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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코드’ 인사, ‘맞춤’ 결정 !

노태우 정권은 권위주의 통치가 아니다?

지난 1월 19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위원장 이영조, 아래 진화위)가 1989년 ‘부산 동의대사건’ 관련자들의 진상규명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却下)란, 피고가 더 이상 원고측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없게 할 사유를 들어 소송절차를 차단시키는 것을 말한다. 좋게 말해서, 진실규명을 요청한 신청인들에게 더 이상 진실규명 할 사안이 아니니 진실규명을 그만 두겠다는 말이다. 이 자체로는 조사할 요건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각하’ 결정의 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너무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어 진화위가 과연 더 이상 존치 이유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진화위는 지난 2007년 고(故) 신건수씨 의문사 사건(1994년)을 각하하면서 ‘노태우 정부 재임기간인 1993년 2월 24일까지를 권위주의 통치시기로 한정 한다’고 하였다. 이때는 1994년 사건이니 조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약 3년이 지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과거로 돌아가 노태우 정권의 성격을 바꾸어 놓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 진화위는 노태우 정권의 재임기간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나섰다. 그러면, 1991년 발생한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도 민주화된 노태우 정권 시기 사건이니 각하 되어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정승윤 진화위 상임위원은 ‘정부 형태와 체제는 헌법을 기준으로 나뉜다’, ‘1987년 개헌이 이루어졌으므로 노태우 정권 이전까지를 권위주의 통치시기로 봐야 한다.’ 고 밝혔다(한겨레, 2010. 1. 20.) 전원위에서는 다른 선례도 있어 이제 와 뒤집을 순 없다는 반론도 제기되었으나 다수결로 묵살되었다고 한다. 정 상임위원의 견해라면, 1989년 발생한 신공안정국 하의 엄혹한 민주화운동 탄압, 1990년 3당 합당, 1991년 고 강경대 열사 타살 사건 등도 권위주의적 통치와 무관한 사건들이다. 노태우씨가 누구인가? 5․18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의 주역이다. 10년도 전에 바로 대한민국 사법부에 의해서 내란 및 내란목적의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장본인이다. 정부형태와 체제 운운하기에 앞서 정 상임위원이 진화위 법이라도 다시 보셨는지 묻고 싶다.



진화위법의 제정 목적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제1조)하는 것이다.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진실규명의 범위는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제2조4항)이 대상이다. 어디 한 구절에라도 ‘개헌’이전까지가 권위주의 통치 시기라고 규정한 대목이 있는가?

부산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 2002년 4월 민주화보상심의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받았다. 민주화보상심의원회의 위원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하여 법조인과 사회과학 전공 교수들이 다수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심의 때 1987년 개헌을 몰랐을까? 지금이라도 개헌의 참 뜻을 알았으니 결정을 번복해야 할까? 당시 경찰 유가족들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항에 대하여 2005년 헌재가 민주화보상위 결정을 재차 확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도 개헌을 기준으로 권위주의적 통치시기를 한정한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헌재가 개헌의 산물인데, 그런 헌재가 권위주의 통치 시기도 아닌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민주화보상위 결정을 재차 확증했으니 진화위 심의위원들이 보기에는 얼치기 법조인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뉴라이트가 장악한 과거사위원회

이번 진화위의 결정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지난 정부 시절 그렇게 비판하던 ‘코드’ 인사로, 그것도 아주 악성 코드인사에 따른 ‘보은형’ 맞춤 결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결과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줄줄이 폐쇄되거나 식물화 되었다. 진화위만 놓고 보더라도 2009년 4월 과거사위 폐지를 주장해 온 뉴라이트 닷컴 편집위원장(자유주의 연대 부대표) 출신이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2월에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 출신이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상임위원에 뉴라이트 싱크넷 상임집행위원출신 교수, 비상임위원에 언론소비자주권연대에 맞선 광고주협박피해구제센터 실무위원 출신, 올해 1월에는 뉴라이트 이론지 ‘시대정신’ 이사를 역임한 위 정 상임위원이 임명되었다. 절대 합선되지 않는 일관된 코드로 맞추어 졌다.

진화위가 형식과 내용을 갖춘 위원회라면, 앞으로 노태우 정부 시기 사건은 줄줄이 ‘각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동일 위원회가 동일 법률을 적용하면서 유독 1989년 동의대 사건만 ‘각하’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왜 뚜껑도 열지 않는가? 이건 아예 진실규명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같은 노태우 정부 시기 사건인데 앞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사건들은 어찌되는가? 같은 정부위원회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한 사건에 대해서도 ‘각하’하는 마당에 다 끄집어내어 없던 일로 되돌려야 마땅하다. 그 책임은 바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위원, 위원들이 져야 한다. 역사는 언제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질 각오가 서 있다면, 지금의 무모한 결정을 계속 남발하라! 그렇지 못할 바에는 신청인과 국민들에게 색깔 맞춰 자리를 차고 앉아 무지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사퇴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보수언론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사 정리를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며, 동의대 관련자들이 전경을 태워 죽였다고 나팔을 불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과 권경석 의원은 기존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의 결정을 뒤집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그때 마다 동의대 사건은 약방의 감초처럼 꼭 거론되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살펴보자. 동의대 사건의 시작과 끝은 노태우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로 시작하여 권위주의적 통치로 끝났다.

동의대 사건의 원인은 노태우 공안통치

1989년 5월 1일 동의대 학생들이 노태우 정부의 공안통치(3. 30. 현대중공업 경찰력 투입 강제진압, 4. 30. 메이데이집회 원천봉쇄 및 학생시위 폭력진압, 5공 비리 은폐)와 학내문제(부정입학, 등록금)에 항의하는 집회 및 가두행진을 하였다. 집회 후 학교로 돌아오던 중 학생 몇 명이 부산진경찰서 가야3파출소에 소위 타격투쟁을 전개하자 파출소장이 실탄 20여발을 발사하며 학생들을 추격하였다. 이 때 동의대 학생 한 명이 연행되었다. 당시 파출소장이 실탄을 발사하며 무리하게 추격한 사실은 제146회 국회 내무위원회 속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정 상임위원이 주장하는 민주정부인 노태우 정부 통치 시기, 그것도 백주대낮에 파출소장이 학생 잡겠다고 실탄을 발사했다!

5. 1. 동의대 학생들은 파출소장의 실탄 사용에 항의하며 도서관에서 연행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전개하였다. 다음 날인 5. 2. 교내 항의시위를 전개하던 중 시위대 사이에 변복하고 있던 사복전경 5명이 학생들에 의해 붙잡혔다. 학생들 8명이 추가로 연행되었다. 학생과 경찰 사이에 교환 제의가 오고 가던 중 학생들은 5. 3. 오후 2시까지 감금 전경을 풀어주겠다고 통보 하였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이날 새벽 전격적으로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 진압과정에서 아무런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은 ‘토끼몰이’ 진압에 의해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불의의 사고에 의한 사망자 등 사상자가 17명에 달했다. 사고 직후 당시 사상 전경 가족들은 무리한 진압명령에 항의하며 경찰 수뇌부에 항의하는 농성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왜 진화위에 진상규명을 요청했는가? 당시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학생들의 고의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 관련자 수십 명은 평생을 살인자로 살아야 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진상은 밝혀 지지 않은 채,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가해자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중년에 접어들었다. 발단은 노태우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였고, 이들은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주장한 죄(?) 밖에 없다. 동의대 학생들을 극단적 상황에 몰아넣은 것도 노태우 정부였고, 밤샘 농성에 지친 학생들과 화염병으로 가득 찬 도서관 건물로 전경들을 우겨 넣은 것도 노태우 정부였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도대체 과거사 정리가 무엇인가? 진실과 화해가 무엇인가? 부당한 국가권력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에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냉혹했다. 뒤늦게나마 진실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의 기회를 국가가 열어준다고 하니 신청인들이 여기에 호응해주었다. 그것도 국가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내친 국가에 어렵사리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겨우 진실을 밝혀 주라는 요구였다. 동의대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적 화해를 만들겠다고 설치한 진화위가 이 최소한의 요청마저도 묵살하였다. 국가에 의해 그 아픔과 고통이 조금이나마 치유되리라 믿었던 이들이 너무 순진한 것인가? 동의대 사건의 진실규명은 역사 속으로 다시 묻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을 고통의 시간들에 대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용기를 낸 동의대 사건관련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과거사 정리에는 좌우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 사회의 이야기이지,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통하지 않는 헛된 공염불이다. 한국 사회 과거사 정리 시계는 제로다. 전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엉성하게나마 정리된 과거사는 다시 헤집어 지고, 밝혀져야 할 진실은 묻히고 있다.

덧붙임

이영재 님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정책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