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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구_창] 발전권의 이론과 실천에 대하여 (2) (Arjun Sengupta, Human Rights Quarterly Vol. 24, 2002)

이 논문은 1998년부터 6년여 발전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로 활동(현재는 인권과 극빈에 관한 독립전문가)한 아르준 센굽타(Arjun Sengupta) 씨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들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최근 개발과 인권간의 문제, 발전권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인권오름>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한다.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1.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사회권 내지 발전권은 자연권이 아니므로 인권이 아니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이들 권리를 반대하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자연권이란 사회적 협력의 산물로서가 아닌 인간에게 내재된 권리로서, 보편적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갖는 것이다. 이런 인식 체계 속에서 인권은 오직 개인의 권리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권리들(생명권,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소극적 자유로서 이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살인 등의 행위를 금지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권은 적극적 자유와 결합되는 것으로서 국가가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이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권이 아니며 인권이 아니다. 발전권은 집단적 권리와 적극적인 경제적 권리와 결부되기 때문에 인권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런 주장들은 문헌 속에서 상당히 거부돼왔다. 세계인권선언의 많은 요소들은 자연권의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경제·사회적 권리의 요소들을 상당히 가진 국제법의 다원주의적 기초위에 굳게 서있다. 또한 개인의 인격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권리를 이행할 의무와 의무의 담지자가 그것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기만 한다면, 논리적으로도 집단의 권리가 개인의 인권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더욱이 시민·정치적 권리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둘 다가 소극적인(방지) 행위뿐만 아니라 적극적인(증진 또는 보호)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단지 시민·정치적 권리만 인권이고 경제·사회적 권리와 집단적 권리는 인권이 아니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인권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행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와 관계된 인민들이다.

2. 사법심사가능성

발전권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사법심사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즉, 법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 권리는 인권으로 간주될 수 없고 기껏해야 사회적 열망이나 목표의 제시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재단을 통해 옷을 얻는 것처럼 권리란 입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인권과 법적 권리를 혼동하고 있다. 인권은 법에 선행하는 것이고 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존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 입법화된 법적 권리가 되는 것의 유효성을 흐리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법적 장치를 만들고 채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행될 수 없으면 인권으로 호소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것이다. 법정을 통하기보다는 의무 이행의 대안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익하고 필수적일 때가 있다.

양대 인권규약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정치적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법적 효력을 부과한다. 더욱이 노동권과 같은 경제·사회적 권리는 이미 국내법으로 보호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의 절차로나 국내 법원에서나 사법심사가 가능하다.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국제 규약 내지 조약으로 규범화됐고, 상당수 국가들이 비준을 했지만, 발전권 선언의 지위는 국제조약과는 다르며 따라서 법률 체제에서 이행될 수는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발전권을 실현할 국가들(그리고 개인 및 국제사회)의 책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발전권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감시와 감독의 메커니즘이 필수적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국제조약기구 만큼의 법적 지위는 아닐지라도 사회적 압력, 민주적 설득, 시민사회의 헌신 등을 통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3. 이행 감시

많은 권리들의 문제에서 (법적) 강제가능성보다는 이행가능성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권리들에 대한 입법을 애쓰기보다는 권리의 실현을 촉진할 수 있는 행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럴 경우에 필요한 것은 사법재판소가 아니라 감시 기구나 분쟁 해결기관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민주적 제도, 민간단체, 공공 소송 기관 등은 권리에 기반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감시기구 또는 협의 기구를 만드는 것은 국제 사회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국제적 의무의 사법심사가능성은 국내적 의무의 이행과는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물론 국제재판소를 포함하여 국제중재를 위한 다양한 기구들이 있다. 무역과 금융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절차들이 수립돼 있다. 그러나 인권에는 이런 기구들이 유용하지 않다. 인권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국제기구와 관련 정부들이 함께 모여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개토론의 장이다. 여론의 민주적 압력을 조건으로 하는 투명한 협의 절차야말로 외부의 어떤 사법부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4. 집단적 권리 대 개인적 권리

발전권에 대한 끈질긴 반대 중에는 집단권에 대한 비판이 있다. 3세계 지도자와 1세계의 비평가들이 발전을 위해 국가들과 민족들의 집단적 권리로서 발전권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집단권을 적절하게 정의하고 그 자체로서 개인권에 적대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야 한다. 분명 집단권을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 만들어진 법적·제도적인 협약과 규약들이 있다. ‘유엔 발전권선언’ 자체가 1조에서 집단적인 인민의 권리를 인정했다. 1조에서는 모든 인간과 인민들은 발전권과 자결권을 갖는다고 했고, 여기에는 “천연자원과 부에 관한 완전한 주권을 위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행사”가 포함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집단권은 개인의 권리에 적대적이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다. 발전권 선언 2조에서는 “인간은 발전의 중심주체”이며 “발전권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수익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3세계의 입장에서 집단권을 가장 분명하게 옹호하는 이들 중 하나인 조지 아비샵(Georges Abi-Saab) 교수는 집단권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정의를 제시한다. 첫째, 개인들의 총합, 권리들의 총합이라는 이중의 총합으로서의 발전권이다. 둘째, (개인의 인권을 총합하는 과정 없이) 집단권을 집단의 관점에서의 권리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발전권은 자결권의 경제적 차원 또는 자결권에 필적하는 권리로 고려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의 모두 개인의 권리 위에 서 있다. 자결권은 분명 국가들에게 “천연 자원과 부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주지만, 이 주권은 모든 개인들을 위해 행사돼야만 한다. 개인권의 경우에는 권리의 소유자가 또한 권리행사의 수익자이다. 자결권 등 집단권의 경우에는 권리 소유자가 국가나 민족처럼 집단적일 수 있으나 그 권리 행사의 수익자는 개인이어야 한다. 물론 특정 개인의 권리가 집단의 권리와 갈등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개인들의 권리 또한 특정 상황에서 갈등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명성 있는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을 이해하려면 개인과 집단권이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에 개인의 권리는 집단적 환경 속에서라야 충족될 수 있고, 국가나 민족의 발전권은 개인들의 권리 이행과 발전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5. 자원의 제약

발전권과 관련된 문제는 재정적, 물리적, 제도적 자원의 문제이다. 시민·정치적 권리는 법으로 즉각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견해가 일찍이 있었다. 반면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자원이 소비되는 장기간의 적극적인 조치가 요구되고, 자원은 언제나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들 권리의 실현은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제한된 시간 내에 완전히 실현되고 보장될 수 없는 권리는 인권으로 간주될 수가 없다.

권리가 있다는 것은 자원의 가용성 또는 권리의 실현방법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일단 인권으로 인정되면, 그들 권리는 당사국의 객관적 조건에 따라 실현의 방도를 결정하기 위한 지표가 돼야 한다.

국제인권규범들은 자원의 제약성이 중요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권규약과 발전권 선언에서는 “가용자원의 최대한도까지”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점진적”의 의미는 정부들이 권리의 실현 보장을 위한 노력을 막연히 무기한으로 미루어도 된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국가는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갖는다. 점진적 실현의 의무는 자원을 증가시키는 노력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인정된 권리가 실현되기에 필수적인 사회적 자원의 발전을 통해 효과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점진적 성취의 의무는 자원의 증가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가용자원의 효과적 이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가용자원이란 한 국가 내의 자원만이 아니라 국제협력과 지원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모두를 의미한다. 권리의 실현을 위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가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용자원에 대한 평등하고 효과적인 이용과 접근에 유념해야 한다.

이 모든 접근법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모든 국가들이 의무 이행을 위해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제인권조약 감시기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러한 최상의 노력이 기울여졌느냐에 관한 검토와 의견표명이다. 많은 자원의 지출 없이도 즉각적으로 취해질 수 있는 조치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용가능한 서비스에 대한 차별 금지와 입법조치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원의 지출을 필요로 하는 권리들의 실현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우선순위의 문제는 할당제로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취해야 할 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돼선 안된다. 이들 권리의 실현에 요구되는 대부분의 활동은 많은 재정적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재정적 또는 물리적 기반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는 행정적·조직적 자원의 투입을 더욱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에서 자원의 제약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 자원을 더 나은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원의 공급을 늘리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원의 제약성은 국가마다 다르다. 인권규범에서 주장되는 대로 모든 권리가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갖는 것이라면, 국가마다 다른 자원의 제약성의 성격이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가장 구속력 있는 의무이고 최소의 지출이 요구되는 그런 권리들이 먼저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궁극적 목적인 사회변화를 초래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예를 들어 빈곤 아동에게 초등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외딴 촌락에 사는 아동이건 도시 지역에 사는 아동이건 간에 똑같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도로와 교통시설이 제한된 국가에서는 외딴 지역의 아동이 무시될 수 있다. 전국의 빈곤 가정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에 동등한 가치가 부여된다할지라도, 사회개혁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시골지역의 여자아이는 계속적으로 굶주릴 수 있다.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 뒤편에 쳐져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해야 하고, 그들 편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한다.

자원의 제약성이 심각한 경우에는 권리 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선순위를 둔다고 해서 모든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상호연관성의 원칙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다른 어떤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특정 권리가 침해될 수는 없다. 권리간의 거래는 있을 수 없고, 어떤 권리에 대한 침해도 다른 권리 실현이 증진된 것으로 보상될 수는 없다.

모든 권리가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으로 발전권을 이해할 때, ‘우선순위’가 의미하는 바는 어떤 권리도 침해하거나 후퇴시키지 않으면서 일부 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더 일찍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우선성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헨리 슈(Henry Shue)는 “기본적” 권리를 얘기했다. “기본적” 권리란 그 권리의 향유가 모든 다른 권리의 향유에 필수적인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어떤 권리가 진정으로 기본적 권리라면, 그 권리를 희생함으로써 다른 어떤 권리를 누리겠다는 시도는 그야말로 자멸적인 논리다.

이에 대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최소한의 핵심의무”를 언급했다. “최소한의 핵심의무”란 각 권리의 최소한의 필수적 수준의 충족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수적인 식량, 필수적인 기초 의료, 기본적인 주거,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교육을 박탈당한 사람의 숫자가 상당한 국가는 사회권 규약의 의무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의 제약이 무엇이건 간에, 이들 최소 의무는 충족돼야 한다. “최소한의 핵심 의무” 또는 “기본적 권리”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권의 구조 속에서의 공적 토론을 통해서이다. 참여적인 협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공공의 선택에 기반해야 한다.

6.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발전의 과정

발전권은 포괄적인 권리 또는 일련의 권리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에 대한 권리이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이다. 과정은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을 포함한다.

발전권에서 ‘과정’과 ‘과정의 결과’ 둘 다가 인권이지만 과정이 그 결과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과정은 과정의 결과물과 구분돼야 한다. 비록 결과로서 권리들이 충분히 실현될 수 없거나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만 실현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과정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높은 개연성이 있고, 권리로서의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일 수 있다면 과정은 수립될 수 있고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과정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은 모든 권리들의 매개체로 묘사할 수 있다. 발전권 자체가 인권인 것처럼 발전권의 각 요소는 인권이다. 이들 권리들은 인권 기준을 따라 이행돼야 한다. 이 모든 요소는 특정 시점에서나 일정 시간이 경과해서나 상호의존적이다. 예를 들어 건강권의 실현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식량권이나 주거권, 개인의 안전, 정보의 자유 실현 수준에 달려있다.

모든 인권은 침해할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다른 권리보다 우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 권리의 증진이 다른 권리의 악화를 상쇄시킬 수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민·정치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증진할 수 있고, 기본적인 인권기준을 구성하는 평등, 비차별, 참여, 책임성과 투명성의 원칙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기준을 존중하는 가운데 수행된 프로그램이어야 발전권의 주창 목적으로서의 발전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자원의 제약이 심각한 상황일 때 위에서 말한 조건은 엄격한 것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어떤 권리도 침해하지 않고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을 희생시킨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일정 권리의 향유를 악화시킬 수 있다. 부정적 효과를 중화시킬 수 있는 보충적인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젝트라는 것이 발전권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상당수 사람들의 이익을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인간 사이에서 이익을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이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고, 보상은 그러한 보상이 있은 후에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더 이상 간주하지 않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보상은 꼭 금전일 필요는 없으며 특별한 프로그램의 채택을 포함할 수 있다. 보상의 결정과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집행 전에 관련 당사자들의 감수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속에서 적절하고, 투명하며, 합의적인 제도가 있어야 한다. 즉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잘 수립된 참여적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7. 과정으로서의 발전권의 부가가치

이미 경제·사회적 권리 등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리를 새삼 발전권으로 제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있는가? 발전권을 과정으로서 바라볼 때 분명한 부가가치가 있다. 각 권리를 단지 개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과가 특정 시점에서나 시간이 경과된 후에나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함께 실현하는 것이다. 발전권의 실현에 증진이 있었다는 것은 다른 어떤 권리를 침해하거나 악화시키지 않고 어떤 권리가 증진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권리의 실현은 모든 자원을 사용하는 포괄적인 발전 프로그램에 기반하는 것이므로, 국내총생산(GDP)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평등한 기술과 제도의 성장을 발전권의 일환으로 계획하고 이행해야 한다. 이러한 자원들의 성장은 불평등의 감소 또는 평등을 보장하는 속에서 인권의 기준을 따라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발전 프로그램 속에서의 발전권은 경제의 생산과 분배 구조에서의 변화를 포함하는 것이며,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국제협력을 필요로 한다.

발전의 과정은 단계적인 목표의 실현을 장기간 지속성을 갖고 유지하는 프로그램 또는 정책 계획들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 대한 권리는 그 과정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와는 다르다. 하지만 결과로서 나타날 모든 권리 실현에 높은 개연성을 주는 것은 과정이다. 따라서 과정 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은 권리에 대한 권리라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권으로서 인정된 모든 권리를 실현하는 것의 유효성과 성취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없다 할지라도, 이들 권리의 실현을 가져올 수 있는 개연성 높은 발전과정으로서 발전권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