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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거부] 살아가는가?

살아가는가?

숨이 막힌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집에서 역곡역 가는 버스를 타고 사람으로 꽉꽉 채워진 서울행 1호선 열차를 거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만 학교에 도착한다. 1시간 반이 걸린다. 지하철은 움직일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숙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인다. 주위는 피로에 젖어서 시체처럼 선잠을 자는 사람, 그 와중에 좀 더 높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만들기 위해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을 보는 사람, 움직일 수도 없는 감옥 안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는 고등학생이 보인다. 그 고등학생의 왼손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나의 머릿속은 잠시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시절, 색깔로 정의한다면 검은색이다.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지독한 괴로움이다.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표 안에서 나의 이름과 삶의 리듬, 하고 싶은 일, 친구, 여가 생활 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고3때는 휴대폰과 인터넷마저 해지하고 게임도 끊고 그야말로 수능형 인간 혹은 수능 보는 기계가 되었다. 반 친구들과의 대화는 줄었고 고3때는 즐겨하던 축구, 웨이트 트레이닝 등의 모든 운동도 끊어서 살도 굉장히 많이 쪘다.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나는 사는 것이 아니었고 수능이 끝나고 삶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OMR 카드라는 비행기 티켓

난 지금 어느 대학교에 사회학과를 다니는 학생이다. 학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언론은 대학거부운동마저도 거부자의 학교에 따라 서열화하고 소비하기 때문이다. 너무 천박하다. 재개발 지역에 살던 나의 삶은 가난했고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오직 내 앞에는 하나의 선택지가 있을 뿐이었다. 수능은 유일하게 비자 없이 그곳을 탈출시킬 여객기였다. 결국 선택은 구조 안에서의 선택, 강압이다. 나의 무의식은 혹은 의식은 내 가슴속에 있는 진정한 선택지를 구겨서 서랍 속 깊숙한 곳에 처박아버렸다.

가난하던 우리 동네 친구들과 강남 혹은 서울권에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을 비교하며 그리고 사회학과에서 계층 간에 이동을 보면서 느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풍족한 삶과 경제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부는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을 결정짓는 첫 번째 전쟁은 수능시험이다. 심지어 그것마저 사교육의 과열로, 가진 자들이 유리한 구조로 되어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패배하고 가난은 대물림 된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 엄청난 노력을 해서 서울대에 간 사람의 눈물 나는 후기를 보여주면서 세상은 평등하고 기회는 있다고 역설하려 한다. 슈퍼스타 K 우승자인 허각에 대한 언론의 접근 역시 마찬가지다. 우습게도 1/1000의 성공의 신화는 미담이 되고 사람들은 ‘긍정의 힘’이란 종교를 믿는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난 가난이란 유산상속을 거부하려 성공에 칼을 갈았다. 그래서 나름 괜찮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집 앞 사거리에는 동네친구들에게서 느끼는 우월감과 안타까움이 교차되었다.

대학입학장, 럭셔리한 노예문서

대학교육은 많은 부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난 내가 스스로 관심 있어서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토론 없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고 게다가 ‘상대평가’를 통해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 고교시절 새벽부터 등교해 늦은 밤까지 공부하던 경험은 대학교에서 레포트와 팀프로젝트를 통해서 밤을 새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었고, 결국 그 경험은 기업에 입사해서 근무시간외 야근을 하는 것을 몸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 것이다. 과거 노예제의 노예와 다른 것은, 과거에는 스스로 노예라는 것을 자각하였는데,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 예비 CEO(최고경영책임자)라고 생각한다는 차이밖에 없다.

대학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꿈을 찾고 그것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취업이라는 유일한 목적의 취업양성소가 되었을 뿐이다. 또한 이념적 스펙트럼은 너무 우편향적이다. (그에 대한 이유는 아래에 적었다.) 대학은 이미 진정한 삶의 의미와 자유, 정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획일적으로 대기업의 이력서를 가리킨다.

경쟁 복음

가난한 사람은 가난이란 악순환을 끊으려 부자는 부를 유지하려 쳇바퀴에 오른다. ‘나는 가수다’ 탈락자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할 수 있는 이유는 일요일 나는 가수다가 끝나고 ‘나는 인간이다’라는 끝없는 프로그램에 이미 면역이 돼 있기 때문이다. 경쟁은 영원한, 고정불변의 진리, 복음이다. 학교에서, 취업의 장에서, 순위에서 밀려났단 이유로 받았던 고통과 멸시는 이미 체화되어서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척도로 재생산된다.

너무나 당연히 존엄성보다는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우선에 배치하는 일련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다. 고로 정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권력과 재력을 가진 기득권층은 모든 매체와 교육 종교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거짓을 주입한다. 여기에 대한 비판을 하고 연대와 공존을 말하면 정치적이다. 심지어 빨갱이라는 매카시즘으로도 연결된다. 수능이 주입식인 이유도 이것과 맥락이 맞다. 질문을 하면 안 된다. 따라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정치적이라는 모순된 명제가 완성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예가 되었다. 자본가의 부를 채워주기 위해, 패배한 루저로서 열등감을 갖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상품이, 도구가 되기를 자처한다. OMR카드로 탈 수 있는 비행기는 삶을 연료로 날아간다.

자살

그러다 방 한구석에 고장 난 시계처럼 팽개쳐 놓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군대였다. 끔찍한 계급사회는 그 곳에서 내 모든 자유를 제한하였고 도구가 된 난 삶의 의미를 잃었다. 계급에 의한 권위주의에 굴종하고 내무 부조리 그리고 나를 도구로 만드는 모든 환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나는 더 이상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목숨을 끊고 싶었다. 그것은 원치 않는 행동들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닌 진정한 나의 삶을 찾고자 하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너무나 정당한 의지였다. 수많은 고민의 끝에 결국 목숨을 끊는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살아지는, 사라지는 삶을, 무한경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로 했다.

국가는, 교육은 자살을 금지하고 사회 전반적인 경향은 그것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 한다. 자살은 구조 안에서 저항 할 방법을 잃은 개인의 마지막 선택이다. 허나 자살을 단순한 우울증과 부적응 등의 개인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썩어 문드러진 사회구조의 책임을 회피는, 끝없이 자살자를 태어나게 한다. 자살은 구조 안에서의 결과이고 엄밀히 말하면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타살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지금까지의 나를 죽이고 23살 때부터 진정 나의 삶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찾은 곳은, 처음 나를 찾은 곳은 프리스타일을 하던 홍대 거리였다.



난 꿈에 대한 굉장히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지금껏 돈을 벌기 위해 해왔던 노동은 대부분 내가 원치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주체가 될 수 없었고, 운영전반에 대한 권리 또한 없었다. ‘근대적’인 조직과 집단속에서 난 하나의 큰 목표를 위해 나를 맞춰가고 조직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회에서 대부분의 일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에서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본 적 없는 풍경이라 피부로 잘 와 닿지는 않는다. 일단 이 체제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꿈은 순수 예술 등의 창작활동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굉장히’ 편협하다. 자본이나 타인의 권위에 종속돼지 않고 집단에 복무하는 것이 아닌(물론 자발적으로 그러는 것은 제외다.) 진정 자신의 목소리를, 사상을, 가치관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어내는 일. 그것 빼고는 무엇이 있을까?

꿈을 단지 꿈으로 만드는, 꿈을 적은 종이를 구겨서 서랍 속에 처박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술 산업의 착취구조와 부조리 때문이다. 예술가에 대한 존중 없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 없는,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달빛요정만루홈런의 죽음은 우리에게 음원수익배분율이란 문제제기를 던졌고,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씨의 죽음은 대기업의 열정노동 착취란 주제의 비극을 세상이란 무대에 올렸다. 수십억이 오가는 영화감독과 배우의 개런티 그러나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는 영화스텝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시설.

예술분야 역시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구조를 골격으로 만들어졌다. 슈퍼스타K의 인기는 우승자와 TOP10에 집중되고 나머지는 이름도 알기 어렵다. 소수의 간택된 사람은 미디어와 소속사를 배경으로 구조적인 모순이 가득한 음원분배율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이 가능하고 축제 등의 공연에서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받는다. 나머지 혹은 떨거지 예술가들이 챙기는 소득은? 사회는 성공한 뮤지션을 보며 구조는 정당하다고, 그 외 뮤지션들은 실력 없거나 대중성 없다고, 하고 싶은 일이니 배고픈 것은 당연하다며 열정노동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예술가의 배고픔을 마치 낭만인 양 묘사한다.

몇 달 전에 희망버스를 타고, 지금은 내려온 한진 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갔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라는 투쟁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물론 나는 김 지도의 헌신에 숭고함과 그 뜻을 지지하는 수많은 노동자 학생들과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난 정말 진정으로 그들이 그 일을 즐거워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생계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그들의 타협지점이 구호를 마음속에 목소리가 아닌 그저 ‘구호’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실존을 위해서는 생존이 전제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투쟁의 구호가 임금과 고용안정에만 한정된다면 스스로 삶과 노동을 도구화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생존이란 대전제만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면 실존은 언제까지나 영원히 뒷전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구호는 ‘일을 하기 싫다’이다. 내 삶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우고 싶고 그것만으로 배고픔과 상대적 박탈감 없이 살고 싶다. 혹자는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멈추자. 개인이 없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개인의 매순간의 삶,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일단 모든 것을 멈추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 연대와 저항

2009년 용산참사의 비극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난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도 나에게 큰 부채감이 되어 돌아온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난 그곳에 가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라는 것만 강요했고, 인권유린, 폭력, 부당함, 부조리 앞에서 함께 싸우고 연대하고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리고 홍대에 두리반에 이례적인 농성승리를 지나, 올해 명동 3구역이 강제퇴거 대상이 되었다. 몇 년 전 카페 마리라는 곳이 태어나고 강제퇴거가 함께 저항과 해방의 상징으로 다시 한 번 만들어지고, 부당한 철거에 대항해 삶을 지키려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했다.

이전부터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규 수업이 아닌 토론동아리를 통해,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세미나를 통해 사회과학과 인문학 세미나를 했다. 사회에 대한 공부와 좋은 사람과의 토론으로 인해 2009년과 2011년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그 올바름을 지식에서 삶으로 전환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용역의 침탈과 그것을 사주한 무소불위의 권력 자본의 침탈 앞에서 그 곳을 지켜내려 했고 해방의 기억을 공유하였다. 거기서 ‘명동해방전선’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분들을 만나게 돼서 ‘용역깡패와의 랩배틀’이라는 기획의 행사를 했고 그것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까지 철거하는 강제퇴거를 반대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의아함 혹은 씁쓸함

대학입시 거부운동을 하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서열화-무한경쟁 교육문제의 중요성에 비해 이 쟁점에 연대하고 관심을 가지는 계층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위 농성, 쌍용차 노동자의 19번째 자살 등 노동문제와 비교할 때 매년 수능이라는 서열화 교육 때문에 자살하는 수험생의 무게는 그 수를 차치하고라도 무게는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가 G20이라는 명예(난 동의하지 않지만)를 달 때 OECD가입국 중 10대 자살률이 1위라는 멍에 또한 가졌다. 피의 월계관은 경쟁지상주의 서열화 교육과 청소년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억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매년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한다. 한미 FTA 반대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데 대학거부는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노동자-농민의 삶과 학생들의 삶 둘 중 경중을 따질 수 있을까?

진보적인 사회운동세력에서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 청소년은 정치적 권리가 없다. 투표를 하지 못한다. 직선제에 의존하는 진보정당 운동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효율적’이지 못하다. 두 번째 진보적 활동가 역시도 머리로는 비판을 하지만 학벌주의와 서열화 논리로 인해 삶에서 체득한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거부 운동은 명문대에 나와서 생계를 위해 입시 고액과외를 하는 그들의 실존에 어떠한 물음을 던질까?

꿍짝쑥덕 공작단

현재 난 대학교수 비정규직 강사 문제로 수백일째 국회 앞에서 투쟁중인 김영곤-김동애 부부와 함께 ‘쿵짝쑥덕공작단’이라는 이름의 팀을 만들었다. 비정규직 강사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필요성 때문이다. 수업을 배정받지 못한 강사 개개인의 생계문제와 동시에 정교수에 의해 쉽게 해고가 통보되는 구조는 그로 인한 교육권의 상실을 가져온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을 교육하고 이념과 사상을 재생산해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한다. 그렇기에 대학의 이사회나 고위공직에는 친정부적 인사를 배정하며, 반정부적이거나 반자본적인 강의를 하는 비정규직 교수에게 압력을 넣거나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고 정교수는 아예 친정부적인 인사 위주로 임용을 한다. 이러한 교육은 지식사회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대학생들을 바보로, 도구로 만든다.

이러한 대학교육에 대한 문제제기를 음악+강의+토론을 겸비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할 생각이다.

대학거부 콘서트

몇 달 전 트위터에서 고3 수험생들이 대학입시를 거부한다는 투명가방끈 모임에 대해서 보았다.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사회에서 이들의 행위는 ‘위대한 거부’ 그 자체이다. 그 거부의 외침은 내 자신의 마음 속에 메아리가 되었고 휴학이 3년 만기인 나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게 하였다. 난 대학 졸업이 1년 남았다. 모든 사람들은 ‘1년만 참고’ ‘졸업은 하라’고 하였다. 나를 위해서 조언해준 모든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말은 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이다. 음악을 하다 굶어 죽을 두려움 때문에 1년 동안 (실제로는 더 오랜 기간) 나 자신을 잃고 나를 상품으로 만드는 행위를 하는, 자기 자신이 빠진 자기소개서를 창작하는 역겨움을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학거부 거리행동 때 아무것도 안 정하고 즉석으로 만든 프리스타일 공연

▲ 대학거부 거리행동 때 아무것도 안 정하고 즉석으로 만든 프리스타일 공연

나의 결론은 대학거부다. 그것은 이성적인 분석에서 나온 결론은 아니다. 말하자면 심장이 뛰는 대로의 행동이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현실과 타협해서 똑똑한 노예가 될 뿐이다. 한편으로는 대학거부 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나를 나타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제)대학거부 콘서트’를 기획한다. 대학거부라는 것이 지구의 자전을 거스르는 소수의 희생-중대한 결단인 동시에 착취되는 삶을 회복하는 즐거운 유희였으면 한다. 대학거부자라는 이름 대신 뮤지션 ‘시원한 형’으로 내가 대학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음악을 하는 이유를, (음악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를 음악으로 보여줄 것이다. 꿍짝쑥덕공작단과 약간 기획을 공유한 상태이고 큰 판을 벌이기 위해 대학거부/입시거부를 주도한 투명가방끈과 함께 그리고 서열화 교육과 무한경쟁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느끼는 개인 단체들과 함께 기획을 제안해 볼 생각이다. .(대학거부 거리행동 공연 동영상 보기)

세상을 바꾸는 음악

난 내가 할 일을 정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 이것은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와 사회구성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자 삶 자체이다. 올해 안, 늦어도 내년 3월 대학거부 콘서트 전까지는 나의 EP 앨범 ‘살아가는가?’를 발표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앨범을 내고 위에서 생각했던 논의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을 그 안에 담을 생각이다. 또 함께 음악과 기획을 해나갈 ‘춤추는 제자리표’라는 단체를 만들 것이다.

욕심이 크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것을 창조하고 싶다. 물론 힘들고 시련도 고통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을 신문을 통해서 기고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으로 고민하고 설렐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진정한 행복이다. 작은 욕심이 있다면 대학입시 거부를 한 위대한 고3들의 행동에 나의 마음이 움직인 것처럼 이 글을 보는 당신의 가슴에 조그마한 불씨가 생겼으면 한다.
덧붙임

시원한 형(@si1han) 님은 세상을 바꾸는 음악을 하는 래퍼(MC)입니다. 기고 글의 제목은 앨범 제목입니다. 글 중간 중간에 노래 제목과 가사를 인용해서 독자들이 쏠쏠한 재미를 느끼기 바란다고 전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