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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가두지마, 재판은 공정하게, 무죄추정의 원칙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9-11조 인신의 자유의 원칙들④

세계인권선언 11조의 상세화
11조 1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2항, 유럽인권협약 6조 2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1.b
11조 2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유럽인권협약 7조, 미주인권협약 9조,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2항
피고인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에 관한 것;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3항, 유럽인권협약 6조3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이중 시민·정치적 권리규약만 살펴보면,
모든 형사피의자는 법률에 따라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14조 2항)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를 결정함에 있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보장을 완전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a) 그에 대한 죄의 성질 및 이유에 관하여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신속하게 상세하게 통고받을 것
(b) 변호의 준비를 위하여 충분한 시간과 편의를 가질 것과 본인이 선임한 변호인과 연락을 취할 것
(c) 부당하게 지체됨이 없이 재판을 받을 것
(d) 본인의 출석하에 재판을 받으며, 또한 직접 또는 본인이 선임하는 자의 법적 조력을 통하여 변호할 것. 만약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통지를 받을 것. 사법상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및 충분한 지불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아니하고 법적 조력이 그에게 주어지도록 할 것
(e)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하거나 또는 신문받도록 할 것과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기를 위한 증인을 출석시키도록 하고 또한 신문받도록 할 것
(f)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료로 통역의 조력을 받을 것
(g)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 또는 유죄의 자백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것(14조 3항)


11조를 핵심어로 정리하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의 추정’, ‘방어의 권리’, ‘공개 심문의 권리’, ‘법률불소급의 원칙’이다. 이중 공개 심문의 권리는 10조와 관련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9-11조의 내용이 제기됐을 때 맨 앞에 왔던 원칙이다.

* 무죄추정의 원칙
인두비오프로레오(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법언과 더불어 널리 인정된 규범이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죄를 입증할 의무는 기소자측에 있으며, 피고인은 유리한 해석에 의한 이익부여를 받는다. 피고인은 그 혐의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입증될 때까지 유죄로 추정되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 원칙에 따라 대우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따라서 재판의 결과에 대해 예단하지 않는 것은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이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에 관한 일반논평 13)

* 방어의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공정한 재판의 개념은 한마디로 ‘무기의 평등’(equality of arms)이다. 피고인과 검사가 대면할 때 내재된 불리함을 절차적 평등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사건을 법원에서 호소할 완전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의는 완수돼야 할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이뤄진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목적에서다.

* 불소급의 원칙에 대한 문제제기
불소급의 원칙이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이다.

늘여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도 중한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선언 기초자들을 괴롭혔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재판이라는 전범재판을 치러냈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당시의 법률에 따라 한 것이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며 자신들의 대한 처벌이 불소급의 원칙을 어기는 불법임을 주장했다. 열강들은 훗날에도 전범재판에서 불소급의 원칙이 불법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일 것을 우려했다. 이에 미국은 “범죄” 앞에 “형사”라는 말을 넣어서 “형사범죄”에만 이 원칙이 해당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자고 했다. 2차 대전 후의 아주 예외적인 상항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해 통과된 법에는 이 조항이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러한 법률에 대한 법적·도덕적 비난을 할 수 없다는 의도의 제안이었다.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2항에서 “이조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사회에 의하여 인정된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행위시에 범죄를 구성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당해인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은 이 원칙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래의 범죄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은 자들과 유사하게 자행된다면 같은 원칙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란 의미다.

정의 구현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소위 ‘미드’(미국드라마)는 형사물 또는 재판물이 주를 이룬다. 인권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미드 덕분(?)에 사람들은 소위 미란다 원칙을 암기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는 잦은 장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인권보장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선언처럼 보인다. 잡힌 자에 대한 조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사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의 경우 형사와 검사의 이미지는 사회 안전의 수호자이고, 그들의 활동에 인권보호규정들은 거추장스러워만 보인다. 변호사는 대개 돈 많은 의뢰인의 치부를 싸고돌며 현란한 말솜씨로 해선 안되는 석방을 끌어낸다. 판사는 이런 저런 정황 속에서 관대함을 베풀거나 엄격함을 집행한다. 정작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인 사람들의 인권은 이 무대에서 별 의미가 없다.

드라마를 떠나 현실로 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이냐’, ‘예외적 침해사례를 부각시키며 공익을 사수하는 검사나 경찰관을 인권을 침해하는 부류로 찍어놓고 손발을 묶으려 하느냐’, ‘툭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탓하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깍아 먹으려 들지 말아라’, 심하게는 ‘흉악범에게 무슨 인권이냐? 사람도 아닌 것들을 왜 보호해주나?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니 짐승에게 인권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공격이 9-11조의 권리에 가해진다.

범죄자에 대한 보복이 과연 피해자의 인권과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가? 피해자의 복수심을 국가가 대신 보복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국가인가? 정의는 회복·구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의로운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는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분노 속에서 잡아먹히기 쉬운 이런 목소리들이 선언 9-11조의 기초를 이룬다.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죄를 지었어도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주는 것, 처벌보다는 잘못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 등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제도들이 아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제도이고, 경찰과 사법부 등 권력 집단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이런 기본적인 인권 제도의 주인이고 수혜자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에 편승해 이런 인권제도에 함부로 손을 대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키겠다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 극약처방을 외치는 것으로 정작 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빠져나가는 구실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극단의 처벌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끝)

덧붙임

*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