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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인가

지난 6월 18일 코스피가 역사상 처음으로 9,000포인트를 돌파했다. ‘반도체 대형주 쏠림’에 따른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긴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3,000에도 미치지 못했던 코스피 지수가 출범 1년 만에 3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AI·반도체 산업 호황을 바탕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을 2.6%보다 상향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성장과 성취가 이루어진 것 같은 들뜬 분위기가 사회를 감돌고 있다. 

주식 시장으로 몰린 돈, 어디로 흘러갔나

코스피 9000, 정부는 이를 단순한 증시 호황이 아니라 ‘진짜 성장’ 신호로 읽는다.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과 산업을 성장시키고, 그 성과를 국민 모두의 자산으로 연결하겠다는 게 정부의 ‘성장 기조’다. "국민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하겠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구상에서 주식을 비롯한 자본시장은 더 이상 단순한 금융시장이 아니다. 자산의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자를 ‘생산적 투자‘로 유도하여 기업에 투자자금을 공급하고, 그 결과 기업가치 상승과 국민의 자산 증가 등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정책의 핵심 인프라다. 그렇다면 코스피 9,000은 정말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결과일까.

우선 이번 상승을 이끈 것은 정부 정책이라기보다 미국발 AI산업 투자 확대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다. 코스피가 9000을 돌파한 날 시가총액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소수의 반도체 기업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시장 전체의 성장이 아닌 반도체가 지수를 끌어올렸음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주식 시장이 실제로 생산적 금융의 역할을 했느냐다. 생산적 금융이라면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이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일자리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올해 1분기 주식 발행을 통한 기업 자금조달은 8,899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절반으로 감소했고, 주로 중소 혁신기업이 모인 코스닥은 여전히 과거 최고치에 크게 못 미친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동안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결국 9,000이라는 숫자는 기업에 새로운 자본이 투자된 결과라기보다 기존 주식의 가격이 오른 결과다. 외국 기관투자자들이 올해 상반기 코스피가 2배, 3배 상승할 때 주식을 매도해 149조 원을 손에 쥐고 시장을 떠난 자리를 고스란히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받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는 시장을 진정시키기보다 주식 시장을 더욱 부채질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엄격하게 규제했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라는 고위험, 고배율 상품까지 출시해 시장 규모를 키우려고 한 것이다. 이 상품은 그렇지 않아도 ‘반도체 대형주 쏠림’이 심각한 코스피의 경향을 더욱 강화해 주식시장은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는 ‘도박장’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대폭 확대했다. 증시 급등으로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넘어 국민연금이 대규모 매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만으로도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현실 아래, 주식 시장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정부는 주식 상승으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시점이 늦춰졌다며 자화자찬하지만 국민들에게 연금을 주식으로 지급할 게 아닌 이상, 주가지수 유지를 위해 매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문제적이다. 게다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연기금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코스피에 붙들린 꼴이다. 이렇듯 국가 정책과 공적 연기금, 금융시스템이 주식 시장에 깊이 결합할수록 시장 변동의 위험은 투자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된다. 

주식 시장이 성장할수록 커지는 불평등

지금 자본시장 정책은 '생산적 금융'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반도체 호황과 정부의 시장 활성화 정책 속에서 더 많은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지만, 그 자금이 기업의 생산적 투자나 고용 확대로 이어졌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반면 주가를 끌어올리고 그 과실이 기존 주식 보유자에게 집중되는 구조만 더욱 강화되고 있다. 코스피의 상승은 과연 모두의 삶을 함께 끌어올리는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식을 가진 자와 아닌 자로 나뉘어 한국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자산격차가 시작되고 있다. 

더구나 주식시장 자체가 애초에 불평등이 깊이 새겨진 세계다. 누구든 푼돈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자산이라 할만한 규모의 자금을 모을 순 없다. 자산이 많을수록 더 큰 수익을 얻는, 시장이 상승할수록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더없이 불평등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10억 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1% 미만이지만, 이들이 보유한 코스피 시가총액은 절반을 넘어섰다. 자산가격이 오를수록 가장 큰 과실은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자금을 생산적인 투자로 돌리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은 기대와 다르다. 증시에서 얻은 수익이 고가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며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이 서로를 부양하는 일종의 재테크 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주가지수가 아닌 물가, 금리 그리고 임금은? 

어렵사리 대출을 받아 치킨집을 운영하던 친구네 치킨집은 곧 폐업을 할 예정이다. ‘온 세상에 돈이 넘쳐나는 거 같은 분위기인데, 왜 이렇게 장사는 안 되냐’는 친구의 넋두리는 자영업자의 흔한 입버릇이 아닌 눈물겨운 현실이다.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지만 골목상권은 악화일로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이 20%나 차지하는 현실에서, 자영업 폐업은 이미 2024년 100만 명을 넘어섰고, 매출 부진으로 원치 않는 폐업을 하는 소상공인도 크게 늘었다. 높은 물가와 금리는 가계와 자영업자의 부담을 키우고, 자산시장의 호황과 실물경제의 침체가 공존하는 이중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파산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고 있고, 2025년 상장 제조업체 45%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 못하는 상태다. 반도체 호황이 곧 한국 경제 전체의 호황은 아닌 것이다.

연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코스피 최고치 경신 소식을 접하다 보면 모두가 수출 대기업에 다니며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착시다. 임금노동자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58% 정도인데,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3.2% 상승하며 2년반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니 자영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확대되기 어렵다. 청년 고용률은 43.8%로 25개월 연속 감소하며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AI와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주가지수를 끌어올렸지만, 그 성과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특정 기업은 성장했지만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모습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고용률과 일자리의 질, 최저임금과 물가안정과 같은 지표로 평가받아 왔다. 이는 경제성장이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경제를 설명하는 언어의 중심에는 코스피 지수와 투자 규모, 수백조 원짜리 프로젝트가 자리 잡고 있다. 숫자는 커졌지만, 그 숫자가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부는 말하지 않는다. 주식 시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이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실체는 좀처럼 확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주가 지수의 상승이 아니라, 주식에 밑천을 걸지 않아도 살 만한 삶의 조건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투자권유가 아니다  

6월 29일, 정부는 삼성, SK와 함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개최했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삼성과 SK가 160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고, 정부가 이를 위한 전력, 물, 토지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될 초과세수가 다시 이들 대기업을 지원하는 데 투입되는 형국이다. 연일 어느 지역에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가 들어온다는 발표가 이어진다. 거대한 숫자는 성장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800조원 규모의 투자가 호남 지역에 추진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가 전력과 용수를 신속히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튿날, 호남권 신생아 진료체계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보도가 나왔다. 전북 전체에 고위험 신생아 전담 의사는 1명, 3~4월 주간 근무시간이 90시간으로 알려졌다. 돈을 벌어들이는 첨단산업 인프라에는 막대한 재원을 신속히 투입하면서도, 열악한 지역의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등한시하는 현실은 정부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정부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소득과 복지, 주거 등 삶의 안전망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보다 자산을 늘리고 배당과 투자수익으로 미래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만 더 크게 들린다. 함께 잘사는 사회는 자산시장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주거, 돌봄, 의료 공공성 속에서 누구나 삶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국민 모두를 주식 보유자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산이 없어도 존엄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시장의 성패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투자를 부추기는 정책이 아니라 노동과 복지, 공공성을 통해 삶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는 정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