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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세계인권선언, 그 의미와 현재 ⑦ 제 9·10·11 조

제멋대로 잡아가지 마라!


[ 제9조 : 아무도 자의적인 체포, 구금 또는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 ]

‘자의적인 체포·구금·추방의 금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제3조 ‘신체적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보완하는 조항이라 할 수 있다.

9조에서 ‘자의적(arbitrary)’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이한 의견들이 존재해 왔다. 단순히 ‘불법적’이라는 의미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법의 외피를 쓴 권력의 남용까지 고려할 때 ‘정의롭지 못한’이란 해석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인간의 신체를 구속하는 행위’는 법에 따라야 할 뿐 아니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사전영장주의 원칙, 구속영장실질심사제, 구속적부심제 등을 통해 ‘자의적인’ 신체의 구속을 방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비춰볼 때 우리의 형사절차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잡아넣고 보자’는 수사기관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의해 남용되고 있는 ‘긴급체포’가 그 중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법관의 영장 없이 사람을 체포한 뒤 48시간 이내에 영장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뒤집어보면 48시간은 잡아둘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긴급체포 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의 경우엔 체포 뒤 3-5시간 내에 체포영장을 발부토록 하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긴급체포제도는 자의적 구금을 금하고 있는 세계인권선언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98년 경찰청 국정감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긴급 체포된 12만 7천437명 가운데 43.4%가 훈방되거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다. 이는 사형·무기 또는 장기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을 경우 행하게 돼 있는 긴급체포의 요건을 무시한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점은 영장실질심사 제도에서도 드러난다. 97년 12월 ‘개악’된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신청하고 판사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영장실질심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범죄혐의로 체포·구금된 자는 신속히 판사 앞에 인치돼 구금의 적법성을 심사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조약 9조3항에 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자의적 체포·구금에 관한 비보는 곳곳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 제10조 : 모든 인간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의 혐의에 관하여 재판을 받게 될 때, 독립되고 편견없는 법정에서 공정하고도 공적인 심문을 완전히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갖는다. ]

[ 제11조 : 1. 형사상의 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변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보장들이 행사된 공적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판정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갖는다. 2. 아무도 그것이 범해질 당시에 국내법 또는 국제법상으로 형사범죄를 구성하지 않았던 행위나 태만으로 인해 형사범으로서의 유죄의 선고를 받지 아니한다. 또한 형사범죄가 행해졌을 당시의 적용가능한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 아니한다. ]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물론 진실발견을 위해서도 ‘공정한’ 재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정한’ 재판은 ‘독립되고 편견없는’ 법정, 공적인 심문, 변론권 등을 전제로 한다. 제10조는 이러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은 이밖에도 여러 다른 요소들을 요구한다. 11조는 이같은 점에서 10조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여기서는 자신을 방어할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법의 소급적용을 금지하는 원칙,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 등 4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후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14조와 15조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한편 “모든 피의자는 법률에 따라 유죄로 판정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 헌법 27조 4항에도 반영돼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는 전혀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결재소자가 법정에 죄수복을 입고 출정하는 것에서부터 ‘무죄추정의 원칙’은 실종된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가 기결수 취급받는 것은 그것 뿐이 아니다. 여기엔 ‘구속되면 곧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후진적 인식도 한 몫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