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대우 가스개발의 현장, 버마 아라칸을 가다

아침 8시에 출발한 트럭은 오후 1시가 넘어 잠시 한 마을에 멈췄다. 식당에 들어가 차가운 음료를 주문했더니 주인은 난감한 얼굴로 아이스박스를 열어 보고는 얼음이 없다고 한다. 주변의 다른 상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곳에서 차가운 음료를 찾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저녁 7∼8시부터 2시간 정도만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는 곳. 이 곳은 버마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인도·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라칸 주이다.

도로를 지나다 찍은 마을 사진. 랭군을 비롯한 버마 중심부를 제외하면 일반 주민들은 전통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 도로를 지나다 찍은 마을 사진. 랭군을 비롯한 버마 중심부를 제외하면 일반 주민들은 전통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의 신문 경제면에는 버마 관련 기사가 종종 등장했는데 모두 한국 기업 대우인터내셔널의 버마 가스 탐사 성공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업 주가는 크게 올랐고 정부는 상도 주었다. 국민들은 에너지 빈국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으며 기뻐했다. 그 가스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난 7월 버마의 수도 랭군과 한국 기업이 가스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아라칸 주를 2주 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개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개발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여행 중 만났던 아라칸 출신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 했던 것은 천연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바다에는 해산물이 가득하고 땅에는 석유와 천연 가스가 매장되어 있으며, 태양과 물과 토양이 풍부한 곳. 그런데 이 풍요로움 속에서 윤기가 없는 한 가지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직업이 없고 돈을 거의 벌지 못한다. 그나마 돈을 버는 사람들의 한달 평균 수입은 한국 돈으로 만원 정도이고 하급 공무원의 한 달 수입은 5천원을 넘지 못한다. 마을에 학교가 있어도 교과서와 초록색 롱지(롱지는 버마 전통의복으로 학생들은 초록색을 교복으로 입는다)를 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이 골목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언덕 위에 오르면 기름진 논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마을 사람들은 쌀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므락 유 (Mrauk U)에서 만난 아이들. 많은 아이들이 낮 시간에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

▲ 므락 유 (Mrauk U)에서 만난 아이들. 많은 아이들이 낮 시간에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



시트웨에서 만난 민(가명)은 "버마 해산물의 대부분이 아라칸에서 나오며 새우, 게, 해파리, 생선 등 해산물의 수출이 정부의 외화벌이에 한 몫을 한다"고 소개했다. 일반인의 낚시는 허용되지만 먼 바다에서 어업을 하려면 정부나 해당 구역에 대한 소유권을 정부와 계약 맺은 곳에 세금을 내야 한다. 아라칸은 고급 목재로 쓰이는 틱 나무로도 유명한데, 버마 정부는 외화 벌이를 위해 틱 나무를 특별 관리하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고 있다. 풍요로운 땅에 살면서도 독재 정권에게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은 자신의 땅에서 이루어지는 개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그들의 생각을 듣기란 쉽지 않았다. 버마에서는 정부에 반하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버마 내의 모든 해외 투자는 정부와 계약을 맺어야 하므로 일반 버마인들에게 가스개발 문제는 기업의 경제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가스 개발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을 꺼렸다. 한국 드라마와 기업 이름으로 대화를 시작해 가스개발에 대해 슬쩍 물어보면 그건 정치적인 질문이라며 대답을 거부하거나 우리 땅에서 가스를 개발하니 좋다거나 잘 모른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를 듣고 정보국에 신고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입 조심은 그들의 일상이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는데, 이들은 지식인이나 지도자, 활동가로 소개된 사람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은 버마에 민주주의가 올 때까지 가스 개발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해외 기업의 가스 개발로 인해 이익은커녕 고통만 더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들은 가스 개발 계획이 정부와의 계약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윈(가명)은 "우리는 가스 개발 계획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호주 기업이 군사 정부와 계약을 맺고 뱅갈 만에서 새우와 생선을 잡았다. 그런데 이 기업들이 새우 번식지에서 어업을 하여 다음 해에 새우 어획량이 감소했다. 주민들은 정보가 없어 이런 일을 미리 막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은 가스 개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지식인으로 소개된 사람들조차도 기업과 정부의 계약 관계나 가스관의 경로 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미라(가명)는 "아라칸에서 가스개발을 한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가스가 인도로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버마 외부 신문에는 다 나오는 정보인데도 정작 지역주민인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버마 정부가 아라칸 지역 주민들의 이익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가스 개발로 얻은 이익을 군부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한 무기 구입과 군사력 증강에 사용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강제노동과 강제이주 그리고 군대의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과 강간 등 지역 주민들이 직접 당할 피해를 걱정하고 있었다. 버마에서 개발이 시작 되기 전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갑작스런 군인의 증가인데, 군인들은 개발 지역에 상주하면서 기업에 안전을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강제노동과 강제이주를 지시하는 일을 맡는다. 최근 가스 탐사 인근 지역인 조욱 퓨(Kyauk Pyu)로 해군 사령부가 새로 옮겨왔다. 조욱 퓨의 선착 장에는 바다로 나가지 않은 어선들과 함께 해군 함정이 정박해 있었고 주변에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조욱 퓨(Kyauk Pyu)의 선착장 근처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군인들과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 조욱 퓨(Kyauk Pyu)의 선착장 근처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군인들과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아웅(가명)은 "강제노동은 버마 전 지역에서 일어난다. 군대 시설을 짓는 데에 주민들은 공사 자재와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강제노동은 군사 시설, 도로와 같은 기반 시설 등 개발에 관련된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데 버마 정부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봉사라고 둘러대거나 매우 적은 임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버마에서 강제노동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제노동은 5∼6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나 임신부들을 제외하고 성별이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강요된다. 강제노동을 거부할 경우 감옥에 보내지거나 폭행을 당하고 때에 따라서는 약 3000원의 벌금을 물기도 한다. 강제노동은 그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강제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군인들의 폭력은 종종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한다.

도로에는 손 연장으로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이들을 200~300미터에 한번씩 볼 수 있었다.

▲ 도로에는 손 연장으로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이들을 200~300미터에 한번씩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해외투자를 이야기 할 때 지역의 이익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전기 공급의 제한으로 산업시설이 전무한 상태의 아라칸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은 기대 만으로도 큰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민들은 이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은 정부와 해외 투자 기업의 일 처리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모예(가명)는 "해외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겠죠. 그런데 시트웨에 사무실이 생기더라도 직원들은 모두 랭군에서 뽑아 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노아(가명)는 "가스 개발로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요식업과 같은 불안정한 고용만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이들도 해외 투자를 통한 경제 개발로 매일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하루 먹을 걱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어쩌면 경제 발전이 독재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들은 그 모든 가능성들이 현재의 버마 정부와 지금까지 버마 안에서 행해졌던 방식의 기업 활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이번 가스 개발과 비슷한 경우였던 미국 기업 유노칼의 야다나 가스 수송관 건설이 주민들에게 준 것은 강제이주, 강제노동, 폭력, 강간뿐이었다. 피해 주민을 증인으로 세운 인권·환경단체와 유노칼의 10년에 걸친 법정 소송 끝에 유노칼이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하게 되었지만, 수송관 지역에 남아있는 주민들은 이제 수송관 관리의 임무를 맡아 또 다른 강제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정권 유지를 위한 외화 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는 버마 정부와 독재 정부의 보호 아래 싼 가격으로 자원을 얻으려는 기업의 합작품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스 개발이 아무런 반대나 장애물 없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버마 민중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그들의 삶을 또 한번 흔들어 놓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활동이 야기한 인권침해나 환경파괴를 제재할 방법을 찾기 힘들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미 국내외 인권·환경단체들이 한국에서의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그리고 어떠한 관심을 보이는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
덧붙임

한수진 님은 국제민주연대(khis.or.kr)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