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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극한직업 탈출을 위한 미투 운동

[인권으로 읽는 세상]미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끝까지 싸운다!

2018년 한 해 문화예술계, 학계, 법조계, 스포츠계, 정계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미투 운동은 확산에 확산을 거듭했다. 그 파장은 대단했다. 남자들의 일상 문화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폭로가 줄줄이 이어졌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가 아니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폭발이었다. 즉각적으로 '감히 어디 피해자가'라는 정서가 팽배해졌다. 미투가 전개되면 될수록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식의 복수 담론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피해의 진위를 가려 선의의 가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세상은 자고 일어나면 또 터져 있을 '어떤 미투'를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얼굴만 빼꼼히 내밀며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개중에는 곧 터질 자신에 대한 폭로가 두려운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직장에서는 '이제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겠다'거나 '회식도 못 하겠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득세했고, 미투를 유의미한 변화를 도모할 수 없는 단순 '폭로전'이라 폄하하며 가해자를 대놓고 두둔하는 세력들도 등장했다. 그런 가운데 미투의 말하기는 멈추지 않고 '나도 당했다'로 반복하는 사회적인 해석을 넘어 '우리가 말한다'는 여성들의 연대 속에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사회적 투쟁으로 나아갔다.

극한 직업 

성폭력 사건을 개인 간 사적 관계로 국한하려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 이른바 공적 영역에서 미투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노동자로서의 권리이자 삶의 권리를 주목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성의 안전한 일터에 대한 가능성을 묻게 된다. 여성이 노동 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은 마치 억압과 차별을 넘는 일련의 허들 경기와도 같다.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은 그것이 고용 관계든 독립적인 형태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입사와 승진에서의 차별은 둘째 치고, 여성은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심각하게 훼손당하기 쉽다. 여성들에게 일하는 공간에서의 성폭력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 정도 현실에 놓인 대한민국의 여성들이라면, 직종을 막론하고 모두 극한 직업을 가졌다 해도 과함이 없다. 여성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언제 어느 때고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노동자이자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일터에서 폭력 문제는 섹슈얼리티와 결합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된다. 사건을 판단하는 눈이 흐려진다. 성폭력은 00이라고 하는 남성의 여성 문제로만 국한되고,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가려진다. 동시에 여성이 노동자이자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정체성도 사라진다. 오로지 섹슈얼리티의 문제만 남는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가 2심 승소 이후 심각한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피해자답지 못한 피해자 김지은은 비난 받고, 성폭력을 저지른 가부장을 두둔하는 안희정의 아내는 공감과 지지를 얻는다. 민주원 씨의 2차 가해 내용 중에는 김지은 씨가 '귀여운 척'으로 자신의 남편을 '유혹'했다는 추측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 사실과 무관하게 민 씨의 2차 가해가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 가지다. '여성들이여,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라, 만약 상사나 동료가 남자라면. 당신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사람이기 이전에 '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직장 내 미투는 생계를 매개로 성을 착취하지 말라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기도 하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직장 내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피해 여성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고통을 감내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어렵사리 들어간 일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직 내에서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건 특정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성추행의 피해자 서지현 검사와 직장 갑질로 알려진 땅콩회항의 피해자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이 그 누구보다 서로를 공감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두 사건은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피해자보다 높았다는 점, 피해자가 조직 내 폭력 문제를 외화한 후 음해, 2차 가해, 내부의 괴롭힘이 뒤따랐다는 점에서 닮았다. 양자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차이라면 피해자의 성별이다. 그 차이로 인해 직장 내 성/폭력은 노동 문제가 아닌 성적인 문제로만 확대재생산 된다. 부하 직원은 언제든 착취의 수단이 되고, 여성의 경우 성적 착취라는 점에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미투는 지금 일터의 폭력적 권력관계,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이 성폭력을 용인하고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성폭력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있어도 그 범죄 사실을 사회적 폭로의 방식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직시해야 한다. 더디지만 변화는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재판 규범이 동요하고 있다. 같은 법을 가지고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던 법원이 미투 피해자의 정의를 실현하는 장이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미투를 성폭력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서지현 검사는 가해자 처벌이 곧 문제 해결은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 해결을 가해자의 처벌만으로 보면 사건은 가해자 개인의 차원으로 축소되고, 성폭력을 가능케 했던 구조의 문제는 사라져버리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 서지현 검사가 법정 승리를 넘어 검찰 조직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스쿨미투 운동이 교내 성폭력이 단지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닌, 차별과 폭력을 조장해온 교육체제 전반의 문제임을 밝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가해 교사를 징계하고 파면시키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비롯해 예비교사의 페미니즘 교육과 학생인권법 제정, 사립학교에 대한 사회적 규율 등 해당 공동체 전반의 문화와 구조적 변화를 말하는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 미투의 과제도 분명하다. 수많은 가정 폭력과 거대한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에 대한 보도 및 당사자의 말하기는 계속 되어 왔지만, 여전히 미투로 승인되지 않는다. 미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만이 미투를 할 수 있다. 그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지, 어떤 성/폭력 피해자의 말하기는 미투가 되고 또 어떤 이들의 말하기는 숨겨지거나 기각되는 잘 뜯어보아야 할 것이다. 

차별과 억압이 당연하다 여기는 세상은 말한다. '감수하라', 다른 말로 '침묵하라'. 미투 이후 그런 입막음에 대해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자'라는 말을 되돌려줄 용기가 생겼다. 미투는 직장 내 성폭력이 철저히 권력관계에 기초한 성 착취의 결과임과 이를 떠받들고 있는 남성 중심의 조직 구조를 바꾸어가기 위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었다. 그래서 미투는 어떤 의미에서 혁명적이다. 아니 혁명으로 가는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3.8 여성의 날이다. 이날은 111년 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항의하고 참정권이 없는 여성 현실을 바꿔내겠다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면서 생겨났다. 그들은 '이길 때 까지 싸운다'라는 구호가 써진 현수막을 손에 들었다. 올해 3.8 여성의 날은 자신의 일터에서 겪은 성폭력의 경험을 말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미투 투쟁을 기념한다. '미투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가 마치 '이길 때까지 싸운다'로 읽히는 올해의 3.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