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1994년 국제 앰네스티 연례보고서(3)-남북한 요약


남 한

기존의 양심수를 포함하여 250여명의 정치적 수인들이 구금되어 있다. 대부분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기소되었으며 일부는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재판을 받은 후 구금되었다. 약 50명의 사형수들이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사형집행은 없었다.

2월 김영삼대 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더 큰 자유와 민주주의를 약속하였다. 처음 신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수정할 의지를 표명하였으나 취임 후 곧 이러한 입장을 변경하였다. 12월에 국회는 정치적 혐의자를 심문하거나 권한을 남용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을 개정하였다.

3월에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쟁의 과정에서 많은 양심수를 양산하는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기능에 ‘심각한 제한’이 된다고 발표하였다. 5월에 정부는 이 조항을 수정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나 8월 일련의 노동쟁의를 겪은 후 이 결정은 번복되었다.

6월 정부는 UN 고문방지협약을 비준하려는 의지를 발표하였으나 지난해 말까지 비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월 144명의 정치적 수인들이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에 따른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이들 중에는 반정부인사들, 학생들, 노동자들 또한 장기간 수감되었던 나이가 많은 수인 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십 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체포되었으며 여기에 많은 양심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반정부’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그리고 북한의 ‘반정부조직’과 접촉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은 정부당국에 의해 ‘반 국가’조직으로 간주되었으며 이 단체를 지지하거나 가입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3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사노맹과 관련이 없으며 양심수이다.

6월에 국가보안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조국 교수를 포함한 9명의 양심수인은 사회주의과학원에 소속되었다는 혐의와 소위 사노맹과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황석영은 4월, 일정기간 동안 방북 한 후 남한에 돌아와 체포되었고 양심수이다. 10월 그는 89년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북한정부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 돈은 「장길산」을 영화화하는 판권료로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인권운동가 노태훈은 7월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가 일본에 있는 북한 간첩을 만났다고 자백시키려 하였으나 그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당국은 북한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책과 팜플렛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그러나 이 자료는 남한에서 공식적으로 이용되는 자료이다. 노태훈 씨의 인권활동이 그를 체포한 진짜 이유로 드러났다. 그는 이전의 장기수를 도왔고, 6월 비엔나에서 개최된 UN 세계인권회의 남한 NGO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는 10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7월, 8명의 군 징집자가 체포되었다. 이들은 군을 탈영하여 ‘양심선언’을 하였었다. 일부 사건은 89년 이전의 사건으로 군대 개선을 요구하고 남한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경우이다. 대부분은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전투경찰로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이들은 양심적 이유에서 이를 거부하였다. 양심적 거부에 관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다른 업무를 대체 받을 수 없었다. 8명중 4명은 1년6월에서 3년까지 감옥형이 선고되었다. “이들은 양심수이다.” 나머지는 군대나 전투경찰로 되돌려지고 있다.

노동쟁의 과정에서 노조간부들은 제3자 개입금지법 위반으로 체포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7월 전국노조협의회 의장인 단병호 씨를 포함하여 지도자들이 임금협상과 노동쟁의 과정에서 노조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이들은 은신하였다.

이전 시대에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된 수십 명의 정치적 수인들이 여전히 구금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70년과 80년대에 북한과의 접촉이나 간첩혐의로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심문기간 동안 고문을 받았고 대개 강요된 자백을 근거로 형을 선고받았다는 일관된 보고가 있다. 이들 중에는 85년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김성만과 20년형을 선고받은 황대권이 포함되어 있다. 장의균은 87년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았다. 4월에 임의적 구금에 관한 UN 실무분과는 이들 3사람의 구금은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수감된 두 명의 수인을 석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소위 공산주의 견해를 철회한다는 ‘전향서’를 쓰기를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김선명과 안학섭은 각각 51년과 53년 체포 당시 북한 군인이었다. 이들은 간첩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받았으나 단순히 불공정한 재판을 받은 전쟁포로였다. 이들은 양심수로 간주된다.

10월 국회 법사위원회는 91년 강기훈에 대해 한 정치활동가의 자살을 선동하거나 조력했다는 혐의에 대한 선고가 잘못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이후 이 사건을 재조사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는 재심을 위한 합법적 범주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강기훈은 계속 복역중이다. 그의 체포와 형의 선고는 정치적인 동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양심수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치적 동기로 체포된 모든 사람들은 소위 안기부와 경찰청 보안국에서 장기 심문, 잠 안 재우기 그리고 위협을 받았다. 일부 수인들은 심문과정에서 구타당했거나 반복적인 물리적인 훈련을 강요당했다. 평화론 자이고 인권 옹호론 자인 김삼석은 그의 변호사에게 9월 체포된 후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에 의해 옷을 벗기고 성적으로 학대받고 구타당하였다고 진술했다. 그 외 그의 여동생 김은주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이틀 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되었다. 김삼석은 그의 변호사에게 그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거짓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하였다. 김은주는 심문 동안 잠 안 재우기와 뺨맞기, 또한 성희롱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이들은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일본에 있는 ‘반정부’단체와 접촉했고 국가기밀을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11월 이전 정치적 수인인 문국진은 80년과 86년 체포 당시 고문의 피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문국진의 현재의 정신적인 질병은 고문으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의사들은 입증하였다.

약 50명의 사형수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구적으로 수갑을 차고 있다. 사형집행은 없었다.

국제 앰네스티는 양심수를 석방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중단하고, 모든 고문주장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할 것을 촉구하였다. 국제 앰네스티는 또한 한국정부에게 정치적 수인을 구금하는데 이용하는 국가보안법과 다른 법률을 개정할 것과 장기수의 사례에 대해 재조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고문과 불공정한 재판에 의해 형을 선고받았다. 12월에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정부에 사형집행을 중지할 것과 모든 사형을 다른 형벌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 한

불공정 재판에 의하거나, 재판과정도 없이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구금되어 온 양심수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었다. 수백 명의 정치적 수인들이 인정될 수 없는 구금센터에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전 수인의 진술에 의하면 구금조건은 열악하며 수인에 대한 가혹행위는 상례화 되어 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사형집행이 있었으면 일부는 공개적으로 집행되었다고 한다.

북한인의 외국여행은 부분적이며 외국인의 북한으로의 접근은 북한정부에 의해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은 매우 폐쇄적이다. 북한당국은 독립적인 조사단의 인권침해에 관한 조사작업이나 구금장소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1월, 국제 앰네스티는 1992년 평양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인 이장하가 주도하는 인권을 조사하는 연구소가 창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한정부는 이 연구소가 북한 인권상황에 관해 관심을 표명한 92년 국제 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대해 답변할 책임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92년 말까지 어떠한 답변도 없었다.

6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박인순은 비엔나 UN세계인권회의에 참석해서 “각 나라 국민의 인권에 관한 문제는 각 주권국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국가가 ‘간섭’과 ‘비합리적인 압력을 받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였으나,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수인과 양심수일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었다. 이들 중에는 “국가반역죄”로 고발된 사람들 즉 외국에 정치적 망명을 했던 사람들의 친척과 외국인과 불법적으로 접촉을 하였던 사람들이 포함된다. 비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한 여인이 외국학생과 접촉을 하였는데 당국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월에 4년 간의 ‘노동을 통한 재교육’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재판을 받았는지 그리고 재판 없이 행정 구금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일본국적의 시바타 고조는 1964년 이후 구금되어 있는 양심수이다. 그는 평양에 거주하는 일본여성이 일본에 있는 친척을 만나기 위한 출국이 불허되자 이에 항의를 독려하였다는 이유로 20년형을 선고받고 84년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쁜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90년 말 평양근처에 있는 승호마을에 계속해서 구금되어 있다. 그 후 그에 관한 정보가 없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정치적 수인들이 재판 과정 없이 확인되지 않는 장소에 구금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외국유학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재교육’을 위한 수용시설에 수용되는 것으로 믿어지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들 중에는 어린이와 젊은 사람도 있는데 18세인 오혜원과 15세의 오규원도 포함된다. 이들은 그의 아버지가 외국으로 망명을 한 후 어머니 신숙자와 함께 86년 이후 구금되어 이다. 이들은 함경남도 요도의 ‘노동을 통한 재교육’ 구금장소에 구금되었으며 이들은 양심수이다.

‘노동을 통한 재교육’ 구금장소에 있는 정치적 수인들은 극도로 열악한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이전 수인들은 많은 구금자들이 추위와 기근과 질병에 대한 치료가 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구금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권리는 박탈당한다고 말하였다. 일부 캠프는 수인들 중 ‘특별한’ 범주의 사람들이 수용되는데 외부에서 어떠한 음식과 다른 공급 품이 공급되지 않고 수감자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양식을 생산하도록 한다.

일부 북한의 임업노동자들은 러시아 연방 극동에 위치한 북한관리에 의해 운영되는 캠프 안에 임시적으로 구금된다. 캠프를 떠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은 북한과 소련사회주의 연방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 의해 무기한으로 구금되었다. 이곳의 구금시설에 대한 관심과 캠프의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러시아는 캠프를 중단하도록 하였다.

비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사형은 정치적인 범죄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81년 형법은 사형을 정치적 범죄에 부과되는 ‘기본적 형벌’ 두 가지중의 하나라고 규정하고 있다. “통일과 자주를 위한 혁명적 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을 저해하는 “제국주의자와의 공모”활동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사형을 실시한다. 사형은 또한 “제국주의자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대해 그리고 “국가에 대한 배신”의 “극단적인 사건”을 범한 범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사용된다; 공화국을 점령하려는 음모나 반란에 가담한 자; 노동당과 정부의 “기간요원과 애국시민”에 대한 ‘테러’행위; 그리고 살인 및 특별히 심각한 범죄에 대해 무조건 적용된다. 이런 범죄에 대한 세밀한 설명이 북한 형법에는 잘 규정되어 있지 않다.

북한당국은 91년 국제 앰네스티에 사형은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실시된다고 하였지만 자세한 자료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북한당국은 사형을 집행한 통계는 수집해 두었으나 이용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93년 동안 사형제도는 빈번히 이용되었고, 경제사범을 포함해 해마다 수십 명이 사형되었다고 한다.

92년 11월의 한 사례는(정부진술에 따르면 10월) 30세의 주수만씨 경우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상습적인 폭력사범”으로 규정되었고, 소위 “대중의 요구에 따라” 공개 집행되었다.

형법에 관한 국제 앰네스티의 비판에 관하여 북한당국은 “국가에 관한 범죄와 관련된 조항”은 “범죄 예방의 기능이 있으며 드물게 적용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러시아 있는 북한캠프가 범죄자 수용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단지 교육장소이며” “노동자들에게 러시아 법을 적절히 준수하도록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북한당국의 답변은 사형은 드물게 적용되며 정치적인 이유로는 그 어느 누구도 사형이 선고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개집행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북한을 방문하여 인권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거듭 요청하였으나 지금까지 어떠한 응답도 없다.