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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잊혀진 유럽인, 잊혀진 권리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유엔인권최고대표실 유럽 사무소, 2010)

꽃샘추위가 드세다. 겨울과 여름 사이에 불청객이 끼어든 것처럼 봄의 변덕이 심하다. 심술궂은 봄의 거리에서 잔뜩 움츠리고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의 등이 시려 보인다. 그런데 해마다 이 맘 때면 유독 더 많은 시간을 추운 거리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일 년 내내 농성장이나 집회장을 떠나지 않는 일이 드물지만, 이맘때면 그들이 더욱 분주해진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향해가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이맘때면 차별에 맞서다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갖고, 영화제를 열고, 이런 저런 현안에 대한 시위와 토론회로 빽빽한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장애인의 날’이라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장애체험 행사를 하고 장애아동을 초청하여 사진 찍는 행사를 거부하면서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이 발걸음에는 부양의무자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보장 등 해마다 변함없는 사안들이 동반한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사회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2000년대 초반에 장애인 이동권이란 말이 관심을 끌었다면 최근 몇 년 간 주목을 끄는 말이 ‘탈 시설’이다. 올해 일정에는 ‘전국 탈시설 욕구조사 발표 및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도 잡혀있다.

‘탈 시설’이란, 말 그대로 시설에서 벗어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날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은 ‘아유,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런데서 책임안지면 누가 감당하라고? 그 사람들은 거기 아니면 어디 살 데가 있다고?’라며 손부터 내저었다. 그런 손사래가 어느 날부터인가 부끄럽게 느껴지더니, ‘네가 공모 했잖아’라는 지적을 정면으로 받게 됐다.

“26년 전 그날,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한다”는 제목의 토론회가 최근 있었다. 9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 씨는 자신과 가족이 그곳에서 겪은 참상에 대한 기억을 담아 <살아남은 아이>란 책을 작년 말에 냈다. 그 책을 읽는 일은 참 고통스러웠다.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 행상을 한다거나 술에 취했다거나 장애가 있다는 둥의 이유로 끌려가 강제노역과 매질, 성폭행,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다.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런 탓에 죽었다. 1987년에 사건이 1차로 폭로됐지만 사회정화를 명목으로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비호했던 정권은 시설장을 싸고돌았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들은 건재하다. 반면에 26년이 지났지만 유린당한 삶의 상처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살이었던 아이가 30대 중반이 되어 재차 그 사건을 고발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리라, 지나가리라’ 가해자들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모자로 지목된 보통 사람들은 과연 이번에도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있을까?

형제복지원 사건은 ‘복지시설’이라기보다는 ‘강제수용소’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소위 ‘부랑아 단속, 사회정화’라는 이름하에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국가범죄’이지, 한 시설 운영자의 비리차원에 그치는 단순 사건이 아니다. 일반적인 복지시설의 문제와는 가까우면서 먼 듯한데, 토론회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을 공통으로 불러 모은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어떤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찍어서 사회로부터 격리해도 되고, 가늠이 안 되는 시간을(때론 평생을) 시설이란 곳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느꼈다. 그런 분노와 저항에 대해 “그곳이 ‘문제’ 시설이니까 그랬지, 다른 시설은 괜찮아요.”라고 대응하는 것은 턱없는 일일 것이다. <‘문제’시설이 아닌 ‘시설’문제를 말한다>는 토론회의 부제목이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일 게다.

이날 토론회의 한 발제자도 지적하기를 그간 우리는 한국 사회의 역사를 독재 정권 대 민주화 운동세력의 관계에만 치중해서 이해했고, 소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진상규명하고 피해를 보상한다는 ‘과거청산’도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만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허름한 차림이란 이유로, 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술 마시고 길에서 잠을 잔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곳을 바깥사람들은 ‘복지 시설’이라 불렀지만 그곳에서 강제로 살고 노역한 사람들에게는 ‘강제 수용소’였다. 민주화운동을 억압한 대통령은 그 시설의 운영자를 골칫덩어리들을 깨끗이 청소해준 은인으로 여겼다. 그래서 운영자는 그 시설 안에서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시설 수용자들을 군대식 규율로 다스렸다.

그런데 그 일은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시설 운영자의 권력은 세습되어 건재하고, 그를 비호하고 부추겼던 국가권력의 범죄는 규명되지도 처벌되지도 않았다. 그들이 챙긴 엄청난 경제적 이익도 여전히 그들의 곳간 안에 있다. 최근 부추겨지는 경범죄 단속, 법과 질서의 강조, 위생과 안전에 대한 열망은 사회 정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안보이게 치워지길 바라는 공모자들의 욕망을 언제든지 현실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토론회만큼이나 길고 진지했던 뒤풀이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잊혀진 사람들’이란 표현이 과연 맞을까?” ‘잊혀진’이란 말 자체가 기억이나 생각에서 사라진다는 말인데, 노래 제목처럼 ‘잊혀진 계절’은 가능해도 사람에 대해서 그런 말을 써도 될까라는 물음이었다. 잊혀진 사람이란 말은 잊힘을 당한 사람에게 문제를 돌리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잊으려는 사람에 대한 물음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문제는 현재형이다.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잊어버린 책임자와 공모자가 있고, 살아있음에도 없는 듯 취급받는 잊혀진 삶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6년 전 있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 토론회 모습

▲ 26년 전 있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 토론회 모습


국제인권기준에서도 가장 진척이 늦은 부분이 시설 수용자의 인권에 대한 부분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유엔인권최고대표실 유럽사무소가 낸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유엔과 유럽연합의 법과 보고서, 가이드라인 등을 촘촘히 인용하고 있으나, 분량 관계상 아주 일부만 발췌했다. 이 보고서 자체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시설 수용자와 관련된 인권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준에 대한 설명의 상당부분을 감옥 등 구금시설에 갇힌 사람과 관련된 인권기준에서 빌려오고 있다. 그나마 최근 구멍 뚫린 부분을 메우고 있는 것이 2006년에 제정된 장애인권리협약이다.

보고서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시설 수용은 무조건 안된다가 아니라, ‘장애인이니까’, ‘위험해보이니까’ 응당 시설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판단과 법률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동등한 기초위에서 자유의 제한을 결정하는 법적 근거가 중립적으로 정의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설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를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만 바꾼다고 해서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도 않다. 지역사회 속에 살아도 고립과 배제를 피할 수 없다면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보건, 주거, 고용 등 전반적인 영역을 아우르는 전략 개발이 요구된다고 했다. ‘자립생활’이라 하면 ‘네가 어떻게 네 힘으로 설 수 있어?’라고 반문하는데, 어떤 인간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장애인권활동가는 ‘자립생활’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연립생활’이 맞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 자신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원하는 삶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삶이지,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결정에 지배되는 삶이 아니다. 자립이란 그런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삶이지 타인의 영향을 차단하는 삶이 아니다. 자립하고 싶은 인간으로서 나는 누군가에 대한 단속과 수용을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공모자가 아니라 더 많은 교류를 함께하는 동료여야 할 것이다.

잊혀진 유럽인, 잊혀진 권리

I. 도입
이 보고서는 오늘날 가장 중대한 인권의 도전 중 하나를 조명한다. 즉, 많은 아동, 장애인, 노인들이 장기간 시설에 수용되는 일이 계속되며 흔히 평생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중요한 목적은 첫째, 시설 생활하는 아동, 장애인, 노인의 상황에 주목하고, 둘째, 시설 보호의 대안으로 지역사회에 기반한 보호를 발전시킬 정부의 책임성에 유념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설보호에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의 전환을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이행하는 동시에, 그러한 전환 과정 중에 여전히 시설 보호 속에 남겨진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한다.

이 보고서에서 사용하는 ‘시설 보호’란 용어의 의미는 ‘전통적인’ 장기간 시설에서의 보호 제공으로서, 다시 말해서 거주자가 자신의 생활 전반과 일상의 결정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갖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로 인해 흔히 과다한 수의 사람들을 수용하지만, 건물의 크기는 시설화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숱한 원인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원인들 중에는 엄격한 반복적인 일과가 있다. 가령 개인의 선호나 욕구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먹고 활동하는 것에 대한 고정된 시간표이다.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돌봄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의 제공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요구된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대안들이 느리게 진전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준마련은 중요하다. 따라서 시설 보호 속에 남겨진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튼튼한 보호수단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추가로, 시설 보호의 대안으로서 추진되는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의 범주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의 돌봄을 원하는 개인들을 위한 ‘거주 형태의 돌봄’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 거주형태가 거주자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터키에 걸쳐 장기간 거주 시설에서 살아가는 아동과 장애를 가진 성인이 약 1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나 국제적으로나 시설 수용과 그런 시설들의 조건은 주요한 인권 문제를 야기하는 행위로서 인정된다. 장기간 거주 시설의 상황에 대해 많은 보고서들은 기준이하의 생활조건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시설수용 그 자체가 모든 연령대의 시설 거주자들에게 심각하고 장기적인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특히 아동에게 해롭다.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시설 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인권침해 때문만은 아니다. 시설 수용 그 자체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며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며, 특히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참여할 권리에 대해 그러하다.

II. 핵심적인 인권 원칙
아동, 노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관련된 인권 기준에 공통적인 핵심원칙들을 조명한다.

A. 평등과 비차별
서비스, 교육, 고용, 사회보장, 건강보호, 가족생활, 인격적 통합(personal integrity; 자신의 몸, 정서, 정신이 통합된 전인격체로 인정받을 권리), 문화, 여가와 운동, 종교 등에 대한 접근에 관한 핵심원칙이 평등이다. 차별로부터의 보호는 모든 중요한 국제조약에 포함된 기본권이다. 가령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성은 장애인권리협약 5조 4항, “장애인의 사실상의 평등을 촉진하거나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들은 이 협약의 조항 하에서 차별로 간주되지 않는다.”에 반영돼 있다.

B. 가족의 중요성
많은 인권조약들은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고 있다. 가령 수정유럽사회헌장 16조(사회적, 법적, 경제적 보호에 대한 가족의 권리)는 “가족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을 보장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C. 자율성의 증진
장애인권리협약은 자율성을 일반원칙들 중에서 맨 처음에 꼽고 있다. 즉, 3조 (a)항의 “개인의 천부적인 존엄성,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자율, 자립에 대한 존중”이다. ‘법 앞의 평등’에 관한 협약 12조는 자율성과 강하게 연계되어있다. 국가는 장애인이 모든 영역에서 법 앞에서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동등한 기초 위에서 법적 능력을 향유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법적 능력 행사와 관련한 모든 조치들이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어 장치를 제공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의 의사가 청취되고 진지하게 고려될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자기결정권과 자율성 개념이 사적생활과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에 본질적이라고 판단했다.

D. 최소 제한적인 대안
비례성 원칙은 인권법의 핵심 개념이다. 가령,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31(2004년)은 “국가는 권리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질 때 제한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정당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비례적인 수단만을 위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규약 상 권리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식으로 제한이 적용되거나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권리에 대한 간섭은 의도한 적법한 목적을 성취하기에 필수적인 것 이상이어서는 안 되며, 자의적이거나 부당해서는 안 된다.

E. 참여
법과 정책 개발에서 참여의 중요성은 유엔이나 유럽의회의 인권 장치 모두에서 강조된다. 정치적이며 공적인 생활에 대한 참여의 권리에 덧붙여 장애인권리협약 4조 3항은 장애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입법, 정책 개발과 이행에서 “장애인과 밀접하게 협의하고 장애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노인은 서비스를 설계하고 이행하고 평가하는 과정 전반에 충분히 직접적으로 연루돼야 한다. 가족, 돌봄 제공자, 친구들 또한 적합하다면 이 과정에 연루돼야 한다.”(노년에 관한 마드리드 행동계획 5조)

III. 공식적인 돌봄 장소 유치: 개입의 기초
시설 입소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인권의 측면들을 살펴본다.

<자유에 대한 권리>
사람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는 결정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인권협약 5조에 의거, 여타의 덜 가혹한 조치들이 고려되었으나 불충분한 것으로 입증된 경우에만 그런 결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간주한다. 어떤 사람이 억류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유럽인권재판소는 상당 범위의 요인들을 고려하는데 “문제시되는 조치의 유형, 기간, 효과와 이행방식”이 포함된다. 본인이 시설 수용을 거부하지 않거나 여러 사유로 시설에서 나올 것을 허용 받을 수 있다할지라도, 개인들은 자유를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사법적, 행정적, 또는 기타 당국이 내린 명령이 없었다 할지라도, 사람이 사실상의 억류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점이 중요한 까닭은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간주되지 않는다면, 어떤 보호 장치도 적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자유의 박탈
역량이 부족하다고 간주되는 사람을 대신하여 보호자(후견인)가 내린 결정을 허용하는 국가들에서는, 당사자의 동의가 없어도 결정을 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런 관행은 정신병원 강제 수용 등 심각한 인권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대해 유엔사무총장의 보고서는 “보호자 개념이 어떠한 절차적 보호도 없이, 지적‧정신적 장애인의 법적 역량을 박탈하는데 부적절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법 앞에서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재확인하며, 국가가 ‘장애인의 법적 능력 향유를 인정하고 그들의 법적 능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은 우선적으로 보호자에 관한 법을 재검토하고 개혁할 것을 권고했다.

시설 수용이 정당화되는 환경을 명확히 하기
장애인권리협약이 발효되기 전에는 “정신 장애가 있다는 것이 자유박탈과 시설 수용의 적법한 근거로 대표”된 반면에, 협약은 “정신적 또는 지적인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차별적인 것으로 금지함으로써 이런 접근법에서 신속히 벗어났다.” 불법적인 시설 수용에는 “정신적 또는 지적장애와 여타의 요소들(가령 위험성, 돌봄, 치료)을 결합시켜서 자유 박탈의 근거로 삼는 것”이 포함된다. 이에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동의, 그리고 설명 후 동의 없이 장애를 근거로 장애인의 시설수용을 승인하는” 입법은 폐지돼야한다고 권고한다. 여기에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동의, 설명 후 동의 없이 보호와 치료를 이유로 장애인의 시설수용을 승인하는 규정”의 폐지도 포함된다. “명백하거나 진단이 확정된 정신병에 대한 법률과 연계된 보호, 치료, 공공의 안전 등을 근거로 한 모든 사례에서, 본인에게나 혹은 타인에게 위험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로 장애인을 예방 구금하는 규정”의 폐지도 포함된다. 이에 대해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은 앞서 지적한 점들이 “장애인의 시설수용이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자유의 제한을 결정하는 법적 근거가 장애와 연관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동등한 기초 위에서 중립적으로 정의돼야만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시설 수용의 적합성에 대한 심사>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에게는 수용의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정신질환으로 수용된 사람과 관련해서 유럽인권협약은 독립적인 사법당국에 의한 정기적인 적법성 심사를 요구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된 모든 사례에 있어서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한 정기적인 심사의 수행을 요구한다. 대안 양육에 대한 지침에 따르면, “권한 있는 당국을 통해 아동의 안전, 복지, 발달에 대한 감독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수용의 지속, 연장 또는 종결과 관련된 절차에서 법적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 정신병으로 비자발적으로 수용되거나 비자발적인 치료를 받게 된 사람에 대하여, 당사국은 그러한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할 권리(합리적인 간격을 두고 법원에 의해 조치의 적법성을 심사받을 수 있는 권리)가 당사자나 옹호자 또는 대리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분명하게 명시된 것은 장애인권리협약 19조이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포함될 것”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사회로부터의 고립이나 분리를 방지”하는 것이기도 해야 한다.

현재 시설에서 살아가는 아동과 장애인, 노인을 사회적으로 포함시키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지역사회에 기반한 대안들을 개발한다는 목표가 분명한 전략을 통해 시설의 폐쇄를 촉진하는 것이다. 시설에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돌봄으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특별전문가집단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지역사회에서의 서비스 개발과 장기수용 시설의 폐쇄를 위한 명확한 시간표와 예산이 동반된 전략과 행동계획을 채택할 것”과 “그런 행동 계획들의 이행을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지표”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시설보호로부터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의 전환 그 자체만으론 아동, 장애인,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살며 참여할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기에 충분치 않다. 지역사회통합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 보건, 주거, 고용의 영역을 포괄하는 국가전략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자립 생활을 법적 권리로 수립하여 당국과 서비스 제공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입법이 돼야한다. 또한 그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 소송을 허용해야 한다.

결론
수인이나 여타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시설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인권을 구체적으로 다룬 기준들은 매우 적다. 정신 요양 시설이나 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에 관련된 지침은 개발돼왔지만, 시설 생활인의 돌봄과 처우에 관한 분명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특히 노인에 대한 기준은 아주 희소하다.

기존 기준의 문제점을 고치고 새로운 기준을 개발함에 있어서 추구할 것은 돌봄의 질을 보장하는 것 뿐 아니라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들의 삶의 질을 강화하고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연루되는 것을 또한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한 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들(아동을 포함한)과 그들을 대리하는 기관들을 연루시켜야 가능하다. 국가는 우선순위로서, 아동과 장애인과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포함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장애인 권리협약은 이 일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