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온라인 젠더기반폭력, 플랫폼 대응의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런 주제는 한사성이 떠먹여줄 때 먹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러 갔는데요, 혼자 듣기 아까운 마음에 마침 발제자였던 여파 님에게 후원인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사이버성폭력’의 최전선에서 여러 활동을 벌여온 한사성의 고민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수록 폭력에 맞설 방법도 더욱 많아질 듯합니다. 내용이 더 궁금해진 분들은 한사성 홈페이지를 찾아봐주세요 ^^;;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에서 활동하는 여파입니다. 한사성은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이버성폭력 대응을 위한 피해자 지원, 입법 로비, 캠페인 등을 하는 조직이고요, 저는 창립 멤버로 지금 9년차 활동을 하고 있어요.
계엄 사태 이후 광장에서 종종 마주쳤는데요, 넉달의 시간 어떻게 보내셨나요?
한사성 멤버들은 모두 배경이 달라요. 계엄 소식 듣고 바로 몸이 움직이는 멤버들도 있었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멤버도 있었어요. 민주주의의 역사를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광장에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더 담겨야 한다는 얘기도 나눴어요. 우리가 너무 조금일 것 같아서 매일매일 광장에 나가고 사람들한테 피켓도 나눠주고 그랬어요.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 퀴어- 네트워크’에서 만든 피켓들요.
국회에서 탄핵소추 통과된 날 ‘다시 만난 세계’가 광장에 울려퍼지던 게 많이 기억에 남아요. 남태령 거치면서 광장을 페미니즘으로 물들이는 시민들이 생각보다 많고, 다들 너무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숨이 놓였던 것 같고요. 남태령에서의 발언이나 집회 무대에 오른 시민들 발언들도 너무 좋으니까 시민들 믿고 우리는 일상 활동을 잘 유지하려는 노력을 조금 더 하게 됐어요. 피해자 지원이나 상담하는 일, 단체에 신입활동가로 들어온 분들과 지속적으로 활동을 잘하기 위한 노력요. 다음을 내다봐야 한다는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다음의 두 달이 대선이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한사성은 문재인 정권과 같이 출발했어요. 윤석열 들어설 때 선배들이 탄압이 심각할 거라고 마음의 준비 해두라 했는데 그걸 체감하는 시간을 거쳤어요. 한사성은 정부 보조금을 받는 건 없지만 같이 반성폭력운동 하는 상담소들 예산이 삭감되거나 없어지고 상담소들 간 갈등을 정부가 부추기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윤석열 파면되고 열리는 대선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말하는 게 표가 안 된다는 프레임이 어떻게 이토록 강할 수 있는지 정말 암담했던 것 같아요. 권영국 후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죠.
그러다가 TV 토론에서 이준석이 여성혐오를 전파하는 발언을 하니까 정말 화가 났는데, 그래도 단체들이 다 성명을 내고 시민들도 엄청나게 분노를 해서 혐오로 정치하는 것의 마지노선을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윤석열을 우리가 끌어낸 것처럼 이준석들을 끌어낼 수 있다면 어떤 나아감이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이준석만 사라져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공적 영역에서, 그리고 정치의 장에서 혐오 선동이 긍정적 자원으로 작동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20대 여성들만 챙겨서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더 성평등하지 않아서 실패한 거예요. 하지만 양당 구도에서는 민주당한테 더 뭔가를 기대하거나 요구하게 되고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국민의힘 될까 봐 민주당 찍는다는 사람들 많아서 안타까워요.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살아있는 득표율을 보고 싶어요. 내란정당도 아니고 혐오정치하는 정당도 아니고 보수양당도 아닌 정치의 가능성이겠죠.
한사성이 준비하는 다음이 궁금합니다.
한사성은 ‘불법화 이후의 과제’라는 키워드를 재작년부터 고민하고 있어요. 2017년 이후 사이버성폭력 관련 법과 제도가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졌거든요. 그걸 만드는 데 집중했던 게 한사성 1부라면, 이제 2부에서는 제도화 이후의 과제들을 짚어보려고요. 그런데 어려워요. 여기저기에서 한계와 부작용이 막 드러나는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요. 불법화가 됐는데도 경찰이 수사를 못하거나 판결이 이상하게 나오거나 피해자가 지원을 못 받는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는데 플랫폼 사업자들은 책임을 쏙쏙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지금 갈피를 잡고 있는 건 사이버성폭력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사이버성폭력’이라는 말을 안 쓰는 게 나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단체 이름에도 있는데, 어려운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사이버성폭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현실과 단절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주장과 반대인 거예요. 우리는 현실과 너무 연결돼있다고, 온오프라인의 세계가 구분이 안된다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구분되는 효과가 있는 거죠.
그리고 ‘성폭력’보다 ‘젠더폭력’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어요. 사실 말이 다른 건 아닌데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이라고 하면 성적인 문제로만, ‘음란’한 문제로 여기는 게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성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된 피해는 제도화된 기관에서 지원하는데 그런 요소가 적은 피해들은 지원을 못 받아요.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어떤 유튜버가 한 여성을 막 쫓아다니면서 생중계를 하고 채팅창에 사람들이 욕설로 댓글을 달게 하거나, 남초 커뮤니티에 ‘얘 페미니스트래’ 하면서 올려서 모욕당하게 하는 사례들이 있어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인데 ‘성폭력’으로 제도에서 인지되지 않는 거예요. 가해자들은 여성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성적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라 ‘성적인’ 폭력으로만 문제 삼으면 폭력의 본질이 사라지는 거예요. 더 좋은 정의를 탐구하고 찾아나가려고요.
운동이 어떤 한계에 부딪쳤다는 건 그만큼 나아갔던 역사의 반영이기도 한데 한사성 창립 이후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나요?
여러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건 얘기 많이 했는데, 시민들 인식이 진짜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요. 2016년까지만 해도 정부가 여성 폭력 통계에서 ‘몰카’라고 집계할 정도였는데 이제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말 안 쓰잖아요. 폭력의 본질을 왜곡하는 말인데 그런 말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동의 없이 촬영하면 안 된다, 동의 없이 유포하면 안 된다, 이런 기본 인식이 확산됐죠. 남성들의 인식도 많이 향상됐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다만 그걸 어떻게 피해갈지에 대한 노하우가 남초 커뮤니티에 많이 공유되는 문제가 있죠. 그리고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 엄청나게 많이 각성을 하고 운동이 커지니까 의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 고양이 정말 크게 이루어졌어요.
남는 과제도 있어요. 사이버성폭력이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많이 가해지다 보니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흐름이 있었어요. 생물학적 성별보다 억압의 구조를 기준으로 폭력의 성격을 판단하는 데로 나아가는 게 과제예요.
억압의 구조를 물질화하는 것 중 하나가 플랫폼 산업이라 한사성에서 토론회도 열었던 것 같아요.
네. 웹하드 카르텔 처음 시작할 때 이선희 감독님(<얼굴 그 맞은편>, 2018) 영향이 컸어요. 성폭력을 산업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는 관점을 가진 분이었고 우리도 크게 공명을 했어요. 당시에는 여성의 신체이미지를 가지고 돈을 버는 것에 너무 화가 많이 난 상태였죠. 폭력과 착취와 혐오가 돈이 되니까 돈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가다 보니까 산업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 문제를 함께 짚으면서 갈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건들에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됐어요. 산업의 문제는 지금도 중요한 쟁점이예요. 소라넷처럼 아예 불법으로 퇴출시킬 수 있는 게 있는데, 합법의 외피를 쓰고 카르텔을 형성한 게 웹하드 양진호 문제였거든요. 구글이나 유튜브, 메타 같은 기업들도 폭력을 양산하는 플랫폼인데 존재 자체를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잖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타격’할 방법이 필요해요.
그래서 두 번째 토론회 주제가 ‘불법과 합법 사이’인가봐요.
아예 불법인 애들은 경찰한테 더 열심히 수사하라, 범죄수익 몰수하라, 폐쇄하라 하면 되거든요. 갈 길이 정해져 있죠. 그러고 나서 ‘피해촬영물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았죠.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촬영 당시 동의했더라도 이후 동의를 철회한 촬영물은 불법화됐어요. 불법촬영물은 국가가 검열을 하는 영역으로 다 넘어갔어요. DB를 국가가 제공하고 플랫폼 사업자들이 다 걸러내도록 해요.
그런데 이제 다른 종류의 촬영물이 유포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노출이 많은 여성 BJ의 방송 영상 같은 것이죠. 이걸 여성 BJ들이 착취된 것으로만 보기도 어렵고 자발적으로 했다고만 하기도 어려운데, 이것이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면 그 이유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리고 이걸 통해 돈을 버는 플랫폼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들이 산적해 있어요. 국가에 인터넷 개인방송까지 모두 검열하라는 것이 적절한 요구는 아닌 것 같잖아요. 게다가 영상은 내용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그것이 게시되거나 유통되는 맥락에 따라 문제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노출을 해서 생중계를 했어, 그런데 그걸 누가 녹화해서 포르노 사이트에 올리는 건 싫을 수 있잖아요. 영상의 내용만으로 판단할 때는 이걸 이해하기 어렵게 되죠. 그래서 저희는 토론회 준비하면서 진보네트워크센터도 만나고 플랫폼 자본주의도 공부하려고요. 여러 방면에서 봐야 해법을 찾을 것 같아요.
‘피해촬영물’에 대한 고민은 한편으로 ‘피해’를 말할 때의 어려움과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 너무 어려워요. 한사성은 2017년에 ‘불안피해’라는 개념을 만들어 상담 통계에서 유형으로 잡기도 했어요. 촬영이 됐을까, 유포가 됐을까 불안한 사례를 포착하는 중요한 시도였어요. 사이버성폭력은 인지하는 것과 발생한 시점이 분리될 수밖에 없잖아요. 여성들이 불안해하는 게 유난떠는 게 아니다, 불안할 만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예민하다고 치부할 게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뺄까 하는 고민도 해요. 피해라고 하면 불안한 사람이 다 피해자가 되어버리는데,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은 ‘불안하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더 말하고 싶어하기도 했어요. 흔히 피해를 회복한다고 할 때 가해자 처벌을 많이 상상하는데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바꾸고 싶은 거잖아요. 작년 딥페이크 성폭력이 크게 알려지면서 SNS에 올렸던 사진 내리고 졸업사진도 못 찍고 연애도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기고 개인정보 보안 장치를 엄청 설치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런 불안을 인정하면서도 다르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았어요. 한 피해자 분이 ‘누가 내 촬영물 봤으면 걔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라는 말을 하시기도 했어요. 우리가 씩씩하게 살아보자, 이게 개인에게 정신승리를 요하는 게 아니라 함께 용기로 전환하고 싶어요.
피해자와 상담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활동가들도 소진을 경험할 때가 있을 텐데 어떻게 하세요?
제도로는 2년 반 활동하면 한 달의 안식휴가, 5년 활동하면 1년의 안식년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 제도가 잘 시행되고 있지는 않아요. 저도 올해 들어서야 안식월을 쓸 계획이예요. 한사성은 단체를 어떻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고 의기투합해서 동아리처럼 시작해서 제도가 많이 부실했어요.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고 난 후에 정비를 했어요. 마치 사이버성폭력 관련 제도화 이후 과제가 있는 것처럼 한사성도 활동가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제도화 이후의 과제가 있어요. 상담 관련해서는 사례 회의를 많이 해요. 상담한 활동가 개인이 혼자 부담을 지지 않도록 부담도 나누고 기분도 나누려고 얘기를 많이 해요. 회의 시작할 때 근황을 나누거나 서로 돌봄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요. 혼자 슬프고 아프지 않게.
여파 님은 어떻게 스스로 쉬게 해주나요?
저는 잠자는 걸 진짜 좋아해요. 엄청 많이 잘 수 있어요. 주말에 자는 걸로 꽉 채우고 나면 너무 좋아요. 물론 늘 충분히 잘 시간이 생기진 않지만요. 지난 토론회 전까지도 많이 못 잤어요. 잠 말고 다른 게 있다면 저는 음주가무를 좋아해요. (음주가, 까지는 알겠는데 무는 어디서 하나요?)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해요!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그러는 게 쉬는 거예요.
인권운동사랑방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통해 사랑방을 알게 됐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내용도 많고 구호도 선명하고 거침이 없구나. 근데 차별금지법만 아니고 다른 데서도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여러 운동을 걸쳐서 하는데 또 엄청 뜨겁게 하는 게 와닿았어요. 그렇게 운동을 30년 한 멋진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든든한 느낌이예요. 그래서 다들 좀 건강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