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국제 인권뉴스》과테말라 거리 아동의 외침!

7년전 3월 14일, 거리아동이었던 당시 13살의 나하만 카르모나 로빼쯔 군이 과테말라 경찰의 폭행으로 죽었다. 나하만의 죽음을 둘러싼 재판은 과테말라의 가난한 거리 아동들 모두의 재판이 되었고, 오늘 그들은 자신들의 재판을 위해 법원 앞에서 행진할 것이다.

오랫동안 거리 아동이 처한 비참한 상태는 무시되어왔다. 많은 아동이 35년간의 내전과 폭력으로 고아가 되었거나 무능력하고 자식을 부양할 의지가 없는 부모에게 방치되고 스스로 가출하였다. 과테말라의 거리 아동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동안, 매년 수백 명이 살해되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와 같은 국가에서도 상황은 훨씬 악화되었다.


나하만의 죽음 그리고 소송

나하만의 죽음을 둘러싼 소송은 최근 몇 년 동안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어 왔다.

90년 3월 1일 새벽, 나하만과 다른 9명의 아동이 본드를 흡입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들을 둘러쌌고, 나하만을 땅에 내던지고, 잔인하게 발로 걷어찼다. 그로 인해 나하만은 10일 후 병원에서 사망했다. 나하만이 경찰의 손에 당한 첫 번째 희생자는 아니지만, 그의 사건은 당국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최초의 사건 이였다.

당시 가사 알리안자가 나하만의 죽음을 조사하려고 했을 때, 경찰과 법원은 갖은 힘을 다해 조사를 방해했다. 카사알리안자의 라틴아메리카 부국장인 영국인 해리스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고 과테말라를 떠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거리의 아동들을 구타하고 살해한 경찰과 관계자들에 대항하는 국제 캠페인을 시작했다.


거리아동 고문살해혐의 소송 3백건 달해

캐나다 정부와 유럽연합의 기금으로, 카사 알리안자는 92년에 법률구제소를 세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거리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1백40명의 경찰관과 40명의 군인에 대한 3백건 이상의 형사 소송을 냈다.

92년 4월, 결국 4명의 경찰관에게 나하만 살인죄가 확정되었다. 그들에게는 각각 징역 12년과 나하만 가족에 대한 약 1천6백50 달러의 민사 배상금 지급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그 배상금은 아직껏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 점이 나하만 가족을 대신해서 카사 알리안즈가 현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이유이다. 이 소송은 모든 거리의 아이들과 그 가족의 미래를 위하여 종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해리스는 말한다. 그는 "우리는 제도가 올바로 작용하도록 압박을 가하고자 하며 살인으로 문제가 사라질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우리는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단지 지켜만 볼 뿐 아무일도 하지 않는 태도에서 벗어나 폭력을 기록하고 가해자를 기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을 거리로 밀어내는 사회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해리슨은 말한다. 18세 미만이 중미 인구의 54%로 추정되며, 전체 남자의 평균연령이 거의 40세인 미국과 비교해서 17.6세에 불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사 알리안즈의 노력의 결과로 변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아동에 대한 경찰 폭력을 다루는 보도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보도는 되고 있지 않지만, 지난 해 17명의 아동이 살해되었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아울러,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카사 알리안즈의 법률구제소의 조사에 의하면, 최근 수년간 과테말라 수도에서 범죄가 급속히 증가하자 사설보안회사 설립이 확산되었고, 여기에 고용된 다수가 경찰과 군대의 하위직 출신이라는 것이다. 민간인 복장을 입은 이들이 거리 아동에 대한 신종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데 정부는 이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5주 동안에 5명의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었으며 모두가 목구멍이 예리하게 잘려 있었다.

나하만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제가 원한 건 어린이가 되는 거였지만, 그들이 못하게 했어요."

- 데이비드 애담스, 피터스버그 타임즈, 3월 14일자 번역=한국국제문제연구회(IPECK) 《국제 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