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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상법 개정, 착시를 걷어내자

주주 권한 강화를 넘어서는 전망이 필요하다

‘이사의 충실 의무’에 대한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합의로 처리한 이재명 정부 첫 민생 법안으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주식시장을 선진화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해왔고,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거래소를 찾아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며 상법 개정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의지를 밝혀왔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주식시장의 반응은 코스피 상승세로 나타나며 소위 ‘허니문 랠리’가 당선 직후부터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한 확장을 경제 민주화의 경로라 여겨온 시민사회 진영도 상법 개정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이번 상법 개정에 대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경제 민주화의 결단으로 의미화하고 지난 겨울 민주주의 회복을 바라며 탄핵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사회대개혁’의 요구와 그 결을 같이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권한을 확대하고 공정한 주식시장을 만드는 것이 주식의 값어치를 올릴 수는 있어도 한국 사회의 경제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상법 개정의 효과에 대한 착시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와 경제 민주화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소액주주운동에서 출발한다. 시작은 97년 외환위기의 기점으로 여겨지는 ‘한보 사태’다. 당시 재계 14위 재벌기업이었던 한보그룹의 부실 경영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까지 연쇄적으로 도산시켰고, 잘못된 기업 운영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때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도산한 한보그룹만이 아니라 한보에 돈을 빌려준 제일은행 경영진에 소액주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한보가 부실경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5조 원 이상의 큰돈을 불법으로 대출해줘 부도로 인한 피해를 키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제일은행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모아 주주총회에 참가해 경영진에 문제를 제기하고, 주주대표소송으로 당시 경영진의 결정에 대한 배상 판결도 받아냈다. 이후에도 소액주주운동은 삼성전자 이재용 승계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 대한항공 갑질 총수 조양호에 대한 연임 반대 등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소액주주운동은 재벌의 이익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기업이 사회 전체에 피해를 전가하는 구조에 주목하며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꿔내고자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모아낸 것이었다.

상법 개정에 관한 요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소액주주가 주주의 자격으로 기업 경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제도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 재벌 일가가 무엇을 해도 ‘경영의 자유’라 포장하며 그에 대한 통제나 견제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가 뒷받침해왔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운동은 기업이 재벌의 이익에만 복무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경제 제도들을 지목하며, 소액주주의 권한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요구해왔고 일부 개선되기도 했다. 주주대표소송을 위한 보유지분 요건을 0.5%에서 0.01%로 낮추었고, 증권 거래 과정에서 50명 이상이 피해를 보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피해를 본 모든 사람을 대리하는 집단소송이 가능해졌다. 소액주주운동을 추동해온 시민사회가 이번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장하는 것과 함께, 기업의 규모에 따라 ‘전자주주총회’를 열도록 하고, 기존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을 변경하며 선출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등 재벌의 의결권은 제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은 확장하는 방향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실질적으로 재벌을 견제하며 기업의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꿔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는 따져 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법 개정

외환위기와 함께 소액주주운동의 요구가 등장한 지 30년, 그 사이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었다.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의 일상화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소득의 격차가 중첩되어 벌어지고 자산에 따른 격차도 함께 커졌다. 하지만 국가는 불안정 노동을 규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커녕 재벌 대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제의 생존을 동일시하며 지속해서 혜택과 지원을 몰아줬다. 그리고 불평등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을 향해 내놓은 응답은 각자 알아서 투자해 부자가 될 방법을 찾으라는 식이었다. 투기자본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갔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간극을 주거권과 같은 기본적 인권 현실부터 자산의 격차까지 벌려놓았다. 그런데도 국가의 메시지는 고작 ‘빚내서 집 사라’며 불평등 완화 대책이 아닌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이야기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가의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라면 이제는 부동산 말고 주식을 사야 한다며 투자의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부터 주식에 투자하라는 정부의 신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 500만 명이 채 안 되던 주식 인구가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2022년 기준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제가 멈추어 섰고 유동성의 증가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의 상승 흐름을 만들었다. 자신만 ‘벼락거지’가 될 수 없다며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주식시장으로 뛰어든 배경이다. 안전망 없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 주식 투자는 생존의 방식이 된 것이다. 특히 이 흐름에는 상대적으로 자산이 적은 청년 세대가 주를 이루었다. 2020년 신규 증권 계좌 1,818만 개 중 1,074만 개를 개설한 것은 당시 20·30대였으며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주식시장은 여윳돈 있는 사람의 투자처가 아니라 (실제 가능성과 무관하게) 유일한 계층이동의 사다리처럼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은 이 흐름을 겨냥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증시”라 말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불공정 거래를 퇴출하고 주주의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해 코스피 지수 5,000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당 대표 시절 이미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 것에 이어 앞으로는 기업이 얻는 이윤을 주주에게 더 많이 배당하도록 추가적인 세제도 개편하겠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말하는 상법 개정의 핵심은 투자하기 좋은 조건을 만드는 데에 있다. 공정한 주식시장, 주주 권한 강화는 결국 부자를 만들어 줄 테니 주식에 투자하라는 국가의 부추김인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도 기업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말하지만 이조차 불공정 자본 거래를 규제해 주가를 올리겠다는 의미일 뿐, 재벌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라는 지향은 읽을 수 없다. 결국,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겨냥하지 않고 모두가 주식 투자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박근혜 정부의 빚 내서 집 사라던 전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상법 개정은 시민의 정체성을 ‘투자자’로 위치 짓고, 주식 가격 상승을 사회 전체의 바람처럼 여기도록 조건을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다. “주식으로 생활비 벌 수 있게”만들겠다던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민생입법인 이번 상법 개정에 대한 착시를 걷어내야 하는 이유다.

주주자본주의가 기업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번 상법 개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주주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상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흐름은 이미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쳐왔다. 한국 제조업의 대표 격인 삼성은 이미 10년 전부터 투자를 줄이고 재무제표 개선에 나서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큰 계기는 이건희의 사망 이후 이재용으로의 경영승계 과정에서 주주들을 설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애플처럼, 설비투자는 많이 하지 않고 돈을 잘 버는 사업구조로 삼성을 변화시키겠다. 이제는 경영을 잘해야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한 이재용은 실제로 1조 원 초반대의 배당금을 10조 원 가까운 금액으로 늘리고 때에 따라 20조 원씩 꾸준히 배당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자사주 매각을 이어간다. 재벌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를 존속하기 위한 주주환원 중심의 경영을 해 온 것이다. 상법이 바뀌기 전부터 이미 재벌이 먼저 주가를 올리기 위한 경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이 주주환원을 더욱 본격화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렇게 주주에게 기업의 이윤을 환원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방향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삼성의 지금과 같은 경영 방침이 어떤 경영자든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삼성이 늘린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연구 개발비와 설비투자 비용을 압박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제조업 성장의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국 이윤은 투자를 많이 한 대자본이 얻지만, 위기는 다시 사회 전체의 몫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던 글로벌 제조업 회사들이 경영 지표에 우선순위를 두고 주주환원을 중심으로 경영을 이어가던 기업들이 휘청이는 모습을 보고 있다. 미국 항공기 회사 ‘보잉’은 200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아왔지만, 실상은 핵심 부품을 외주화하고, 원가를 절감해 주식 가격 상승에만 목을 매는 경영을 이어갔다. 결국 보잉은 안전한 비행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다 잃고, 결함 있는 비행기를 납품해 2018, 2019년 연달아 사고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단숨에 자본잠식 기업으로 전락했다. 보잉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선두주자였던 ‘인텔’도 주가 부양에 중점을 둔 경영을 이어가다 결국 성장의 동력을 잃고 위기에서 아직까지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하다. 지금 삼성의 경영을 보면서 인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사는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텔이나 보잉과 같은 회사의 사례들은 지나치게 단기이익을 중심으로 주주의 이익을 환원하다 실패한 ‘잘못된 주주자본주의’ 경영의 사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주자본주의의 경향이 강한 미국에서 제조업 기업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공통적이며, 소수 재벌기업에 사회 전체의 자원을 집약시킨 한국 사회에서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어려움을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변화되는 조건을 살피며 운동의 전망이 필요하다

기업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를 묻기 이전에 기업은 스스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특히, 한국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 각종 세금과 제도의 혜택부터 전기, 도로, 항만 등 사회적 인프라 지원은 물론, 노동자의 권리마저 제한하며 저임금 노동력 공급이 가능한 환경까지 조성해 지금의 재벌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사회가 성장시켜온 기업의 이윤을 재벌이 독식해왔다면 이제는 회사의 주인을 주주로 바꿔 기업의 생산능력을 붕괴시켜가며 투자자에게만 이득을 쥐여 주는 방식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꼴이다. 하지만 이또한 방향이 될 수 없다. 이는 결국 부자는 더 큰 이윤을 얻겠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함께 고갈시키며 그 피해를 투자하지 않은 모든 사회의 구성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예견케 할 뿐이다.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조정해나가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업을 사회적으로 통제해나가기 위한 시민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기업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더 크게 조직하고 공공적 통제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운동의 전망이다. 재벌의 이익은 물론 주주의 이익을 경로삼지 않아도 기업을 통제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은 운동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