 병원치료 등 관심을 받을 권리를 전적으로 누려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당국과 경찰 및 미디어는 피해아동들의 인적사항이 누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⑧ 언론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뿐만 아니라, 피해아동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해 부모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유포될 경우, 피해 어린이 또한 이중삼중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결과 아동을 학대하는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동인권이 발달된 네덜란드나 핀란드보다도, 아동들이 부모를 포함한 사람들로부터 목숨을 잃는 경우가 현저히 낮다.
스웨덴과 달리 아이를 때리는 것에 허용적인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나 교사, 보육원교사 및 학원강사, 조부모 같은 측근들에게 매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를 때리는 것에 일정 부분 무감각한 세태 속에서, 아이들 중에서는 수년간에 걸친 고문을 당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후천적 장애를 겪으며 살아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국도 스웨덴과 같은 강력한 가정폭력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학교나 유치원에서부터 아동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해야 한다. 아동들은 부모에게서 ‘심하게’ 맞았을 경우 주위에 알리도록 권장 받으며, 폭력을 인지한 주변 사람들이 조속히 대응해서 아이가 더 이상의 극심한 폭력을 받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상당수의 선진국들처럼 부모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양육권을 일시적 혹은 영구히 막는 방안도 도입되어야 한다. 법원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서 어느 사건 못지않은 심각한 범죄로 파악한 후 그에 걸맞은 판결을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사나 판결과정에서 피해아동의 이해관계가 가장 우선적으로 숙고되어야 마땅하다. 미디어에서는 아동폭력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이것이 분명한 범죄라는 점과 아동학대의 후유증을 널리 알려야 한다.
지금도 어디에서는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추악한 범죄인 아동살해는 비로소 줄어들 것이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자유기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