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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결국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 긴급 경제대책 비판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 그린뉴딜 등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경제대책들이 연일 회자되고 있다. 총선을 거치며 전 국민 지급으로 바뀐 긴급재난지원금은 갑자기 여야 정치인들의 ‘기본소득’ 논쟁으로 옮아갔고, 대통령의 언급으로 등장한 ‘그린뉴딜’은 이명박의 녹색성장과는 다른, 기후변화시대에 조응하는 정책처럼 이야기된다. 정부는 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달라야 한다며,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 중심으로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정말 이번에는 다를까?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저 정책들만 보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어떤 최선인지 알려면,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13조 원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은 재정건전성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경제대책은 총 300조 원 규모에 달한다. 한국뿐만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 정부는 모두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 쓰나

 

정부는 ‘비상경제회의’를 6차례에 걸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며 경제 전반에 걸친 대책들을 쏟아냈다. 이는 크게 ‘금융시장 안정’, ‘디지털·그린뉴딜 투자’, ‘생계지원 및 고용안정’으로 나뉜다. 균형 잡힌 위기대응처럼 보이지만 총 300조 원에 달하는 재정의 대부분은 ‘금융시장 안정’에 쓰인다. ‘금융시장 안정’은 기업들에 대출, 채권구매, 어음할인 등의 형태로 돈을 빌려준 은행과 증권사를 지원하고, 회사채나 대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직접 자금 지원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우량기업, 한계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며 채권시장, 증권시장, 기업어음시장을 망라해서 200조 원 이상 투여된다. 그 어떤 기업, 금융 회사라도 망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질 정도다.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40조 원 규모로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과 25조 원 규모의 저신용 회사채 매입기금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주로 재벌 대기업들이 망라된 항공, 조선, 자동차, 통신 등 7개 분야 기간산업에 대출상환 등에 필요한 현금 공급뿐만 아니라, 주식매입과 같은 지분투자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국유화 논란이 일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우선주만 취득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에 거액을 직접 쥐어주는 꼴이다. 이에 더해 저신용 회사채까지 정부가 매입하겠다는 것은 금융사나 기업의 경영손실인 부실 채권을 국민 세금으로 떠안겠다는 것이다.

 

‘디지털·그린뉴딜 투자’는 정부가 위기 대응을 넘어, 코로나19 이후 신 성장 동력으로 디지털 산업과 그린 산업을 국가투자를 통해 육성하겠다는 것인데 향후 5년 간 76조 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디지털 뉴딜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더해 디지털 교육 인프라 구축과 원격의료와 같은 비대면 산업 육성을, 그린 뉴딜은 공공시설, 주택 등의 에너지효율화 사업이 중심이다. 금융 대책에 비해 재정 규모가 크지 않은 점, 향후 3년 간 55만 개 일자리 창출 목표가 병행된 것으로 볼 때 투입 재정의 대부분은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 사업에 쓰이고, 디지털·그린 산업에서는 민간 자본 중심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관련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계지원 및 고용안정’ 대책은 긴급재난지원금 13조 원, 일자리 창출 사업과 실업급여 확대, 사회보험료 감면 등에 쓰일 11조 원이 중심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에는 3년 간 고작 9천억 원의 예산만 배정됐다.

 

한 해 정부 예산이 500조 원, 한국 GDP가 1,900조 원임을 감안하면, 300조 원은 결코 작지 않은 재정 투입이다. 이미 3차에 걸친 추경으로 60조 원의 예산이 추가됐고, 정부보증을 전제로 한국은행이 직접 나서 원화를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했으며, 미국 연준과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외화대출도 실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장과 금융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이다.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대책들을 쏟아내는 현 상황은 이번 경제위기의 규모와 강도를 짐작케 한다. 시장과 자본소유권의 신성불가침을 외치다가도 위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국가개입이 이뤄지는 지금,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온 몸으로 경험했듯이 말이다.

 

이윤은 자본에게, 손실은 사회에게?

 

코로나19 이후, 고강도 방역대책으로 ‘물리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여행숙박업, 음식도소매업, 문화예술산업, 판매영업직, 공공기관의 교육, 돌봄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 자영업 종사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겪으며 폐업과 실직이 급증하고 있다.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자영업자여서 고용보험 가입대상조차 아님에도, 5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초로 1조 원을 넘었다. 서비스업을 넘어서 산업 전반으로 위기가 옮아가는 모양새다. 한국은 비교적 방역에 성공해 봉쇄조치까지 시행되진 않았지만 수출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이기에 전 세계적 수요위축과 경기침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수요위축 이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저성장과 이윤율 문제는 이미 심각했다.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여러 경제기구들은 이미 2020년 경기침체를 예상했고 크게 늘어난 기업부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가계부채 문제를 일제히 경고한 바 있다. 저비용항공사의 난립과 과잉경쟁으로 인한 항공업의 구조조정은 세계적으로 초읽기 상태였고, 심각한 과잉생산 상태였던 철강과 석유 생산량을 조절하려던 국제협의는 작년에 이미 실패했었다.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전환, 에너지 업계는 탈탄소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산업전환의 한 가운데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진 것이고,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아시아나항공,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한국GM 등 개별 기업들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지원과 매각사업은 해당 산업계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적인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쟁의 심화와 이윤율 및 성장률의 하락 위기를, 2008년 국가의 재정지원을 통해 모면한 자본이 다시 과잉생산을 야기하고, 이번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큰 규모의 국가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원은 그저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서서 기업에 대출을 권하고 시중에는 돈이 넘쳐난다. 기업이 이 지원금을 가지고 돈이 돈을 불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투기하는 일은 언제나 반복된다. 지속된 과잉 생산으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곳에 자원이 낭비되며, 그 결과로 드러난 자본의 경영손실을 국가가 대신 떠맡아 사회화하겠다는 게 이번 경제대책의 밑그림이다. 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국가경제도 산다는 뿌리 깊은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제 정책

 

그래도 외환위기 때 장롱 속 금붙이까지 갖다 바친 결과가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불평등의 심화였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일까? 정부는 이번 경제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업 지원의 전제로 고용 유지 조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기간산업안정기금’ 관련 산업은행법 개정과정에서 고용유지 조건은 ‘노사가 고용유지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문구로 바뀌었고, 정부는 90%이상 고용을 ‘6개월’간 유지하는 조건을 내건 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로 재벌 대기업을 지원하는 이 기금에서 연관 하청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유지는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제 대다수 노동자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인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그것도 6개월간 한시적 고용유지는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조 단위의 자금을 지원받게 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천공항 노동자 대다수가 이미 해고와 무급휴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수송 급증으로 2분기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그 외에도 저신용 기업의 회사채 매입 등을 통해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수십조 원이 지원되지만 고용유지조건은 부과되지 않는다.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도입도 마찬가지다. 실업급여 지급액은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지만, 고용보험 가입자가 전체 취업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현실이 이번 코로나19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운을 띄웠지만 고용된 임금노동자를 기초로 설계된 기존 고용보험제도를 그대로 둔 채, 몇몇 직종을 특례로 포함시키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3년 간 9천억 원의 예산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노동소득의 중단을 겪는 모든 취업자들의 생활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이윤 있는 곳에 책임 있다’는 원칙 아래 새롭게 설계되지 않으면 ‘전 국민 고용보험’은 수많은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없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쟁에서 시작해 이재명, 박원순을 필두로 여야 정치인들의 기본소득, 전 국민 고용보험을 둘러싼 주장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꼭 필요하다. 노동 소득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도 누군가에겐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노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 안정적인 노동은 불가능하고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디지털 혁신으로 인공지능이 전면화 되고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인간노동은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이라며 내놓은 22만 개 데이터 구축 일자리 사업과 같이 분절화 되고 단순화된 인간노동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21세기 판 가내노동으로 저임금 재택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것만으로 생계비를 벌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 잡, 쓰리 잡을 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은 어쩌면 21세기 불안정노동 시대의 복지정책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13조 원의 긴급재난지원금과 9천억 원의 고용보험 확충 계획 너머에 있는, 300조 원 가까운 기업과 금융회사 살리기, 기간산업지원, 디지털-그린뉴딜 사업은 앞으로 한국사회의 노동현실과 산업구조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계획이다. 지금 당장은 모든 기업들에 현금을 공급하면서 부도를 막고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각각의 산업들이 이미 과잉생산-과잉경쟁인 상태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정부 지원으로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손실을 사회화한 다음, 노동자 해고,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높이고 매각하면, 기업과 금융사들은 오히려 막대한 이윤을 남기게 된다. 특히 재벌 제조 대기업들이 주축인 기간산업구조조정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공공부문을 제외한 노동시장은 100% 비정규직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으로 기업지분과 금융 전반에 걸쳐 공적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민간 자본에게 맡겨진 소유와 경영 아래에서 과잉생산을 비롯한 산업생산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 원하청 총고용의 유지, 탈탄소사회를 위한 산업전환과 같은 지금 당장 필요한 사회적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 앞에서 개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회적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개별 기업 수준에서 불가능한 사회적 계획 수립과 타협, 조정은 정부의 경제대책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개별 기업의 부실을 떠안는 국유화가 아니라 기간산업을 사회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하는 사회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디지털·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새로운 시장 만들기가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이용한 새로운 돈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자연과 노동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착취해 온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제는 정말 유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지금 상황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과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묻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성별분업에 기대지 않는 돌봄노동의 사회화, 보건의료와 교육 등과 같은 사회적 필수노동의 확대, 탈탄소사회를 위한 노동과 자원의 투여를 사회가 계획하고 책임지는 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