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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59차 유엔인권위원회 소식 ⑤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의 배경과 전망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위에서 찬성 28개국, 반대 10개국, 기권 14개국으로 북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다. 한국정부는 사전에 알려진 대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사국인 북한은 위원국이 아니어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고 표결 전에 의견을 표명하였다.


결의안 주요 내용

전문과 7개항으로 구성된 이번 결의안은 고문, 강제노동, 탈북자 처벌 등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외국인 납치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할 것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할 것 △고문방지협약과 인종차별철폐협약 등 아직 비준하지 않은 협약에 가입하고 이미 가입한 다른 협약에 따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 △식량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인도주의 단체들의 자유로운 접근과 이동을 허용할 것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 대화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북한 인권문제는 유엔인권위의 공식의제에 포함되었고 앞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북한정부에 대한 압력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보통 나라별 결의안은 한 국가내의 인권침해가 매우 심각하여 국제적인 관심과 협력이 요청되는 경우에 유엔 인권위에서 채택한다. 이 제도는 인권의 보편성, 즉 인권이 더 이상 주권국가의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심사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80년대 초에 도입되었다.

그 동안 나라별 인권결의안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둘러싸고 유엔 인권위 안팎에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데, 최근의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이번 북한 결의안에 대한 논란이 한동안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악용될까 우려

먼저 정당성의 경우, "왜 지금 북한인가?"라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제네바에서 유엔인권위를 10여년 넘게 취재해 온 <르몽드> 기자는 표결 직전 "통과되리라 본다. 그러나 왜 올해 중국 인권결의안은 없고 대신 북한이 등장했는지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른바 '인권선진국'으로 자처하는 유럽과 미국 등의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의 자의적 기준에 비추어 입맛에 맞게 결의안을 채택할 나라들을 선별한다는 주장이다. 즉 북한 인권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인권외교', 즉 인권을 이른바 '국익'을 증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일례로 "유럽연합은 조시 부시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란에 대해서는 왜 올해 결의안을 제출하지 않았는가?"라며 유럽연합의 '이중잣대' 적용을 지적했다.

게다가 이라크 사태 이후의 상황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악용'될 것인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결의안에 반대나 기권표를 행사한 정부의 대다수뿐만 아니라 인권위에 참여하고 있는 국제인권단체들의 대다수도 "인권옹호와 민주주의 회복을 구실로 정당화했던 이라크 침공처럼 이번 결의안도 부시 정권에 의해 북한정권 제거를 위한 명분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결의안 채택, 실효성 있을까

실효성과 관련해서 현재로서는 일단 북한 정부가 열쇠를 쥐고 있다. 북한정부는 투표 전 발언에서 "이번 결의안 내용은 조작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전적으로 배격한다"며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유럽연합과의 관계와 유엔인권위의 정상적인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대표는 '최근 확대되고 있던 유엔 인권기구와 유럽연합과의 인권 협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유럽연합의 의도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배신감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에 대해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유럽연합의 한 외교관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며 "그 동안의 관례를 볼 때,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결의안에서 지적한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 개선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유럽연합과 북한이 최근 형식적인 대화와 협력은 가졌지만, 인권분야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거의 없었거나 오히려 악화되었다"며 이번 결의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유엔을 통한 국제적 압력이 북한 인권 문제의 개선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결의안 채택을 위해 인권위에 참석한 북한인권개선시민연합의 이혜영 간사는 "그 동안의 인권침해 규모와 정도를 고려할 때 늦은 감도 있지만 매우 기쁘다"며 "이 결의안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북한 정부는 사전 발언 이외에 이번 결의안에 대한 대응조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


결의안 편파성 비판 목소리

한편 이번 북한 인권결의안의 내용에 대해 균형을 상실한 편파적인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표결 직전 설명에서 "이번 결의안은 너무 일방적이고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정도로 지나쳐서 찬성할 수 없다"며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반도 평화에 역효과 불러올 것"

중국은 "최근 북한과 유엔 인권기구 및 유럽연합 사이에 인권분야에서 많은 협력이 있었다"고 전제하면서 "그러한 상황에서 이런 비난조의 인권 결의안은 최근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거부를 촉구했다.

이외에도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쿠바와 시리아는 "북한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북한 지지 발언을 했다.

이는 찬성표를 던진 나라 가운데 아무도 왜 찬성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과 큰 대조를 이루었다.


인권위 정치화로 공신력 상실 우려

같은 날 북한 이외에도 투르크메니스탄, 버마(미얀마) 인권 결의안이 채택된 반면, 수단과 짐바브웨, 체첸 결의안은 상정되었지만 표결에서 부결되었다.

이를 두고 일부 인권전문가들은 "인권위가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공신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나라별 결의안이 인권침해의 심각성보다는 강대국과의 이해관계(체첸의 경우)나 당사국의 정치·경제적 수단을 동원한 외교력(수단, 짐바브웨의 경우)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중 잣대는 이미 관례가 되어 버렸고 인권이 정치적 흥정의 수단이거나 합리화를 위한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의안 내용에도 문제 있어

한 인권전문가는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의안이 북한의 인권개선에 실질적 기여를 하리라 기대하고 믿지만 결의안 자체는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결함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결의안에는 △권리로서의 발전권에 대한 인정이 없다는 점에서 보편성(universality)의 원칙을 반영하지 않고 있고 △기아와 식량 부족의 문제에서 드러나듯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가 시민·정치적 권리의 부정으로 연결된다는 상호불가분성(indivisibility)의 원칙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평화없는 인권은 맹목적이지만 인권없는 평화는 공허하다'는 인권과 평화의 상호연관성(Interdependence)의 원칙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결의안 논의 과정에서 북한을 철저히 배제한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정부, 무능력 미숙함 드러내

한편, 한국정부는 아무런 공개적 입장 표명없이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참여정부'의 인권외교에 있어서의 무능력과 미숙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창피함은 둘째치고 결의안에 찬성한 진영과 북한 양쪽으로부터 불신을 자초하게 되었다.

지난 김대중 정부는 작년 유럽연합의 북한결의안 추진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유럽연합은 이에 따라 추진을 포기했다. 그러나 올해 노무현 정부는 찬반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이를 묵인했다. 물론 한국정부와 유럽연합과의 협의는 이라크 침공 이전에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라크 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되고 다시 북핵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제기되는 맥락에서 북한 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한국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즉 초기의 "반대하지 않지만 찬성에 참여하지는 않겠다"에서 "찬성하지 않지만 반대에 참여하지는 않겠다"로 입장이 바뀐 셈이다. 이에 따라 기권에서 불참으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결의안을 지지한 서방측 외교관들은 대체로 "이해하지만 실망했다"는 반응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해할 수 없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제네바 현지의 한 한국 외교관은 표결 후 "아쉽고 부끄러운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현지의 분위기로 볼 때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면 기권표를 행사하고 발언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이 외교적으로 볼 때 순리였다는 지적이다.

다른 한 관계자는 "애초에 유럽 연합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했을 때 반대가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한국정부가 내용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했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자신의 집안일에 당사자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객들이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하는 판이 벌어진 셈이다.


참여 포기한 '참여정부'

이라크 파병결정이 참여정부의 '거꾸로 참여'였다면, 이번 북한 인권결의안에의 불참은 참여 자체의 포기였다. 인권 이전에 한국정부는 주권국가로서 주어진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셈이다. 이러한 사태는 일관성있는 철학과 정책에 기반한 장기적 전략 없이 상황 논리와 눈치보기로 점철되어온 한국 인권외교의 현주소이자 예정된 결과였다.

표결이 끝나자 인권위 의장은 물리적으로 자리는 지키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은 한국을 무시하듯, 한국의 불참 자체에 대한 언급도 없이 표결 결과를 공표했다. 4월 16일은 '당당함'을 내세운 참여정부의 인권외교에 치욕의 날이었다.

[제네바: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