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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제앰네스티 국제사무국 사무부총장 허브 버거

1994년 7월 29일 “양심수의 밤” 연설문(부분 발췌)


편집자주:앰네스티 기자회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허브 버거씨의 연설문을 요약해서 게재한다(지면상 아태지역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은 생략한다).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기구가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노태훈 씨나 김낙중 씨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의 활약덕분입니다. 그런 분들과 여러분들의 헌신, 개인적인 희생과 용기가 인류를 위해 이 세계를 더 나은 장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비폭력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각국 정부의 책임 회피적인 행위들에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활동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관한 앰네스티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앰네스티의 관심사들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과 북한의 인권(전문 게재)

한국의 경우 우리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채 구금되어 있는 300명 가량의 정치범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습니다. 앰네스티는 한국정부에 대해 비폭력적인 정치활동으로 투옥 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규정을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또한 앰네스티는 정치범들에게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실제 또는 가공의 공산주의 신념을 포기토록 강요하는 ‘전향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비 전향’ 수인에 대한 가장 큰 처벌은 조기가석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스스로 민주적이라 자처하는 정부가 비 전향자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재판 후 40년간이나 구금되어 있는 김선명 씨나 안학섭 씨 같은 장기수들에게 가석방을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말 이후 고문은 감소추세에 있습니다만 작년 체포되었던 모든 정치범들의 경우 심문 초기 수일간 잠을 재우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고문 또는 가혹행위에 관한 우리들의 우려는 내무부장관 최형우씨의 언급이 있은 이래 더욱 증폭되어왔습니다. 사상범들은 잠을 재우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이다. 그것은 특정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국무총리에게 서신을 보내 최장관의 발언에 우려를 표명하고 그의 견해가 정부의 공식정책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답을 받아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사형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최소한 50명의 수인들이 현재 사형수로 대기중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수인들은 보통 수갑을 찬 채 구금되어 있으며, 이는 수인의 처우에 관한 국제규준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북한에는 1960년이래 양심수를 포함한 수만 명의 인사들이 여러 형태의 자의적 구금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수천 명의 수인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가혹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덴마크에 정치적 망명요청을 한 후 1986년 11월부터 구금되어 있는 신숙자씨와 그녀의 두 딸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앰네스티는 이들을 양심수로 간주하며 북한당국에 이들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합니다.

또한 수많은 정치범들이 기소 또는 재판도 없이 구금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재판이 있다 하더라도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에서도 사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공통의 비전

우리는 모든 자유와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합니다. 모든 자유와 권리는 불가분의 것이고 상호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빵과 자유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우리는 결코 고문의 방지가 먼저냐 기아의 해결이 먼저냐 식의 토론에 끌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양자가 모두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투쟁의 결과이며 국가와 비정부단체들의 협력을 통해 발전되어 온 국제인권법에 의해 보장되는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권의 보편성이나 불가분 성을 후퇴시키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비엔나인권회의는 그러한 노선을 견지했습니다만 우리는 그러한 노선 견지 이상의 일을 해내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인간성을 향해 열려있는 새롭고도 더 넓은 비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비젼으로 무장해야만 절망에 대항하는 강력한 대응전략인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