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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⑨] 우리는 어디로…

‘인권선’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는 가난한 이들

헐레벌떡 뛰어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더니 참가자분들이 여기저기 의자에 누워계셨다. 단체로 병이라도 난 건 아닌가 더럭 겁이 났는데 어제 노숙인 인권공동실천단 노숙체험이 있어서 잠을 못 잤을 뿐이라고 하셨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 우리는 미래로의 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고단할 수도 있는 여행을 앞둔 그 분들에게 잠깐 동안의 휴식이 힘이 되었으면 싶었다.


떠날 짐을 챙겨보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오지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가방을 꾸려봤다. 돈은 가져가봤자 말짱 도루묵. 낚싯대, 자전거는 살짝 옆으로 빼놓고 쌀, 침낭, 비상약, 생수, 옷가지, 랜턴 등 꼭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찾아주며 챙겼다.

오지로 떠날 때 기본으로 챙기는 것들, 일상에서도 보장되어야 할 인권 아닐까?

▲ 오지로 떠날 때 기본으로 챙기는 것들, 일상에서도 보장되어야 할 인권 아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을 들라면 잠잘 집, 먹을 음식, 입을 옷, 병원, 마실 물, 일자리, 교통수단 등이 있을 것이다. 이것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답게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주거권, 노동권, 이동권, 이런 것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에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우리의 바람을 배반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인권 수준은, 그리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같이 살고 있는 아홉 사람과 함께 미래로의 긴 여행을 떠나보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바닥에는 노란 끈으로 눈금이 그어져있다. 그 중간쯤에 파란색 끈 하나를 놓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 보장되는 선이다. 그 아래쪽은 필요해도 이용할 수가 없는 방향으로 뻗어있고 위쪽은 그 반대다.

기준선 아래 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 기준선 아래 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각자 주어진 상황카드에 맞는 위치에 자리잡고 보니 대기업회장 건빵 씨와 국회의원 태훈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준선 아래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마트 점원 승희 씨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기에, 영화감독 지거 씨는 자기 집이 없기에, 초등학생인 인영 씨는 산재로 손가락을 잃고 임금도 자주 체불되는 이주노동자 아버지를 두었기에, 췌장암 투병 중인 순자 씨는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등등…. 사연은 제각각 다르지만 기본적 인권인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등을 보장받지 못해 기준선 아래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뉴스들이 발표될 것이다. 그 가상 뉴스들은 그들의 삶을 어떤 위치로 변화시킬 것인가?

가장 먼저 날아온 소식은 국민건강보험의 폐지였다. 암투병 중인 순자 씨는 더 이상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의료급여는 유지된다고 했지만 이를 두고 미국의 민간보험회사가 한국정부를 제소할 계획이라고 하니 기초생활수급권자였던 명성 씨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이어지는 뉴스들도 암울하기만 하다. 1년 동안에만 두 배로 뛴 땅값 때문에 집값과 임대료가 폭등했다. 경제자유구역과 기업도시의 무분별한 개발정책이 진원지다. 임대주택거주자인 명성 씨와 승희 씨 가족이 거리로 나앉았다. 뒤 이은 초중고교, 대학교의 가파른 등록금 인상은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순자 씨와 승희 씨의 삶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뉴스는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이후 발표된 물 사유화로 인한 물 가격인상,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농산물 수출물량 50% 감소는 한미 FTA이후 수입에만 의존해온 농산물 가격을 폭등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기아상태로 몰아넣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기준선 아래로~ 아예 저 멀리 선 밖으로 내몰린 사람도 있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기준선 아래로~ 아예 저 멀리 선 밖으로 내몰린 사람도 있다.



뉴스들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기준선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간 반면, 기준선 위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가 아예 상한선 밖으로까지 나가버렸다. 강남에만 집이 세 채인 국회의원 태훈 씨는 집값 상승으로, 보험회사와 사립대학까지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회장인 건빵 씨는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민간의료보험 확대, 사립대 등록금 인상으로 인해 돈방석에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뉴스가 발표된 후 그 두 집단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 커다란 간격이 생겼고, 더욱 빈곤해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식의 소리가 들려나왔다.

“이집 저집 떠돌며 눈칫밥 얻어먹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쌀값까지 오르니 이젠 죽는 수밖에 없어”, “물이 비싸서 사먹을 수가 없으니 이젠 산으로 들어가서 사는 수밖에”, “임대주택에서도 살 수가 없게 됐어. 우리 가족 모두 노숙을 해야 되나?”

아득히 먼 거리. 신자유주의가 심화되어감에 따라 빈곤은 그만큼 심화, 확대되어 간다.

▲ 아득히 먼 거리. 신자유주의가 심화되어감에 따라 빈곤은 그만큼 심화, 확대되어 간다.



가상뉴스이지만 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현재의 정세로 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참가자들 모두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어진 상황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이대로 흘러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 상황에 절망하며 탄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물이 사유화되는 걸 막아야해. 누구나 깨끗한 물을 필요한 만큼 먹을 수 있어야 해.”
“그렇게 되면 물기업 사장인 나는 뭘 먹고 살아?”
“국가에서 책임지고 당신과 종업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해 줄게.”

“쌀을 수입하지 말고 우리가 먹을 쌀은 우리나라 사람이 농사짓도록 하자”
“그럼, 우리나라 부농들이 쌀값을 올리면 어떻게 해?”
“소농들을 지원하면 되잖아. 지역의 학교랑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하거나, 뭐 여러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임대주택이 많아져야 해. 그것도 몇 년 이러는 건 안되고 평생 살 수 있도록 해야 돼.”
“그래도 월세가 비싸면 못 살잖아”
“무상으로 주도록 하자.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내고.”

“비정규직은 없어져야 해. 모든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자.”
“아예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국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까?”
“싸워야지. 구호 외쳐볼까. 참, 기업 같은 거는 상속을 못하도록 해야 해.”

이러저런 주장들이 하나씩 법과 제도로 만들어질 때마다 기준선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기준선 근처로 왔다. 그러나 기준선을 향해 올라오는 과정들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준선 위의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아래로 내려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가 가난한 자의 몫을 빼앗아 쌓여진 것임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순순히 기득권을 내놓지 않을 것임을 알고 기준선 아래의 사람들이 “비정규직 철폐하라”, “민간의료 물렀거라” 등등의 구호를 외치며 그들을 압박했다.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들이 가난한 자들의 단결된 힘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갔다.

아직도 기준선 가까이 올라오지 못하는 인영 씨. 인권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 아직도 기준선 가까이 올라오지 못하는 인영 씨. 인권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준선 주위로 모여들었지만 이주노동자 아버지를 둔 인영 씨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거 모두 한국 사람들한테만 보장되는 거 아닌가요?” 인영 씨의 얘기에 모두들 마음이 짠해졌다. 이번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국적과 상관없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도가 좋아져도 사람들의 뿌리 깊은 편견과 무시가 금세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뭔가 부족하다는 인영 씨의 얘기에 누군가 “그러니까 인권교육을 열심히 해야 해.”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인영 씨도 기준선 가까이로 나올 수 있었다. 더디지만 조금씩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나눈 것이다. 나 혼자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시작에서 우리의 여행은 끝을 맺었다.


여행을 마치고

오늘 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로’였다. ‘어디로’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어디로 가고 있나,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충분히 예상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향한 ‘어디로’와,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만들어내야 하는 바로 그 ‘어디로’. 짤막한 뉴스에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혹시 낯설어서 참가자분들의 발언을 위축시키진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같이 아파하고 화내고 고민해주어서 프로그램 전체가 알차게 진행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일상은 우리가 여행의 끝에서 만난 세상과는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재벌 기업가를 향해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높이 쳐든 그 손과 손을, 다같이 잘 살자며 이주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던 그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또 모은다면 ‘정직하게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이 더 이상은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디로>는...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먼저 오지로 여행을 떠날 때 챙겨야할 짐들을 가방에 담아보면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봅니다. 그런 다음 인권이 보장되는 가상의 선을 바닥에 그어 기준으로 삼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삶이 담긴 조건카드를 나눠주고 기준선에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보도록 합니다. 진행자가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상한 가상뉴스를 읽어주면, 각자의 자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움직여봅니다. 상황이 끝나면 각자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얘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권이 보장되는 가상의 선으로 모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안하고 토론하면서 위로, 아래로 다시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