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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전범 처벌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라

진정한 '화해'를 위해 반드시 해야할 일

<옮긴이의 말> 지난 11월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주관한 ‘과거청산활동의 현황점검 및 실천적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 발제자가 현재 정부 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을 ‘너무 얌전한 과거사 청산’이라고 표현하였다. 과거 청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진정한 고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데, 처벌 없이 화해가 가능하겠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 동안 누구와의 화해를 주장해 왔고, 어떠한 과거사 청산을 주장해 왔었나.

지난 6월 13일자 <인권오름>에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지배와 독립 이후 식민지 지배자들에 대한 처리를 소개해준 로젠티노 아마도 헤이가, 1999년 동티모르에서 발생한 반인륜범죄 등과 관련하여 정의 실현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며 아래 글을 보내왔다.

인도네시아는 1975년 12월 7일 동티모르를 침략한 이후 1999년까지 수많은 반인륜범죄와 대규모의 학살을 저질렀다. 그 중에서 특히 이 글은 유엔의 동티모르 국제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 작업을 진행한 1999년 사건(1999년 초부터 동티모르 독립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인도네시아 군대와 민병대가 대대적으로 동티모르인들을 무력진압하였으며,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된 1999년 8월 30일을 전후해서는 학살과 재산파괴가 절정에 달했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유엔 국제조사위원회는 1999년 사건 조사 결과 국제법정을 설립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유엔과 국제사회는 가해자들의 면책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처벌과 배상, 명확한 진상규명이 없는 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사무총장은 수차례 결의서와 보고서를 통해 동티모르에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1999년 동티모르에서 자행된 반인륜범죄와 전쟁범죄의 가해자들은 7년이나 지난 지금도 면책을 누리고 있다.

화해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 그리고 명확한 진상규명이 없는 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가해자들은, 1999년에 자행한 범죄 뿐 아니라 24년간 동티모르를 지배하면서 자행한 온갖 반인륜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면책을 누리고 있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십 년간 반인륜범죄에 대하여 면책이 이루어져 왔고, 동티모르 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모두 1999년 범죄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져야 법치주의에 다가갈 수 있으며, 군대도 문민정부의 통제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가해자들에 대한 면책의 주된 책임자는 국제사회

이와 같이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면책을 누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에게 주된 책임이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2000년 1월 국제인권법정 설립에 대한 유엔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국제사회에 그 책임을 묻고 싶다.

전범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믿었던 인도네시아의 임시인권법정이나 동티모르의 중대범죄진상조사단은 실패로 끝났다.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에 대하여 재판관할을 가지고 있던 인도네시아 임시 인권법정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동티모르의 중대범죄진상조사단과 중대범죄특별법정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비협조, 유엔과 동티모르 정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옮긴이 - 동티모르 독립 이후 설립된 유엔임시행정위원회는 1999년 사건 조사를 위하여 동티모르 검찰총장 산하에 중대범죄진상조사단(Serious Crimes Unit)을, 재판을 위하여 딜리지방법원 내에 중대범죄특별법정(Special Panel for Serious Crimes)을 설립하였다. 중대범죄란 ‘대량학살’, ‘전쟁범죄’, ‘반인륜 범죄’, ‘살인’, ‘성폭행’, ‘고문’ 등이다. 또 유엔임시행정위원회는 화해와 진실위원회(Commission on Reception, Truth and Reconciliation)를 설립하고, 중대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화해를 통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였다.


1999년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에서 진행된 조사 및 재판과정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중대범죄진상조사단과 중대범죄특별법정이 중대범죄들을 조사했고, 일부 범죄 책임자들을 기소하였으며 영장을 발부하는 등 일부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장래 진행될 전범 재판에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유엔임시행정위원회가 2002년 5월 20일 중대범죄조사 권한을 중대범죄진상조사단에서 동티모르 정부에게 이관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엔안전보장 이사회가 국제전범재판을 설립한다면 국제사회는 전범들을 보호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다른 나라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소환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유엔 산하에 국제법정을 설립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유엔은 설사 이런 국제법정을 설립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위 중대범죄 진상조사단과 중대범죄특별법정의 활동기한을 연장해 주어야 한다. 동티모르 정부에게 중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유엔 회원국의 협조 하에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전보장이사회는 활동기한을 연장하고 새로운 임무를 부과해야 한다.

전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반인륜범죄는 되풀이

만약, 전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할 경우, 가해자들은 아체나 웨스트 파푸아, 기타 다른 곳에서 반인륜범죄를 되풀이할 것이다. 무력분쟁은 계속되고 평화 실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유엔은 반인륜범죄 가해자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면책을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단호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대범죄에 대해서도 정부간 또는 정부와 유엔 사이의 정치적 협약 등으로 피해자들의 인권이 부당하게 취급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로젠티노 아마도 헤이(Rosentino Amado Hei) 님은 동티모르 인권단체인 학 어쏘시에이션(HAK Assocation, http://www.yayasanhak.minihub.org) 소속 활동가입니다. 학 어쏘시에이션은 1996년 8월 양심수 변론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현재 국가 인권정책 모니터, 인권교육, 인권침해 사건 조사,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 권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